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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날적이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지

"엄마도 '폭삭 속았수다' 봤어?"

by 글도장

엄마가 오래간만에 집에 들르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폭삭 속았수다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 '폭삭 속았수다' 봤어? 신랑이 장모님도 이거 보시면 너무 좋아하실 것 같다더라고."

"그럼, 이미 아빠랑 같이 다 봤지."

"어땠어?"

"응, 극 중 문소리 나이가 엄마랑 비슷하더라고. 근데 엄마는 사실 그렇게까지 고생을 안 했었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더라."

"너희는 거기 딸에 비하면 참 고생 없이 컸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아이유는 서울대를 갔지~~."

흠. 쉽사리 예견(?)되었던 대화의 흐름이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나 싶을 때, 엄마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우리 엄마 생각이 나더라.

우리 엄마도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결혼해서 억척스럽게 우리를 키워냈잖아, 칠 남매를."


나의 외할머니.

사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주 가끔 우리 집에 오실 때면 나는 내 방을 양보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할머니 머리맡에 있던 은색 주전자, 주무시다 목마르시면 드시라고 준비해 두던 그 주전자. 또 할머니의 냄새,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향 냄새. 코 고는 소리.

그것들이 내가 가진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의 거의 전부일 정도다.


그런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는 오늘 새삼 꺼내놓은 것이다.

"엄마(외할머니)가 내 나이 즈음 돌아가셨잖아. 칠순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진 것 하나 없이 외할아버지와 결혼해 이런저런 장사와 사업으로 나름의 부를 축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네 칠 남매는 그 당시에도 끼니 걱정, 학비 걱정 없이 자랄 수 있었다. 또 칠 남매를 그 시골에서 고루 명문대에 보낼 만큼 성공적으로 키워내셨다.

"우리 엄마(외할머니) 정말 고생 많이 했지... 그나마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엄청 다정하고 위로가 되는 존재라 다행이지만..."


언젠가 우리 집에 들렀을 때, 엄마와 함께 실버타운 구경을 가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가셨더란다. 엄마에게 "너희 집 근처에 살면 어떻겠냐"라고도 물으셨다고 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뜻 알고 있는 건, 외할머니는 아들들을 무척좋아셔서 함께 살고 싶어 하셨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하셨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러한 외로운 마음을 내비쳤다는 게 놀라웠다.

할머니는 그저 나에게 감정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무쇠 같은 여인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니, 그 드라마를 보니 엄마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희생하셨는데, 마지막이 그리 행복하지 않으셨으니… 우리 엄마가 친밀한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엄마가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극 중에서는 그래도 자식이 다 알아주잖아. 우리 엄마에게는 나밖에 없었다는 걸..."




엄마의 담담한 어조와는 달리 그 말은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평생 희생했건만, 그 희생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여인. 마지막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여인.

그리고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여인의 딸.

엄마는 외할머니의 인생이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동시에 딸로서 그 희생을 충분히 알아주지 못했나 하는 미안함을 함께 느끼시는 듯했다.


오늘 밤, 엄마가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딸로 느껴졌다. 엄마도 엄마가 그립구나.

그리고 나도 다짐해 본다.

엄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더 많은 감사와 표현을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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