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 순산하세요!”
33주차 임산부인 나는 같은 날 생면부지의 두 사람에게서 이 말을 듣게 됐다. 토요일 점심, 백화점 엘리베이터는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몸도 무거운 데다가 사람들이 밀집해 무척 갑갑했다. 층층마다 서는 게 번거롭기는커녕 숨을 좀 틔워 주는구나 싶을 정도로.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속까지 울렁거렸다. 3층에서 문이 열리더니 아기를 안은 엄마가 탔다. 곰돌이가 그려진 모자를 쓴 아기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손가락 한 마디만한 발을 까닥까닥 움직이는 걸 홀린 듯이 보고 있는데 아기 엄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힘드시죠?”
모르는 사람이 불쑥 말을 거는 건 내가 가장 질색하는 일이다. 특히나 코로나 19로 조심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하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차마 매몰차게 대할 수가 없었다. 곧 내가 맞닥뜨리게 될 모습일 테니. 육아에 대한 공포는 뾰족한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네,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렸다.
“밤에 잠도 잘 못 주무시고 밥도 잘 안 넘어갈 텐데. 정말 고생이 많으세요.”
진심이 묻어난 말이 나를 녹였다. 산달을 묻거나 아이 성별을 궁금해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런 다음 대개 아기는 나오면 더 힘들다고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럴 때면 사실 맥이 빠졌다. (아기를 낳고 나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힘듦을 꼭 짚어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니 나는 생기가 돌았다.
“맞아요. 화장실도 너무 자주 가고 애기가 발로 찰 때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나는 내릴 층도 놓칠 뻔했다. 남편이 팔을 잡아끌자 그제야 허둥지둥 사람들을 헤집고 나왔다. 아기 엄마는 내 등에 대고 소리 높여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꼭 순산하시고요.”
‘고맙습니다.’ 이 말로 답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미 엘리베이터는 위층을 향해 떠난 뒤였다. 하지만 아기 엄마 덕분인지 그날 점심밥은 참 맛이 좋았다. 만삭이 되고 나서는 늘 더부룩해 먹는 둥 마는 둥했는데 오랜만에 싹싹 비웠다.
같은 날 저녁, 중고 거래 앱 당근 마켓에서 온 메시지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돌쟁이 아기 엄마인 그녀는 이제 쓸 일이 없는 아기 침대를 내게 팔러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온 게 아닌가! 남편은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러 스터디 카페에 간 터였다. 거래 시간에 맞춰 오겠노라고 했으니 적어도 15~20분은 있어야 했다.
침대에 바퀴가 있으니 어떻게든 끌어서 가져오면 되겠지 싶어 홀로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아기 침대를 꺼내는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다른 손으론 불룩 나온 배를 감싸며 그들에게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아기 침대 가져다주러 오셨죠?” “네, 맞아요.”
아내가 나를 힐끔 보더니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집 앞에까지 가져다드리자.” 두 사람은 함께 침대를 번쩍 들더니 앞장서 갔다. 나는 얼른 뒤따랐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다르자 나는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끌고 갈게요. 고맙습니다.”
그녀는 나를, 아니 정확히는 내 배를 미심쩍게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저희가 집까지 가도 되는데.” “아니에요, 여기까지 와 주신 것도 감사해요. 지금 바로 입금하게 계좌번호 주시겠어요?” 그녀가 휴대전화로 계좌번호를 찾는 동안 나는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잠깐 걸었는데도 땀이 줄줄 났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힘내세요. 꼭 순산하시고요!”
나는 잠시 멍해 있었다. 같은 날 두 아기 엄마에게서 들은 순산 기원 덕담에 뭉클했다. 아기를 키우는 두 엄마는 앞으로 내가 걷게 될 길을 먼저 걸었을 것이다. 만삭도, 출산도, 신생아를 키우는 경험도 몸소 체험한 뒤에 일면식도 없지만 곧 그 험한 길을 걷게 될 내가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진심을 담아 내게 말해 주어서였을까. 나는 정말 힘을 내고 순산을 할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나도 답했다.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힘내서 순산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