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May 12. 2021

엄마의 출산

그날도 그녀는 여느 날처럼 새벽에 일어났다. 고등학교 교장인 시아버지와 여고생 시누이에게 들려 보낼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였다. 젓가락으로 계란을 풀다가 그녀는 손을 멈췄다. 어젯밤부터 콕콕 쑤신 배가 이제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맛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다. 후, 숨을 한번 내쉰 다음 그녀는 부른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곤 다시 손을 놀렸다. 시할머니와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 주고 나서야 그녀는 방에 들어가 주저앉았다. 배를 움켜잡고 허리를 꼬부려 누웠다.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발가락 끝에 힘을 주며 참았다. 그럼에도 신음 소리는 나직하게 새어 나갔다. 시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가 배 많이 아프네? 기럼 얼른 병원에 가야지 뭐 하고 있는 기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진통 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가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시할머니가 연신 방을 들락거리며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편에게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를 건 다음 방구석에 놓아 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장장 다섯 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그녀는 딸을 낳았다. 그 소식은 재깍 분만실 밖에 있는 남편에게 전해졌다. 그는 전화를 걸어 손위 시누이부터 남편의 고모들까지 한 무더기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아기도 무사히 태어났다고 하니 너도 이제 밥 먹으러 가렴. 지금까지 기다리느라 고생했잖니.” “몇 시간씩 마음 졸이느라 피곤하겠다. 가서 밥도 먹고 좀 쉬어라.” 그 병원 의사인 작은아버지까지 와서 이렇게 말하자 남편은 냉큼 일어섰다. 잠시 후, 간호사가 황급히 분만실 밖으로 나왔다. “주영* 산모 보호자 분 어디 계세요? 산모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서 응급 수술을 해야 해요.” 고모네로 밥을 먹으러 간 그녀의 남편을 찾아 헤매는 사이 그녀는 수술 대신 응급조처로 얼음이 잔뜩 깔린 침대에 눕혀져 오들오들 떨다 정신을 잃었다.

  

그날 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 아가는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있나요?” “기럼 다 있고말고. 건강한 공주가 태어났다. 우리 손부 오늘 죽다 살았디. 몸은 어떠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네.” 시할머니가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 그 위로 그녀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고 왜 우네. 산모가 울면 눈 망가진다. 얼른 뚝 그치라.” 시할머니가 아무리 달래도 그녀의 울음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이제 내가 끼어들 차례다. “그래, 엄마는 외할머니 생각나서 운 건데 큰고모가 딸 낳아서 울었다고 동네방네 소문냈다며.”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데 우리 아가도 나처럼 엄마가 없겠구나 불쌍해서 어쩌지 걱정하다 문득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목숨 걸고 낳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더라고. ‘그럴 거면 나는 왜 낳았어! 누가 낳아 달랬어.’ 이런 말은 하지 말걸. 그러다 까무러쳤거든. 깨어나서 네가 건강하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네 외할머니 생각에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더라고.” “시집 식구들이 장손 한 끼 굶었다고 고새를 못 참고 밥 먹으러 보낸 바람에 하마터면 엄마 큰일 날 뻔한 게 더 열 받았지 뭐. 내 남편이 그랬음 난 가만 안 둬. 어딜 자리를 비워.”    

엄마가 아빠 흉을 보지 않게 하려고 내가 나서서 입찬소리를 자주 한 탓일까. 진통이 시작됐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혼자 집에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임산부를 뭉클하게 한 한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