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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릴 용기

걱정과 행동 그 사이

by 글도장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일상 속에서 의외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공공 화장실 문.

지난 설 연휴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도 한 글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비. 트. 밖. 스” 글귀는 아니고 한국도로공사에서 만든 슬로건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를 열고, 밖으로 나가서 스마트폰으로 신고!”

사고가 났을 때 행동지침을 센스 있게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눈길을 끈 이유는 단지 기발해서가 아니었다.

“트렁크를 열고”라는 표현에서 나의 걱정에 얽힌 일화가 생각나서였다.


작년 어느 날,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려고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차가 밀려 있어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내 앞 앞 차가 멈춰서 가질 않는 거다.

앞 차가 차선을 바꿔 떠남과 동시에 그 차의 트렁크가 열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트렁크를 열고 있지? 말해줘야 하나?’

어렵사리 차선을 바꿔 그 차를 스쳐 지나가는데, 찰나에 스친 그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으로 운전석을 젖힌 체, 무력하게 몸을 뒤로 완전히 기대어 있는 모습.




이미 그 지점을 지나왔건만, 내 걱정회로는 한참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를 우연히 알게 되고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앉아있는 건가??'

언뜻 여느 막장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망연자실한 모습말이다. 극단적인 상황들이 머릿속에 채우기 시작했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그녀가 그렇게 앉아있다가는 사고를 당할 것만 같은 걱정이 급습했다.

‘신고를 해야 하나.. '

'아냐 또 내가 별 것 아닌 건데 잘못 신고했다간 오히려 119에 민폐지..’

나는 또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의 딜레마에 빠져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전화를 걸었다.

뒷 좌석에는 딸이 타고 있었고, 나는 남의 위험을 모른 척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게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저 제가 방금 ~~를 지나다가 한 차가 서 있는데...”

“그 차 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한참 그 차량과 운전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차가 어떤 상태였나요?" "운전자는요?"

나는 그녀가 얼마나 상심한 모습이었는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트렁크가 열려있었고.."고 말 한 순간, 상황은 종료되었다.

“아마 뭐가 고장이 났나 보네요. 트렁크 보통 열어두니까요.”

"......??!"

느낌이 슬슬 왔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배우자의 외도 사실을 알고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에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그저 차가 고장 나서 그러고 있었을 확률이 훨씬 컸다!

'아뿔싸!'

고맙게도 ‘만에 하나’의 상황을 위해 출동해 주신다고 하셨고,

몇 분 뒤 다시 전화를 주셔서 그 자리에 그런 차가 없다고 얘기해 주셨다.

나는 불편을 드려서 죄송한 마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민망함을 추스르려는 순간,


"여보세요, 저 제가 방금..?"

어색한 분위기 속에 갑자기 익숙한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첫 119 통화야!"

흥분한 딸은 내가 119와 통화하는 내용을 본인의 휴대폰으로 녹음했던 것이었, 통화를 마치자 그 파일을 재생해서 듣고 있던 것이었다.

“... 그 녹음 좀 얼른 지워....”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착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모두가 지나쳤지만, 그녀가 도와주고 치료해 줬다는 얘기이다.

실제 프랑스에는 ‘착한 사마리아 법’이 있는데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특별한 구조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를 벌하는 법이라고 한다.

비록 나의 무지와 걱정에서 비롯된 오버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쪽팔린 사마리아인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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