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야

by pigeon choi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있는데, 그 정의가 꽤나 나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하면 완벽하게 해낼 것 같은 근거는 없는 자신감이 있으면서 그를 위해 하나하나 쌓아야 하는 작은 노력들은 무시한 채로 성취한 나의 모습만을 상상하는 습관. 그리고 그 프로세스를 축약하려고만 하는,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현재 2024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우리는 남이 힘겹게 이룬 성공이 쉽게 보이는 삶에 익숙해져 있고, 그 중간 과정에 대해 관심가지는 이는 적다.


나 또한 그렇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뉴욕의 코너 곳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쉽게 그리면서 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첫 스텝을 시작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층이 겹겹이 쌓인 모노하 기법의 아름다운 아트피스를 완성한 나의 모습을 그리지만 그를 위한 작은 캔버스 하나 사지 않는다. 공공장소에 간혹 놓여있는 피아노를 볼 때마다 아름다운 류이치 사카코토의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 내는 나의 모습을 그리지만 피아노는 구비해놓고 도무지 연습은 잼병이다. 건반 위를 촤르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손가락은커녕 뚱땅거리기 일쑤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남성이 신에게 간절히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질었는데, 그의 간청이 신에게 닿자 그 신이 말했다 “일단 복권을 사라”라고.


우리는 언제부터 삶에 있어서 성취를 복권에 당첨되는 일처럼 치부하기 시작했을까. 삶의 성취는 단순한 반복이 이루어내는 장인정신이 담겨있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성공을 운과 동일시했을까. 그 단순하고 반복된 삶의 작은 노력은 언젠가부터 지루한 삶의 표본이 되었고 매일 우리는 도파민에 중독된 것처럼 삶을 공허한 화려함으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상상 속의 이미 완성된 나를 자위하는 삶. 그렇게 매일 조금씩 같은 형태이지만 아주 조금씩 달라져야 하는 그 지루함에 대한 감사를 잊은 삶.


게으른 완벽주의자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게으르다는 사실이다. 나태는 달콤하고 빠른 속도로 시간을 집어삼킨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닌 종속되는 삶. 게으르게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건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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