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일까? 내 몸에 걱정 DNA가 장착된 때가?’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큰 홍수가 났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임신한 몸으로 지하실 가득 찬 구정물을 걷어내고 또 밤새 물이 차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셨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걱정이 참 많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걱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험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걱정이 되고 무언가 하려 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경우의 수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었다.
걱정도 유전인가, 우리 딸도 걱정이 많다. 아니 사실 짚히는 구석이 하나 있다. 임신했을 때 막장 드라마를 엄청 봤더랬다. 주인공이 악녀였는데 악행을 어찌나 저지르고 다니는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불안 불안했다. 게다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일 때라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TV를 봤던 기억이 난다. 뱃속부터 불안감을 선행학습한 이 걱정쟁이 딸에게는 뭘 하나 시키는 것이 무척 어렵다. “만약 ~하면 어떻게 하지?”“그래도 또 그러면 어떻게 하지?”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러면서 남이 그러는 건 관대하지 못해서 큰일이다.
나는 내가 왜 걱정이 많은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좀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무언가 나의 예상을 벗어나면 무척이나 당황한다. 당황하는 내 모습이 싫다.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어머님이 누구니 싶다. 이런 나를 잘 알기에 나는 좀 미리 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는 방안이고 어쩌면 그래서 MBTI의 J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우리 딸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 같다.
한 번은 친구가 이야기했었다. “모두가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지? 단지 말을 안 할 뿐 다 크고 작은 걱정들이 있는 거야.” 뒤처지는 것 같아 한창 의기소침해져 있는 나를 보고 해준 말인데, 그땐 그냥 위로의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면서 보니 사실이었다. 굉장히 잘 지낸 줄 알았던 친구가 “사실 나 얼마 전에 힘들었었어..”라고 얘기해서 놀란 적도 있었고, 내가 그 얘기를 했을 때 똑같은 반응을 보인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나는 ‘누구에게나 고난의 총량은 동일하다’는 말을 되새긴다. 언제 고난을 겪는지가 다를 뿐 모두가 평생에 걸쳐 동일한 양의 고난을 겪는다는 거다. 사실인지는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위로는 되는 말이다.
난 걱정 많은 내가 걱정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니까 말이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 레벨이 기초대사량이라면, 나는 기초 스트레스 대사량이 높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 걱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고, 걱정을 조금 더 덜어보기로 결심했다. 글도 그 일환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나의 걱정을 들여다보며 때론 관점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심경고백 비슷한 걸 해가며, 걱정을 털어내고자 한다. 모두가 걱정을 안고 사는 세상에서 나의 글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고민하며 사는구나'라는 조그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