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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예쓰 Dec 10. 2019

[창업가의 오답노트] 인생은 계획대로?

텅장이 가르쳐준 레슨

난 내가 사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변의 많은 이들도 몰랐을 것이다. 사업은 내 인생 계획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니  삶에서 계획대로   거의 없다.



예측불가능했던 나의 계획-less 삶 ★


https://youtu.be/n6gHBW0QqTc


요리 공부할 때의 나. 이제 보니 돼지 다리가 크기도 참 크다.
매거진 취재할 때의 나. 여긴 어디였더라. ㅋㅋ
사회학 공부할 때의 나
화장품 공부할 때의 나. 안경+쌩얼은 흑백 처리!


난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한 후 내가 한 학기만에 휴학할 줄 몰랐다. 그 후 내가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러 밀라노로 떠날 줄 몰랐고 2년 만에 그만둘 줄도 몰랐다. 그 후 프렌치 요리를 공부하고 매거진 기자를 하다가 편입을 준비하고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러고 나서 화장품을 공부하고 화장품 회사의 대표가 될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다! 되돌아보면 진짜 개연성 1도 없이 살았네.


이건 일부러 계획하기 힘든 미친 결정들이었다.




무계획자의 삶


이제 느꼈겠지만 나는 계획 없이 사는 편이다. 누가 내 삶을 소설이나 드라마로 썼다면 보는 사람은 ‘에이, 저게 뭐야. 작가가 아무렇게나 막 썼네’라며 야유할지도 모른다. 난 마치 눈 앞에서 펄럭이는 붉은 깃발만 쳐다보며 돌진하는 한 마리의 투우 같았달까. 무식하고 용감하게 앞만 보고 살았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어서 과거형을 쓰기가 살짝 거시기하다. 어쨌든 그런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삶의 궤적이다.


한 마리의 투우, 그거슨 나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의 생각이 뭐일지 궁금한가? 그냥 별거 없다. 이걸 해봤다가 안되면 다른 걸 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해보고 나서야 아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때그때 변화하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하는 게 좋았다. 계획과 규범, 체계와 전통은 내가 그리 중시하는 가치들이 아니었다. 지금도 사실 그렇게까지 팬은 아니다.


그러다가 난, 어느 날 창업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나를 조금씩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계획의 쓸모를 깨닫게 해 준 텅장


나는 정말 계획을 개무시하는 편이었다. 계획은 지루하고 시시하고 별 쓸데없는 것만 같았다. 제품에 달려오는 사용설명서 같달까. 나는 제품을 사고 사용설명서를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이미 망가진 후에 ‘읭?’하고 찾아보는 정도?


그러던 내가 바뀌었다. 아, 아직도 제품 사용설명서는 안 읽는다. 또 아직도 계획적인 편은 절대 아니지만 계획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법인 통장 잔고였다.


아니 이렇게 열심히 쉬지 않고 몸 바쳐 일했는데, why my 통장 so empty?



슬프기 전에 어이가 없었다. 사업에는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어째서 텅장을 기어코 보고 나서야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나 자신! >:-S



텅장에 대비하는 계획


나는 사업체를 운영하면 숨만 쉬어도 발생한다는 고정 비용을 잊고 있었다. 보통 고정 비용은 각종 세금과 임대료, 창고 비용, 인건비 등등을 뜻하는 것 같은데(재무알못) 하나씩 봤을 땐 안 커 보였으나 이들이 힘을 합치면 헐크 뺨치게 무시무시하다는 ! 아니 무슨 지금도 2인 기업인데 둘이서 숨만 쉬어도 고정으로 월 700-800만원이 나간다. (나와 직원의 월급은 소박한 편인데도)


거기에 추가로 그때그때 우연찮게 빠져나가는 택배 비용(건당 3000~6000원), 택배 상자 비용(개당 200~300원), 브로셔 제작 비용(장당 200원), 스티커 제작 비용(5000개에 6~9만원), 팝업스토어 설치 비용(편도 7~8만원), 알바비용(1일 8~10만원) 등등도 쌓이고 보니 만만치 않았다. 마구 달리던 걸 멈추고 조금만 생각해봤어도 예상할 수 있는 지출들이었다. 그에 맞춰 계획을 세웠더라면, 그때도 텅장이 되었을 수는 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고 대책을 세울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대책이 있는 텅장 상태이다. 하여튼 기분은 좀 낫다. 그렇다면 그런 거다. ㅠㅠ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과 있는 것이 같진 않다. 계획을 세워두면 (1) 예상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워둘 수 있고, (2) 마음이 안정된다. 아, 또 (3) 대략적인 계획이 있어야 맞는 방향으로 뛰어갈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다. 나침반 같은 역할이랄까.


만약 나처럼 무계획자로서 창업한 사람이 있다면, 텅장이 되기 전에 계획의 쓸모를 인식하고 현명하게 꾸려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서점 가면 널린 게 재무에 대한 책이던데, 적어도 재무에 대한 계획을 월, 년 단위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나도 제코가 석자라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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