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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불러온 걱정

영상이 잘못했네..

by 글도장

나는 뭘 좀 ‘하는’ 여자다.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뭔가를 계속 시도하는 여자다.

작년 말, 부업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이건 좀 따라 해 봐야겠다’ 싶은 걸 하나 찾았다.
바로, 힐링 영상 만들기.

힐링 영상은 쇼츠에 비해 사람들이 오래 틀어놓고 봐서 수익이 나기도 하고, 만들기도 쉽다고 했다.
실패하더라도 요즘 시대에 영상 하나쯤은 만들 줄 알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유튜브 설명에 따라 영상 제작 사이트에 가입했다.


‘뭘 만들지?’

‘일단 힐링이니까… 내가 힐링되는 바다 영상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바다가 내 걱정을 날려준다’는 주제로 흘러갔고,
나는 열심히 바다 영상들을 모아 종이 붙이듯 쓱쓱 이어 붙였다.
경쾌한 음악에 ‘파도와 함께 걱정을 흘려보내세요’라는 메시지도 넣었더니,
내 눈엔 제법 그럴싸했다.

넘치는 뿌듯함을 나만 간직할 수가 없다.

이제 만들었으니, 자랑할 시간이다.
신랑에게 영상을 보냈다.

“이거 왜 보낸 거야??”
“응, 내가 만들었어. 함 봐봐. 잘했지?”

영 신통찮은 반응에 나는
이게 아주 뜨는 부업 아이템이며,
나는 곧 돈을 벌 거라는 희망찬 이야기들을 한가득 늘어놓았다.
결국 “잘 만들었네”라는 말은 받아냈다. 성공.


며칠 뒤, 신랑이 갑자기
이왕 영상을 만들었으니 시댁과 친정 단톡방에 올리자고 했다.
사실 신랑에게는 낯짝 두껍게 자랑했지만,
막상 퀄리티가 하찮은 걸 생각하니 밖에 내놓긴 좀 부끄러웠다.

나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랑은 장난스레 친정 단톡방에 그걸 올려버렸다.

“oo이가 처음으로 영상을 만들었어요~”
뭐 이런 멘트를 달려고 했던 것 같다.

단톡방에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내가 생난리를 부렸고,
실랑이를 하다 보니 멘트 달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곤 그 영상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다음 누군가의 톡에 의해

자연스럽게 묻혀버렸다.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조심스레 물으셨다.


“혹시... o서방 요즘 무슨 일 있니..?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지…?”

“엥? 아니, 왜?”

신랑이 혹시 엄마에게 무슨 말을 했나?? 하는 의문을 갖는 찰나,

“아니…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바다만 계속 나오는 영상을 올렸길래…
무슨 근심이 있나 싶었지…
아빠랑 둘이 o서방이 요즘 많이 힘든가 보다 했어.”

그럴 만도 했다. 1분 35초 동안 바도와 파도, 모래사장만 나오는 영상이다.

그 얘기를 듣고, 신랑과 나는 배꼽 빠지게 웃었다.

신랑은 내가 말리는 바람에 미처 영상에 대한 설명을 못했고,
결국 본인만 장인장모께 힘든 걸 어필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며
가볍게 나를 탓했다.


그런데 오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후로 몇 달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저 멀리 외국에 있는 오빠와 새언니도 그 영상을 보고 설전을 벌였단다.


“ 아무 의미 없이 올릴 사람이 아닌데..."

" 무슨 뜻일까..?”
“ 많이 힘들다는 건가?”
“그냥… 여행 가고 싶단 얘기겠지…”


오해가 불러온, 작고 재미있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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