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놈만 패.”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대사. 그리고 그게 바로 나다.
노래도 꽂히면 무한 반복. 카페도, 음식점도, 가는 곳만 간다. 미용실도 그랬다.
한참을 잘 다니던 미용실 디자이너분께서 그만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미용실이 워낙 가깝고 좋아 그곳에서 다른 디자이너분을 찾아봤다.
후기도 후기지만, 결국은 느낌이다!
그래, 이 분으로!
차분한 인상의 디자이너는 처음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다정함으로 다가왔다.
말투도 조곤조곤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역시, 인상은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꼬마 손님들 얘기가 나왔다.
손님으로 연을 맺은 아이들이 연락을 해오거나,
직접 그린 선물을 주기도 한단다.
‘얼마나 다정하게 해 줬으면…’
조금 더 큰 친구들, 중고등학생 손님들과도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
많은 아이들이
머리 하러 와서 상담도 하고,
문자로도 가끔 힘든 얘기를 나눈다 했다.
“근데요, 아이들이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말할 곳이 없대요.”
“친구들 있지 않나요?” 물었더니, 친구들한테 고민 얘기하면 '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못한다는 거다.
문득 ‘진지충’이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진지하거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야, 왜 이렇게 진지해~”라는 핀잔에 입을 닫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기회가 의외로 없다.
어쩌면 나도 속 얘기를 다 배출하지 못해
브런치라는 공간에 이렇게 쏟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이 AI에게 홀리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잘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기에. 심장도 피도 하나 없는 게 말이다.
" 아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하는 얘기를 들어줘요"
아이들은 미용실에서 비단 머리만 다듬는 게 아니었다. 그게 디자이너분이 매장을 옮겼음에도
부지런히 자전거를 타고 이 매장으로 찾아오는 이유일런지도.
물론, 모든 미용실이 그렇진 않을 거다.
이건 그저 한 명의 디자이너와 몇몇 아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몇 명이라도 마음을 풀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이 시대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예상치 못한 곳에 내가 모르는 "이토록
친밀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풍요 속 빈곤처럼
피상적인 관계가 넘쳐나도 정작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다들 주변에 사랑방 하나쯤 있기를 바라본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미용실이든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저희 딸도 다음에 선생님께 보내야겠어요"
농담인 듯 건넸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있기를 바라기에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