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는 노노!
커피 심부름 하는 조카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간 나의 조카는 아침마다 아빠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용돈을 받는단다. 그 조그만 손으로 야무지게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린 후, 정수기 앞으로 가서 쪼르르 뜨거운 물을 따르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데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육아에 있어 걱정이 미치는 영향, 오늘의 이야깃거리이다.
어리게 키운 아이
우리 딸은 생일이 늦다.
월령이 늦은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알 거다.
또래에 비해 늦된 아이는 손이 많이 간다.
특히나 나 같은 걱정쟁이 엄마와의 만남은 더욱더 아이를 '어리게' 키우도록 만들었다.
뭘 하나 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니 자꾸 내가 대신해 주게 되고,
"안돼"라는 말을 달고 살게 되었다.
육아 서적에서 거절을 남발하면 안 된다던데, 내가 그랬다.
"위험하니 자전거 안돼",
"혼자는 위험해서 안돼"
아이가 독립적으로 크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정작 그렇지 못하게 행동해 왔다.
종종 생각하고 반성한다.
아이가 한참 클 때까지 혼자 두고 외출을 못했다. 아이도 자기 두고 가지 말라며 징징댔고,
내 머릿속에 '집안에서의 사고율이 가장 높다'는 여느 사고통계수치표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한 번 경험한 이후로는 아무것도 아닌 걸 알았더랬다.
학원에 데려다주는 것도 그랬다.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라니까
꾸물대다 놓쳐버리는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화를 버럭 내면서도 데려다주곤 했었다. 학원가가 차가 많아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불안감을 한 번 넘어서고 나니,
내 걱정이 아이의 성장을 막고 있었나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질문이 화를 부른다
아이가 커갈수록 자기 의견이 강해지고,
충돌 또한 잦아진다.
어느 날은 도대체 어떤 시점에서 늘 충돌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탁 떠오른 키워드가 있었다. '질문!'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제법 자기 얘기를 조잘조잘하는 편이지만, 정작 내가 궁금한 부분은 잘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불안감을 잔뜩 건드려놓고선 또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추가 질문을 하면 어느새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런 거다.
"엄마 나 오늘 이러이러해서 기분이 안 좋았어"
"아 근데 그게 왜 그런 거야?", " 그럼 다 해결된 거야??"
나는 이 상황이 종결된 건지 내가 추가적으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을지 알고 싶어서 질문을 쏟아내는데,
그 지점이 바로 싸우게 되는 지점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사실 나의 잘못인 것 같다.
내가 이 아이를 믿지 못해서, 이 아이가 스스로 그런 감정을 극복하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믿음에 근거는 필요 없다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공통적으로 자식을 믿어주는 부모가 있다. 꼭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말이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졸업 후에 다 같이 찾아뵌 적이 있다. 그중 한 친구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 친구의 어머님이 너무 인상적이었단다.
딸을 너무나 믿어주는 게 보였다는 그 말이 내 뇌리에 박혔던 적이 있다. 그런 어머니 덕택인지 그녀는 정말로 인성적으로도 훌륭하고 멋진 여자로 성장했다.
다듬지 말고 보듬기
육아책을 많이 봤더랬다.
아이가 가진 그대로의 싹을 잘 틔울 수 있도록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내 삶의 지혜라는 이유로 그녀를 다듬어가려 하는 것이다.
내가 다듬어내는 그녀는 잘 돼도 딱 나 정도일 텐데 말이다. 나는 그녀가 훨씬 더 멋지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막연하더라도 장기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결국은 잘 자랄 것이라는 믿음.
그게 없으니 아이가 거짓말 한 번 하면,
내 꾸지람 속에 세상 못된 사기꾼까지 돼버리는 것이다.
우리 딸은 "결국엔 잘 될 것이다."를 마음에 새기고 조금 더 그녀를 믿고 그녀에게 관대해져야겠다,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