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가질 수 없는 너란 녀석, 게으름
좋은 소파를 사 본 적이 없다.
가볍고 심플한 소파를 좋아하고,
싫증이 나면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도록
가성비 좋은 소파를 구매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신랑이 소파를 바꾸자고 성화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 집에 딱이라고 퇴짜를 놓았더니,
이번엔 본인을 위한 1인용 리클라이너를 하나 사겠단다. 브랜드도 이미 골라뒀다.
그 이름도 유명한 "레이지 보이(La-Z-Boy)."
레이지 보이는 리클라이너로 워낙 유명한 브랜드라서 편안할 거라 생각된다.
다만 가격은 좀 부담스럽긴 하다.
며칠간 기승전 레이지보이를 듣다보니, 그 이름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런데 그 이름, 참 잘 지은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레이지(게으름)’는 단순한 편안함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게으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연휴에 폭신한 침대에서 점심때까지 뒹굴거리는 모습이다.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을 온전히 풀어놓은 상태로 말이다.
편안함은 그에 비하면 좀 밍밍한 느낌이다.
요컨대, 사실 ‘게으름’ 이미지 자체는 날것의 휴식같은 긍정적인 느낌이다.
다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살다 보니 게으름을 부리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뒤처지는 거 아냐?'
조바심에 쩔은 불안감이 나를 조여온다.
쉽게 누릴 수 없어서 그런지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아이러니하게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처럼-
신랑이 나를 꼬드긴다.
"내가 더 잘 쉬어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거야."
열심히 살기 위한 레이지 보이라니,
재밌는 걸까, 씁쓸한 걸까-
게으름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깐 멈추어 숨을 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열심히 사는데 이 정도 사치는 부릴 수 있어!"
샤넬백은 못 사도 게으름은 부릴 수 있는 거 아닌가?
게으름은 정도(수준)가 아닌 빈도가 문제니까,
가끔 부리는 게으름에 대한 반감은 내려두고, 충분히 즐겨야겠다.
그것이 다시 달릴 힘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