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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걱정

by 글도장

세상엔 쓸데없는 걱정도 많지만, 고귀한 걱정도 있다. 남을 걱정하는 마음. 혹시나 나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내 걱정이 섞여 희석된 것이 아닌, 온전히 순수한 타인을 향한 걱정.


그 눈빛을 최근에 봤다. "지금은 괜찮지만 여러 가지 일로 많이 힘들었어" 얘기하는 나에게 친구는 몇 번이고 "말을 하지 그랬어"라고 말했다. 친구의 눈빛은 안타까운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마음이 녹아난 뒤늦은 위로가 참 든든했다.


걱정은 가족이나 지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 걱정의 대상이 가족, 친구, 지인이 아닌 정말 잘 모르는 사람을 향한 것이라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대가 없이 남을 위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참 귀하다.


또 다른 친구와의 일화다. 이야기 도중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잠깐의 통화를 마치고 "누구야?"라는 내 질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다.

업무적으로 알게 된 분인데, 그분의 지인 자녀가 최근에 안 좋은 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자녀가 우리 아이의 또래쯤 된다는 말에 마음이 더 안 좋았던 친구는 백화점에 들러 아이가 쓸만한 부드러운 모자를 사서 그분에게 보냈다고 한다. 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지면 아이가 속상해할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모자를 전달했던 분은 아이의 어머니께서 너무 감사해하며 무언가를 보내주시려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고귀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에 감화되어 연신 "정말 잘했어"라는 말을 해주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조용히 손 내미는 마음은 참 따뜻하다.

문득,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운 한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측은지심’이다.”

맹자가 말한 인간의 네 가지 본성 중 하나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타인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보고 가엾게 여기고 돕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감정.

요즘 시대의 ‘측은지심’은 어떨까? 다들 먹고살기 바쁘고, 배려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점점 잊혀 가는 것 같다. 또 다른 문제는 ‘무늬만 측은지심’이다.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남을 돕는 경우다. 이런 배려는 겉으로는 따뜻해 보이지만, 정작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 속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진심이 빠진 배려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언젠가 아는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신부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대.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에게는 그날이 최악의 날이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나의 한마디에 그 사람이 무너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래."


굉장히 와닿는 말이었다. 오늘 하루 곁을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사연을 알 수는 없지만, 길거리의 그 누군가에게도 "저 사람은 오늘 너무 힘든 하루를 겪었을지도 몰라..."라고 측은지심을 미리 갖는다면, 우리 말투나 행동도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누군가의 최악의 하루에 나의 작은 친절이 아주 조그만 위로가 될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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