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을에 관광객들이 나타나기 전, 풀잎은 미우족의 젊은이들이 모두 탐을 내던 아가씨였다. 마을의 천덕꾸러기였던 혓바닥은 풀잎을 차지할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안내인의 통역이 된 혓바닥은 자신이 부족의 누구보다도 잘난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풀잎도 자기가 차지해야 했다.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우선 풀잎의 환심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번 시내에 나갔을 때 혓바닥은 큰 마음 먹고 그녀를 위해 머리 장식을 하나 샀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풀잎은 지난번에 갖다 준 머리 장식을 하고 있지 않았다. 혓바닥은 기회 있을 때 풀잎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갖다 준 머리 장식은 왜 안 하고 나온 거야?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걸로 사다 줄까?”
그러나 풀잎은 자기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혓바닥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풀잎을 골탕 먹이기 위해 낮에 관광객들이 왔을 때 그녀의 엉덩이를 슬쩍 만졌던 것이다. 큰활이 노려보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혓바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왕 노릇이 조금은 재미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잘 꾸며진 움막에서 여왕처럼 뽐내고 앉아 있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풀잎은 꼭두각시 놀음이 싫증났다. 그녀는 여왕이 아니라 우리에 갇힌 원숭이였다. 풀잎은 자신이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 노릇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 관광객들이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주는 일도 귀찮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관광객들이 계속 몰려오면 풀잎은 하루에도 몇 번씩 움막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했다. 처음에는 귀찮고 싫증이 났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제는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뿐이었다.
가끔 안타까운 눈으로 그런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큰활의 눈과 마주 칠 때가 있다. 큰활이 전부터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풀잎도 잘 알고 있었다. 큰활은 가끔 그녀에게 꽃을 꺾어다 주기도 했고, 눈처럼 하얀 토끼를 잡아서 그녀의 움막 앞에 갖다 놓기도 했다. 그녀도 큰활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풀잎은 이제 지난날의 풋풋했던 감정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나무 토막이 되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은 변했다. 풀잎은 자신의 운명은 물론, 미우족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큰어머니에게서 약초에 대해 배우던 시절이 그리웠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시절.
움막 한 구석에 있던 예쁜 머리 장식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에 혓바닥이 놓고 간 것이다. 풀잎은 머리 장식을 움막 밖으로 던져 버렸다. 꼴도 보기 싫었다. 풀잎은 전부터 혓바닥의 조그만 얼굴이 싫었다. 사내답지 못한 얼굴이었다. 말은 그럴싸하게 잘 하면서 사냥도 제대로 못하던 마을의 구박댕이가 이제 잘난 체하면서 안내인하고 같이 다니는 꼴이 아주 보기 싫었다. 며칠 전에도 혓바닥은 풀잎의 움막에 와서 바깥 세상 이야기를 대단한 자랑거리나 되는 듯이 떠들어 대었다. 그리고는 시내에서 어렵게 구한 거라면서 무슨 귀중한 물건이나 되는 듯이 그 머리 장식을 놓고 갔던 것이다. 전 같으면 풀잎을 탐낼 엄두도 못 낼 놈이었다. 그런데 그따위 물건으로 환심을 사려고 들다니, 풀잎은 그 날도 혓바닥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불쾌감을 참고 있었다.
풀잎은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은 차마 생각하기도 싫었다. 이제 혓바닥은 풀잎한테 노골적으로 치근거리고 있었다. 그 놈의 손이 닿았던 곳이 지금도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꺼림칙했다. 이 따위 여왕 놀음이 아니라면 혓바닥이 그런 짓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나타나고 여왕 놀음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혓바닥에 대한 혐오감으로 몸을 떨다가 풀잎은 큰 어머니의 움막으로 갔다. 큰어머니는 혼자 있었다. 풀잎은 큰어머니의 무릎에 쓰러졌다.
“큰어머니, 전 여왕 노릇이 정말 하기 싫어요.”
