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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예쓰 Oct 27. 2019

[라구사] 시칠리아, 시칠리아!

이탈리아의 보물섬, 시칠리아 ~ 라구사 1/2편

동화 속 산골 마을 같은 라구사



노토에서 1시간 반 정도 운전하여 도착한 라구사는 산골짜기 틈에서 처음 시야에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감탄사를 자아냈다. 두 깊은 골짜기 사이의 광대한 석회암 지대를 기반으로 지어진 라구사(Ragusa)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환상적인 만화 영화나 동화에서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본 덕력이 있다면 라구사에 도착한 순간 만화 속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집을 이렇게 옹기종기 언덕에 지을 수 있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라구사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시칠리아의 도시들과 비슷하게, 라구사 또한 그리스, 카르타고, 고대 로마, 비잔틴 문명, 아랍인들, 노르만족에 의해 지배당하며 다양한 문물을 접하고 다채로운 건축 스타일과 예술적인 색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노토와 마찬가지로 1693년의 대지진 이후 큰 규모의 재건을 하게 된 라구사의 주민들 대다수는 구도시인 라구사 이블라(Ragusa Ibla 혹은 Ragusa Inferiore)에서 신도시인 라구사 수페리오레(Ragusa Superiore)로 이사하게 되었다. 라구사 이블라는 라구사 수페리오레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많은 계단을 올라 라구사 수페리오레의 높은 곳에 도달하면 라구사 이블라의 멋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어쨌든, 라구사에 도착한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땀을 흘리며 짐을 끌고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이탈리아나 유럽에 여행 오면 확실히 이래 저래 많이 걷고 움직이면서 땀을 빼게 돼서 먹은 만큼 살이 바로바로 찌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먹어서 결국 몇 키로 쪄가는 건 안 비밀.



헥헥 대며 올라가 겨우 도착한 우리의 러블리한 숙소!



라구사에서 로맨틱함 몇 방울을 뿌린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블라리조트 디자인 부띠끄 호텔을 추천한다. 아주 비싸진 않으면서도 센스 있고 세련된 호텔이다.



Iblaresort - Design Boutique Hotel

Via del Mercato, 105, 97100 Ragusa RG, 이탈리아

https://goo.gl/maps/NzJjFrTFSHKaZ74g6


특이하게 날 것의 돌로 장식된 벽. 방 한 구석에 자쿠지가 있다!
침대 옆에는 심플한 데스크와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다.
예약할 때 신혼여행이라고 귀띔을 했더니 센스 있게 프로세코 와인 한 병을 준비해두었다. 감동!
초콜릿과 편지는 모든 게스트에게 제공하는 듯 하다.
호텔 로비의 작은 바에서 아페르티보를 즐길 수 있다. 잠시 앉기만 했는데도 행복해보이는 남편. ㅋㅋ
저녁 식사 후 여력이 되었으면 이 미니 바에서도 한 잔 즐겼을 터인데! 아쉽다. ㅠㅠ








낭만 가득한 라구사의 밤 골목





사실 라구사는 라구사 이블라의 좁고 로맨틱한 골목골목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구도시인 라구사 이블라는 꽤 작은 규모여서 지도를 보지 않고도 예스러운 골목마다 적힌 안내판을 가이드 삼아 돌아다니다 보면 1시간 정도 안에 가볍게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튿날 찾아간 라블라 수페리오레는 신도시라서인지 골목들도 큼직하고 상점들도 많아서 살기엔 더 편리할 것 같지만, 라블라 이블라와 같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깃들어있지는 않았다.



만약 라구사 이블라와 수페리오레 중에 골라야 한다면, 라구사 이블라를 가라!



해가 지고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라구사 이블라의 두오모를 향해 출발했다.
친절하게 표지판이 곳곳에 있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라구사 이블라의 골목은 낮에는 밝고 사랑스러운 기운이 감돌다가 어둑어둑해지면 새벽 무렵의 1920년대의 파리 골목을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절로 떠오르는 낭만으로 가득 찬다.




심령사진 ㅋㅋ


드디어 도착한 라구사의 두오모, Duomo di San Giorgio.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밤에만 봐서 낮엔 어떤지 잘 모르는 게 아쉽다.



Church of Saint George
Piazza Duomo, 97100 Ragusa RG, 이탈리아

https://goo.gl/maps/GVT6xthvknbUkG8d9



라구사의 밤, 그 낭만이 느껴지는가?


