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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날적이

어른으로 가는 길

바라보기의 기술

by 글도장

정오의 브런치

나는 발이 넓지 않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제법 있다. 오랜만의 근황을 나누고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무엇을 깨닫고 있는지, 마음 깊숙한 부분까지 꺼내 놓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그런 친구와의 만남 이후였다.

트러플 향이 가득한 화이트라구 파스타와 블루베리 프렌치토스트, 그리고 고소한 우유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라테 두 잔을 앞에 두고 이어간 정오의 브런치.

그리고 그 브런치를 나의 브런치에 예쁘게 담아본다.


"10년간 지켜봤어요"

그녀는 최근 몇 년 전부터 깨닫게 된 것이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예전에는 당연히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사고의 흐름으로 움직인다고 여겼다고 한다. 이를테면 내가 서운하지 않으면 상대도 서운하지 않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간 아이를 키우면서 서서히 달라졌다. 자신과 MBTI가 정반대인 아이를 지켜보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걸 몸소 배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래서 그냥 얘를 쭉 지켜봤어요.

어떤 행동을 할 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서 남편에게도 많이 물어봤죠.”


“10년간 이 아이를 지켜봤다.”

그 말이 아주 오랜만에

글쓰기로 이끈 한마디였다.


호기심의 눈 vs 조바심의 눈

나는 내 아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정작 ‘이 아이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태어난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었다.

그녀의 눈이 바쁘게 움직일 때,

나의 손이 바빴을 뿐이었다.

그 깨달음이 크게 다가왔다.


그녀는 일찍이 아이의 다름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나는 그 다름을 ‘어려서 그렇겠지, 시간이 지나면 비슷해지겠지’라고 여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보다 큰 다름 앞에서 당황하고 막막해진 것은 나였다.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마치 10년의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늦은 만큼 지금이라도 아이를 향한 호기심 어린 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켰을 때,

공교롭게도 비슷한 울림을 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말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정의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과 사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무력감.

내가 근래 자주 떠올리던 말이었다.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아이는 내 생각과 다르게 행동할까… 나는 너무 무력감을 느낀다.”라고.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힘들게 느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새삼 부끄러움 속에서

그 모든 것이 나의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한참,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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