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서의 겸손이란

by pigeon choi

박완서 작가는 그녀의 소설 '모래 한 알만한 진실이라도' 에서 분수에 맞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가 작가에 등단하기 전 밤잠을 설쳐가며 이부자리 머리맡에서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쓰던 글이 등단 이후 남편이 서재를 하나 마련해줘야겠다는 말을 들은 뒤의 간지러움에 대하여,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며 폭소를 터뜨리는 그녀의 겸손에 대하여.


그러면서 그녀는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고 그 순간을 상기한다. 나에게 있어 해외생활은 박완서 작가처럼 나의 분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나의 삶은 안정된 수입과 관계들, 나를 둘러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으레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어깨를 으쓱거리던 때가 있었다. 명함 옆에 붙은 타이틀이 마치 삶 전체의 성취인 양 취한 적도 있고, 얕은 예술에 대한 지식과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해 그들이 나에게 베푸는 관심과 호의를 건방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로 나를 먼저 소개하지않고, 이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국제도시에서 타이틀은 응당 모두가 삶에있어 당연히 가져가야만 하는 일종의 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두가 공평히 사회가 정의하는 잘난 범주에 드는 세상에서는 내가 좇는 인생의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이 급류에 휩쓸려 길을 잃는다.


싱가포르에 첫 발을 내딛었을때 나의 자신감과 약간의 오만은 지금의 겸손이 되었다. 단지 내 자리에서 내가 해내는 일을 누구에게도 피해주지않고, 또 성심성의껏 진실을 다해 쏟아붓는 단순함과 열심함이야말로 결국 나의 삶의 근육이 되고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 마치 요 바닥에 엎드려 글을 써내려가듯 그 지속성과 체력을 유지하는 행위에 집중하되 서재와 같은 간지러운 포장지에 연연하지 않는 것. 보여져야하는 모습과 이 도시가 지닌 화려함에 FOMO(fear of missing out)를 가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내 분수를 아는 삶이야말로 오래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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