싱가포르 8am to 10pm

18/01/2022

by pigeon choi

싱가포르 라이프의 데일리 루틴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이곳에 와서 느낀 점은 나는 생각보다 쉽게 루틴에 빠져버리는 사람이라는 점. 한국에서는 새로운 것만 보면 환장을 하며 소비해왔는데 실은 나는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다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귀찮아하는 인간이라는 점.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실은 내가 바라는 모습이였고 현실에서의 나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침 8시 - 불규칙적인 헬스장 방문

가끔 아침 일찍 눈이 떠질때면 새로 등록한 Virgin Active에서 공복 유산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만'먹고는 본격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다가 결국 러닝머신은 20분도 채 달리지 못하고 헐떡거리며 집에 돌아오는 요상한 아침 루틴을 가지고있다. 이상하리만치 복근에 집착해서 보통 상하복부 운동을 조지고 인생의 과제인 팔뚝살을 없애고자 어깨 운동을 집중해보지만 승모근만 뽑아내는 운동 습관이 있다.


아침 10시 - 소프랑스에서 모닝커피와 크로와상

운동이 끝나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프랑스(Bugis에 위치한 프렌치 카페)의 1층에서 매일 모닝 커피와 크로와상 혹은 뺑 오 쇼콜라를 먹는다. 보통 이 시간동안(길어야 30분?) 뉴요커 잡지 중에서 가장 쉬워보이는 칼럼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에 줄을 긋는다. 칼럼이 까만 잉크로 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가끔 단어를 모두 찾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길이 없어 단지 어리둥절한 채로 끝나기 일쑤다 - 친구 말로는 어리둥절함만 남는 것이 바로 뉴요커를 제대로 읽었다는 뜻이라고 - 어떤 때에는 칼럼 하나를 끝내는 대에 약 일주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소프랑스에 들어서자마자 직원 모두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내는 그 씬 자체가 완벽한 아침 풍경을 만들어낸다. 아마 싱가포르에서 기억될 가장 행복한 일상 중 하나겠지.


오전 11시 ~ 오후2시 - 일이라는 걸 한다

모두가 꿀단지를 안고 곰돌이 푸우가 되는 12월, 어느 누구도 일하지 않는 홀리데이의 기적을 맛본 뒤로 생산적이고 밀도있는 업무를 다시 하는 것에 시간이 꽤나 걸리는중. 하지만 낮시간동안 에이전시와 미팅을 하고 업무에 조금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일을 하는 나의 페르소나를 성실히 유지해야만 멋진(아니지, 월세를 지불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계속 상기하면서.


오후 3시 - 애프터눈 커피 타임

3시에서 4시경이 되면 몸에서 카페인 알람이 울린다. 이 때마다 아랍 스트릿에 있는 아라비카 커피를 가서 스페니쉬 라떼를 마시거나 또다시 소프랑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한다. 요즘은 커피 원두를 사 직접 내려 마시면서 발코니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이 새로운 루틴. 이 시간동안 릴스를 만들 때도 있고 밀린 답장을 하기도 한다.


오후 6시 - 빈 캔버스의 시간

업무를 끝낸 이후인 오후 6시부터의 삶은 매일 그 형태를 조금씩 달리한다. 철저하게 비어있는 캔버스라고 보면 된다. 요즘의 고민은 이 시간을 무엇을 하며 채울 것인가에 대한 것. 간혹 데이트를 하러 나갈 때도 있고 친구와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저녁을 함께 만들어먹는 시간으로 요즘은 보낸다. 간혹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몸둘바를 몰라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 것은 덤이다. 저녁 만큼은 꼭 밖에서 먹고싶어하는데 그 저변에 새로운 만남이나 누군가를 보게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너무나 E형 인간의 삶. 간혹 저녁 8시경에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한. 그 시간에는 아무도 없거든


오후 10시 - 나만의 시간

밤부엉이인 나에게 싱가포르가 잠든 10시 이후는 새로운 나만의 시간이다. 요즘에는 이 시간동안 넷플릭스로 테라스하우스를 보다가 새벽에 소파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세로 잠들곤 한다. 그리곤 새벽 세 시경 렌즈도 못빼서 바싹 마른 눈을 빠자작 뜨며 고통스러워한다. 이 시간을 이제는 사뒀던 책을 읽는 시간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스르륵 잠에 들어 12시전에는 잠들고 7시경에는 일어나는 건강한 루틴으로 바꿔봐야지. 이 시간은 고독으로 가득하고 가끔 외로움으로 변한다.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한국을 벗어나 싱가포르에서 가장 친해져야 할 시간일테지.


모두가 아는 수학 하나. 매 분 매 초가 쌓여 현재를 이루고 현재는 곧 과거가 된다. 그 과거가 된 현재들은 내 미래를 형성할 것이고 지금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쌓아나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이 먼지같은 고민이 쌓이고 정직한 하루들이 모이면 나중에는 뭔가 깨닫는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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