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책이 있었다. 헤어짐에 있어서 각각 남녀의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서로의 마음을 우리는 독자이기 때문에 전지적 시점에서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예전에 집 앞에 인형이 하나 놓여 있었다. 누가 잘못 놓고 간 건지, 나를 준건지 혹은 식구 중 다른 사람의 것인지 평생 알 길이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과연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등등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내가 만약 죽기 전에 그중 딱 한 가지만 알 수 있다면 무엇을 알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어떤 사건이나 작품, 또는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나 배경을 말한다. 나는 인생에서 내가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사실들을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런 것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컨대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선물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선물을 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게 밝혀진다던가 그런 때 말이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때면 그 감사함은 배가 되는 것 같다. 친구가 한 번 아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는데,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새로운 걸 하는 걸 싫어하는데 나를 위해 노력하셨어요"라고. 아이는 엄마의 행동 저 너머 ‘비하인드’를 생각하고 그 마음에 감사를 한 것이다.
‘속사정’과 ‘꿍꿍이’ 둘은 같은 걸 의미하면서도 묘하게 그 뉘앙스가 다르다.
속사정이라 했을 때는 ‘말 못 할’이 따라붙고, 꿍꿍이라 할 땐 ‘도대체 무슨’이 따라붙는다. 전자는 상대를 이해하는 역할을 하고, 후자는 상대를 욕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말을 해도 그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름대로의 추리를 하게 된다. 저 말은 이런 뜻일 거야, 저 말은 저런 뜻일 거야라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보통은 ‘속사정’보다는 ‘꿍꿍이’를 더 궁금해하는 것 같다.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는 거다. 물론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너무 다 좋게만 생각하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어서이다. 그런 사람들은 ‘넌 너무 순진해’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마치 세상물정 모르고 어수룩한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나의 역치를 넘어가면 그때 내가 결단을 해도 된다. 이 사람은 아니라고 말이다.
다만, 늘 ‘꿍꿍이’로 남을 대하는 사람을 보면 피로가 몰려온다.
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좋아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감동이 밀려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올바르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좋은 일에 있어서는 그 행동 너머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더욱 감사하는 태도가 생기고 그러한 마음은 상대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
반면,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의도가 담겨있다는 의심이 생길 땐, 꿍꿍이보다는 그냥 그 행동 자체로 보는 것이다. 그냥 그랬나 보다 하고 말이다. 속상하면 속상해하고 그냥 내가 나의 스탠스를 정하면 될 뿐이다. ‘도대체 왜?’라는 말이나 ‘어떻게 나한테 그러지?’라는 생각은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니까 말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속사정’까지 헤어리는 건데, 그건 양심상 못 권하겠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을 바꿀 수 없다. 상황도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마음가짐이다. 그렇기에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올바른 ‘비하인드 스토리’의 사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