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돌아온 요즈음의 삶은 조용하고 반복적이다. 해외에서 사는 삶에 대해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항상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를테면 매일같이 벌어지는 파티와 거기에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새로운 사람들, 눈앞에 놓인 다양한 기회들과 즐길거리, 놀거리, 볼거리가 가득한 일상들. 디너 테이블 위로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오가고 모두 왁자지껄 즐거운 언쟁을 벌이는 모습 같은. 하지만 뉴욕에서 돌아온 이후의 나의 삶은 지금 앞서 나열한 것들과 반대된다고 보면 된다.
그 일례로 며칠 전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하고 집 앞에 자주 가던 한식집에서 포장 주문을 하고 나가려는 찰나, 스무 살 중반정도 되어 보이는 직원이 “오늘은 일찍 퇴근했나 봐요”라며 싱글 생글 웃으며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오늘은 럭키한 날이라고 스몰토크를 하고 가게를 나서면서도 ‘이게 무슨 뜻이지?’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을 안고 다음 두부푸딩(이곳에서는 빈커드라고 부른다) 가게를 들러 푸딩을 두 개 포장하고 나가는 찰나, 이번에는 점원이 “매일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그 순간, 나는 이 미묘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 스토리가 오버래핑되었다. 미란다가 매일 중국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똑같은 메뉴를 주문해 왔는데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걸자마자 종업원이 그녀가 매일 주문하는 메뉴를 읊으면서 깔깔거리며 전화를 끊었을 때 미란다가 느꼈을 그 기분. 내가 누군가가 예측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말이다.
반복적인 삶의 패턴은 과소평가되어 왔다. 현대 사회가 정의하는 삶은 쿨함과 쿨함의 여집합으로 나뉘어있는 것 같았고, 매일 똑같은 삶을 보낸다는 것은 마치 더는 보여줄 콘텐츠가 없는 것처럼 치부되어 왔다. 그렇기에 나 또한 식당 직원들의 따듯한 말을 이 패턴을 통해 평화를 찾은 삶에 대한 축복과 감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마치 더는 보여줄 콘텐츠가 없는 지루한 인간이 된 듯한 미묘한 감정이 먼저 들었던 거겠지.
집에 돌아와 그 미묘함을 다시 되돌아본 나는 나의 지루하고 예측가능한 매일에 감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패턴은 나에게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통제권을 주었고, 그 권한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쉽게 얻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우선순위로 먼저 세팅한 다음 소셜라이프에 점프인하기보다는 누군가와의 약속과 일정과 놓치지 말아야만 할 것 같은 이벤트와 콘텐츠를 항상 우선순위로 소비하고 나만의 시간과 패턴은 남는 시간에 할애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 그날의 가장 큰 이벤트는 내가 조금 더 무거운 덤벨에 도전하고, 미처 끝내지 못한 책을 두 페이지라도 더 읽고, 하루를 기록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바쁜 삶의 사전적 정의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다음에는 식당에 들어서면서 “또 나야”라고 웃으며 인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