큰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여왕의 움막에 혼자 외롭게 앉아서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풀잎의 처지를 큰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풀잎이 찾아와도 큰어머니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풀잎의 꼭두각시 놀음을 막을 아무런 힘이 없는데 무슨 말이 위로가 되랴. 큰어머니는 그저 풀잎의 등을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큰어머니, 전 여왕 노릇도 싫고, 그리고, 혓바닥이 정말 싫어요.”
큰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혓바닥이 안내인의 입 노릇을 하면서 권세를 부리고 있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게다가 풀잎에게 딴 마음을 품고 치근대는 것도 알았지만, 이제 혓바닥은 큰어머니의 말도 듣지 않는다. 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혓바닥은 바깥 사람과 통하고 있었다. 미우족의 운명을 두 손아귀에 쥐고 있는 바깥 사람들과.
“내가 혓바닥을 불러서 못된 짓을 못하도록 혼내주마.”
큰어머니는 풀잎을 위로했다. 이제 예전 같은 권위는 없어졌지만, 더욱이 혓바닥은 미우족의 옛날의 권위를 우습게 알게 됐지만, 그래도 혓바닥을 불러서 전과 같은 위엄을 세워 보리라 생각한다. 풀잎은 큰어머니의 무릎에서 한참을 울다가 제 움막으로 돌아갔다.
큰어머니는 일체 관광객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큰어머니뿐만 아니라 마을의 나이 먹은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마을에 나타나면서부터 완전히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늙은이들보다 젊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구경거리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나타나기 전, 미우족 사람들은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눠 먹고 살았다.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다툼은 큰어머니의 권위로 다스릴 수 있었다. 바깥 사람들은 이 산골짜기에 자기들과 다른 말을 쓰는 토착민들이 백여 명이나 모여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러나 미우족의 조용하고 평화롭던 마을이 바깥 사람들한테 알려지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큰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바깥 사람들이 나타났던 때를 생각한다. 미우족은 우연히 바깥 사람들한테 발견을 당했고, 발견당한 사람들의 운명을 따르게 되었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바깥 사람들은 이들을 야만인 취급을 했고, 몇 가지 구경거리를 꾸며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미우족이 원하건 말건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을의 어른인 큰어머니는 바깥 사람들한테 완전히 무시당했다. 그녀는 그저 쓸모없는 늙은이 취급을 당했을 뿐이다. 바깥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좋아했다.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더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우족의 젊은이들은 갑자기 관광객들을 위한 구경거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예전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마을의 어른 노릇을 하고,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았다. 아무도 감히 어른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만약에 누군가가 어른의 말을 거역하면 그는 큰어머니 앞에 불려가게 되고,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그에게 벌을 가했다. 그러나 이제 마을의 질서는 깨져 버렸다. 마을의 연장자들은 점점 힘을 잃어갔고 큰어머니의 권위조차도 예전 같지 않았다.
혓바닥을 따라 바깥 세상을 구경했던 젊은이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이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우족 마을이 관광자원의 하나가 되면서 지방 당국은 이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했지만 이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먹을 것만 충분히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미우족은 변했다. 특히 바깥 세상을 알게 된 혓바닥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돈의 유용함과 그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혓바닥을 따라 술이라는 것도 마실 줄 알게 되었다. 한 번 술의 맛을 알게 된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술을 원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술은 지방 당국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의식주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차차 돈으로 먹을 것이나 다른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돈의 쓰임새를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 아무 데나 굴러다니던 돈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시작했고, 직접 만든 장신구 따위를 관광객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 힘들여 농사짓거나 사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들은 조잡한 물건들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열심히 팔기 위해 애썼고, 그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하였다. 또한 관광객들이 주고 가는 수고비라는 이름의 푼돈을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너도나도 밖으로 나가면서 마을에는 술이 들어왔고 담배가 들어왔다. 산골짜기 여기저기에서 술에 취한 미우족의 젊은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큰활은 이런 모든 변화가 싫었다. 관광객들 앞에서 전투하고 사냥하는 흉내를 내면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싫었고, 친구들이 돈을 가지고 다투는 것도 싫었다. 그는 예전처럼 짐승을 사냥하고, 풀잎의 남자가 되어 그녀의 농사일도 도와주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상관없이 마을은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이 변해가는 데 앞장서서 한 몫 하는 것이 혓바닥이었다.