라구사 두오모 돔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다른 커플을 찍어주고 건졌다.








본격적인 라구사 먹방의 시작

@ Gelati DiVini


골목 골목 걸으며 살짝 허기진 우리는 라구사 이블라의 두오모 광장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Gelati DiVini 젤라띠 디비니에서 모스카토 와인과 브라케토 와인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으로 식욕을 돋웠다. 다양한 이탈리아 와인과 식재료로 만든 젤라또는 애피타이저로 딱이었다.



돼지 로드 규칙: 이탈리아에 왔다면, 1일 1젤라또는 필수!



Gelati DiVini
Piazza Duomo, 20, 97100 Ragusa RG, 이탈리아

https://goo.gl/maps/BBvV4fPSvFqx7m6UA



여기서 잠깐! 이탈리아 젤라떼리아에서 자주 보이는 맛들을 정리 해봤다.



이제 수없이 펼쳐진 젤라또 맛에 당황하지 말자!



[ 과일맛 ]
Limone 리모네 : 레몬
Fragola 프라골라 : 딸기
Pesca 뻬스까 : 복숭아
Melone 멜로네 : 멜론
Mela 멜라 : 사과
Mela verde 멜라 베르데 : 청사과
Arancia 아란치아 : 오렌지
Anguria 앙구리아 : 수박
Cantalupo 깐딸루뽀 : 캔탈로프 혹은 주황색 메론
Ananas 아나나스 : 파인애플
Frutti di bosco 프루띠 디 보스코 : 야생 베리
Noce di Cocco 노체 디 꼬꼬 : 코코넛

[ 기타 맛 ]
Cioccolato 쵸꼴라또 : 초콜렛
Mandorla 만돌라 : 아몬드
Noce 노체 : 호두
Castagna 까스따냐 : 밤
Stracciatella 스뜨라치아뗄라 : 바닐라와 초콜릿 칩
Bacio 바치오 : 다크 초콜릿 헤이즐넛
Nocciola 노춀라 : 헤이즐넛
Panna 빤나 혹은 Fior di latte 피올 디 라떼 : 바닐라 크림
Menta 멘따 : 민트
Cannella 깐넬라 : 계피
Pistacchio 삐스따끼오 : 피스타치오
Caffè 까페 : 커피
Gianduia 쟌두이아 : 밀크 초콜렛 헤이즐넛
Biscotti 비스꼬띠 : 비스킷


젤라또 맛을 미리 맛보고 싶다면 맛보고 싶은 맛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면 된다.



Posso provare? (뽀쏘 쁘로바레?)



이 젤라떼리아에는 특색 있게도 와인맛 젤라또가 많았다.


우리는 브라께또 와인과 모스까또 와인 맛 젤라또를 먹었다.








신혼여행 중 유일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 Ristorante Duomo



젤라또를 뚝딱 해치운 우리는 두오모 인근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Ristorante Duomo 리스토란테 두오모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힘을 빡 준 우리 신혼여행 중에서도 유일하게 미슐랭 2스타였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만약 특별한 기념일이나 신혼여행 때 라구사를 방문한다면 맛과 분위기 둘 다를 잡은 이곳을 추천한다. 라구사 이블라에 있는 유일한 미슐랭 맛집이다.



Duomo Ristorante
Ibla, Via Capitano Bocchieri, 31, 97100 Ragusa RG, 이탈리아

https://goo.gl/maps/XLCnWqQQWhMCq8Pb7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만큼 식사 비용이 250유로 이상(2인 기준, 음료 포함) 나왔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분위기와 서비스,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라구사에서 고급 정찬을 하고픈 이들에게 추천한다. 식전에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칵테일부터 개성 있고 훌륭해서 기분이 고양되는 곳이다.



입구부터 포스가 있다. 모던하기보다는 전통적인 느낌이고 나름대로 낭만적이기도 하다.
메뉴만 보아도 미소가 나오는 돼지로드 부부
식전주로 칵테일을 한 잔씩 시켰다.
정신이 없었는지 메인 메뉴는 사진을 못 찍었다. ㅠㅠ
와인 메뉴



이곳에서의 식사는 셰프 치치오 술타노(Ciccio Sultano)가 시칠리아의 신선한 해산물을 잘 활용하여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서 참 좋았다. 다른 시칠리아 식당에서 맛본 것처럼 날 것 그대로의 해산물에 살짝 양념을 한 요리도 많았다. 남편이 셰프가 엄선한 애피타이저 디쉬들을 코스로 맛보는 ‘Chef decides for you’(60유로)라는 메뉴를 주문했는데, 조그마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해산물 요리를 차례로 맛보고 다음엔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하며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초밥집에 있는 오마카세 메뉴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재미랄까!