혓바닥을 벼르고 있던 큰활은 돌팔매를 만나 얘기하고 싶었다. 돌팔매는 자기 마음을 알아줄 것 같았다. 관광객들이 모두 떠나간 저녁 시간에 큰활은 돌팔매의 움막을 찾았다. 긴손가락은 마침 큰어머니의 움막에 가고 없었다.
“돌팔매, 우리 미우족은 이제 어떻게 될까?”
“글쎄, 언제까지 이렇게 야만인 흉내를 내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요즘 우리 친구들이 너무 변했어. 사냥도 안 하고 걸핏하면 싸움질이나 하고 말야.”
“전에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그게 다 혓바닥 때문이잖아. 그놈이 마을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어.”
“그놈도 그놈이지만, 바깥 사람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우리 부족이 모두 변했어. 이젠 돈 때문에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하잖아. 난 무섭다. 이러다가 우리 부족이 어떻게 될지…”
“큰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큰어머니도 어쩔 수 없을 거야. 혓바닥이나 그 놈을 따라다니는 놈들은 큰어머니 말도 안 들어. 그런데, 큰활, 혓바닥이 풀잎한테 치근거리는 거 너도 알고 있지?”
큰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것을 보고 돌팔매가 말했다.
“이놈을 한 번 혼내 주자. 다시는 풀잎한테 서툰 짓 못하게 말이야. 풀잎뿐만 아니라 우리 미우족 전체를 위해서도 그놈을 혼내줘야 돼. 젊은 친구들이 다 혓바닥을 따라 다니는 건 아니니까 우리 편이 돼 줄 사람도 있을 거야.”
“그 놈들은 이젠 큰어머니 말도 안 들어.”
“그것도 혓바닥을 따라다니는 놈들이 그러는 거잖아. 우리 편을 찾아보자.”
큰 활과 돌팔매는 미우족의 젊은이들 가운데 자기들과 생각이 같은 친구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부족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5.
처음에 혓바닥을 따라 바깥 세상에 나갔던 젊은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한 번 나갔다 온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바깥 세상에 자주 나가는 혓바닥이 도시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최신 유행의 머리 모양을 하자 다른 친구들도 이를 따라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펴야 했다. 최신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는 머리도 매만지고 옷도 사야 하는데 모든 것이 돈이었다. 혓바닥은 특히 풀잎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도 돈이 더욱 필요했다. 그는 친구들을 부추겼다.
“우리가 날마다 관광객들한테 구경거리를 보여주는데 당국에서 겨우 먹을 것만 준다는 게 말이 되냐? 틀림없이 돈도 줄 거야.”
혓바닥이 말을 꺼내자 저마다 떠들어댔다.
“맞아, 맞아. 먹을 것만 준다는 건 말이 안 돼. 틀림없이 돈도 줄 거야.”
“그럼 그 돈은 누가 갖고 있을까?”
“큰어머니가 갖고 있지 않을까? 우리 마을에서는 큰어머니가 제일 높은 사람이잖아.”
“그래, 맞다. 그럼 우리 큰어머니한테 가서 돈을 달라고 하자. 우리가 날마다 구경거리를 보여줘서 받는 돈이니까 그건 우리 돈이나 마찬가지야.”
그들은 혓바닥이 바라는 대로 떠들어대었다. 혓바닥은 미우족의 젊은이들이 처음 바깥 세상을 구경할 때 그들의 스승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혓바닥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혓바닥의 무리들은 일단 큰어머니가 돈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돈을 얻어내기로 했다. 그들은 술에 취해 큰어머니의 움막으로 몰려갔다. 아무리 큰어머니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그 앞에서 돈을 달라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들은 술의 힘을 빌기로 한 것이다. 무리들의 앞에는 혓바닥이 있었다.
“큰어머니, 당국에서 주는 돈 있죠? 그 돈 우리한테 주세요. 우리가 관광객들한테 구경거리를 보여줘서 받는 돈이잖아요. 그 돈은 우리 거예요.”
혓바닥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체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였다.
“이놈들이 어디 와서 행패냐? 갑자기 돈은 무슨 돈이 있다고 이 야단들이야?”
“우리가 날마다 구경거릴 보여주는데 당국에서 아무 것도 안 준단 말예요? 거짓말 마세요. 우리도 다 알아요.”
다른 젊은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놈들아, 그 돈은 우리 미우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야. 너희들 술 마시라고 주는 돈이 아니란 말이다.”
큰어머니의 말에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야, 돈을 주는 게 맞긴 맞잖아.” 하면서 수근거렸다.
“늙은이들은 아무 것도 안 하잖아요. 우리가 일해서 주는 돈인데 우리한테 줘야죠. 왜 안 주는 거예요?”
한 놈이 다시 나섰다.
“늙은이들이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네 놈들 술 마시고 노는 동안 우리 늙은이들이 사냥하고 농사짓고 있다, 이놈들아!”
“그까짓 사냥하고 농사짓는 게 얼마나 된다고 그러세요? 우리가 버는 돈 우리한테 주세요.”
혓바닥의 무리들은 번갈아가며 막무가내로 떠들어대었다. 돈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놈들이 이제는 돈에 혈안이 되어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인 큰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그 소동에 마을의 어른들이 나타났다. 큰활과 돌팔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한 패거리들을 끌어내서 흠씬 두들겨 주었다. 평소에 혓바닥의 패거리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젊은이 몇 사람도 같이 달려와서는 이들을 두들겨 패는데 합세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군. 이제는 큰어머니한테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세상이 어찌 될 건지… 저놈들을 다 쫓아낼 수도 없고…”
어른들은 혀를 찼지만 큰어머니조차 우습게 생각하는 저들에게 그들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돈 문제로 마을이 이렇게 소란스러울 때 마침 당국에서는 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미우족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요구했다. 게다가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겠다고 했다.
이제 마을의 젊은이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혓바닥 패거리의 수가 더 많았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짐승 잡는다고 산 속을 맨발로 뛰어다니기보다 관광객들 앞에서 구경거리나 보여주고 술 마시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아무 힘도 없었다.
혓바닥 패거리들은 자기들이 맞은 것을 잊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종종 패싸움이 벌어졌다. 혓바닥 패거리들이 수가 더 많다고는 하지만 원래 사냥 잘 하고 힘쓰는 젊은이들은 큰활의 무리에 더 많았다. 이들은 평소에도 힘도 약하고 사냥도 못하던 혓바닥이 바깥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잘난 체 하는 꼴을 아니꼽게 생각하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패가 갈리자 그들은 큰활에게 가담했던 것이다.
큰어머니에게서 돈을 받아내려고 했던 무리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그 돈을 훔치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한 지가 벌써 여러 해 됐어. 그동안 받은 돈이 꽤 모였을 거야.”
“우리 그 돈을 훔쳐서 마을을 떠나자. 그 돈을 나누면 우리가 바깥 세상에 나가서 한동안 살 수 있을 거야.”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우리도 바깥 세상에 나가 살아보자.”
처음에는 큰어머니한테 돈을 얼마큼 받아내서 바깥 세상에 나가 술도 마시고 노는 데 쓰려고 했던 것이 이제는 일이 커져버렸다. 이들은 아예 돈을 몽땅 훔쳐내서 마을을 뜨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큰어머니는 움막을 비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패거리들은 머리를 짜내었다. 궁리 끝에 한 놈이 풀잎의 움막에 불을 지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불을 끄러 몰려 나가는 사이에 돈을 훔치기로 한 것이다. 풀잎의 움막은 여왕의 움막이라 혼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모르게 불 지르기가 쉬웠다. 게다가 마을에서 가장 넓은 평지에 세워져 있어서 주위에 불이 옮겨 붙을 염려도 적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풀잎이 불에 타 죽으면 어떡하냐?”