사실 남편은 평소에도 메인 요리보다 애피타이저 메뉴를 좋아한다. 어딜 가든 메인은 생선이나 고기를 굽는 등 조리해서 큰 차이가 있기 어려운데 오히려 애피타이저에선 집집마다 더 큰 차이와 섬세한 미식의 끝을 볼 수 있다고. 애피타이저는 혀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는 역할을 많이 하지만 메인 요리는 배를 채우는 역할을 더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유명한 구르메 요리인 푸아그라, 캐비어, 달팽이 등은 전부 메인이 아닌 애피타이저다. 어쨌든 유러피안 스타일로 애피타이저, 첫 번째 요리, 두 번째 요리, 디저트 등을 전부 먹을 자신이 없다면 메인을 과감하게 스킵하고 애피타이저를 두 개 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위에 큰 부담 없는 미식을 하고 싶을 땐, 메인 대신 스타터를 두 개 시켜라!



그렇게 해서 chef decides for you에서 처음 나온 디쉬. 시칠리아의 전통 디저트인 까놀로에 부드럽게 숙성한 생새우를 곁들였다.
눈도 입도 즐거웠던.chef decides for you 메뉴



아니 무슨 빵 위에 토마토만 올린 것 같은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는 종종 올리브오일도 와인처럼 보여주며 원산지 등을 설명한다.


이 날 우린 시칠리아의 화산 에트나 산지에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 Pietradolce Archineri(60유로) 2016년 산을 선택했다. 생선 요리를 많이 시킨 날이어서 화이트 와인으로도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시칠리아 에트나 산지는 레드보다 화이트 와인이 더 훌륭한 것 같다.


이 와인은 Pietradolce 삐에뜨라돌체라는 와이너리가 Carricante 까리깐떼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품종은 시칠리아 에트나 화산 산지에서 적어도 1000년 이상 서식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남다른 산도와 수확량으로 알려져 있다. 수확량이 어찌나 많았는지, 이탈리아어로 엄청 많은 양을 뜻하는 carica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까리깐떼 품종의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레몬, 오렌지, 자몽 등의 시트러스  아로마와 민트 등의 쿨링 허브 아로마를 뽐낸다. 까리깐떼는 에트나 DOC 와인의 필수 품종으로 에트나 DOC 화이트 와인은 표준 에트나 화이트 와인(standard Etna Bianco)에 최소 60% 이상 함유되어야 하며, 최상급 에트나 화이트 와인 (Etna Bianco Superiore)에는 최소 80% 이상 함유되어야 한다. 까리깐떼와 가장 자주 블렌딩 되는 품종으로는 Catarratto 까따라또가 있다. 이 품종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해보라.




여행 중 맛본 에트나 지역 화이트 와인은 다 훌륭했다!



트러플 카푸치노와 캐비어, 치즈 등을 곁들인 chef decides for you의 메뉴 | 홍합, 오징어, 미트볼, 조개, 라구사 치즈를 곁들인 까르보나라 소스 감자 뇨끼



지금 이 뇨끼 한 알만이라도 먹고 싶다..! ㅠㅠ




chef decides for you의 다른 메뉴들
여기까지가 chef decides for you!
성게알과 쌉쌀한 fume 소스를 곁들인 끼따라 파스타
내가 메인으로 시킨 양고기 요리


총 279유로라는 큰 금액이 나왔지만 와인과 칵테일, 시킨 요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나올 법한 식사였다. 나중엔 너무 배가 불러서 더 이상은 한 입도 못 먹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이 액수를 보고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은 건 아니다..!





길고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마법이 걸려있는 듯한 라구사의 골목골목을 걸어 호텔로 돌아갔다.





라구사의 밤,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경험이다.



여행은 이러한 추억들이 모여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 끝없는 즐거움의 자양분을 남겨둔다는 점에서 가장 가치 있는 소비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나와 남편은 그런 가치관이 통해서 최고의 여행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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