한 놈이 걱정했다.
“풀잎이 움막에 없는 시간에 불을 질러야지.”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면 일을 나누도록 하자.”
패거리들은 누가 풀잎을 감시하고 누가 불을 지를 것인지 하는 것 등을 의논했다. 그들은 돈을 훔치는 게 목적이지 마을을 다 불태우거나 풀잎을 불에 태워 죽일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관광객들이 없는 시간에 패거리들은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불이 나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뛰어 나왔다. 풀잎의 움막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큰어머니도 풀잎이 걱정되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풀잎이 움막에 없었다는 말을 듣고 큰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을 사람들은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산에서 흐르는 물을 떠다가 불을 끄려고 애썼다. 불이 난 것은 미우족 마을이 생긴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불 끄느라 우왕좌왕하는 동안에 혓바닥은 재빨리 큰어머니의 움막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뒤졌다. 돈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혓바닥은 큰어머니의 세간을 다 뒤집어 보고 바닥의 깔개까지 다 뒤집어 보았다. 큰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다. 한참을 뒤진 끝에 혓바닥은 드디어 돈을 찾았다. 생각보다 큰 돈이었다. 돈을 보자 혓바닥은 더욱 욕심이 생겼다. 돈을 다른 패거리들과 나눌 생각을 하니 아까웠던 것이다. 움막 밖으로 나온 혓바닥은 훔친 돈의 반을 떼어서 감췄다. 그리고는 남은 돈을 들고 얼른 산으로 올라갔다. 불 끄느라 정신없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혓바닥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혓바닥의 패거리들도 불 끄는 척하다가 하나 둘 산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패거리들은 모두 약속한 장소에 모였다.
“혓바닥, 돈은 찾았겠지?”
“걱정 마. 여기 있으니까.”
“어디 보자. 얼마나 되냐?”
“다 똑같이 나눠야 돼.”
패거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눈에 불을 켰다. 혓바닥은 훔쳐 온 돈을 내밀었다. 반을 떼어 낸 돈은 패거리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다.
“이게 다야?”
“왜 이렇게 적어. 우리가 구경거리를 보여주기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돈이 이것밖에 안 된다고?”
“내가 아냐, 임마? 그동안 쓴 것도 있겠지. 어쨌든 이 돈이 다야.”
“그래도 이건 너무 적다. 혓바닥, 너 혹시 돈을 따로 감춘 거 아냐?”
“맞아. 너 감춘 거 맞지?”
한 놈이 시작하자 저마다 혓바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혓바닥을 우두머리처럼 따라다니던 놈들이 돈 앞에서 대번에 안면을 바꾸고 혓바닥을 위협했다. 한 놈이 혓바닥의 멱살을 잡았다.
“사실대로 말해. 너 돈 따로 감춘 거면 죽을 줄 알아.”
“야, 뒤져보자.”
힘으로 치면 혓바닥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다. 원래 힘도 약하고 사냥도 잘 못해서 마을의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던 그였다. 멱살을 잡힌 혓바닥은 발버둥을 쳤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틈에 다른 한 놈이 혓바닥의 몸을 뒤졌다. 감춘 돈은 곧 발견됐지만, 혓바닥은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재빨리 움켜잡았다.
“야, 이놈, 혼자 다 해 처먹으려고. 이놈 죽여 버리자.”
패거리들은 달려들어 혓바닥을 주먹으로 때리고 돌로 쳤다. 그래도 혓바닥은 끝까지 그 돈을 포기하지 않았다. 죽도록 맞아가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움켜쥐었다. 마침내 한 놈이 큰 돌로 혓바닥의 머리를 내리쳤다. 혓바닥은 쓰러져 버둥거렸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패거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혓바닥의 손에서 돈을 빼앗았다.
“이제 우리끼리 똑같이 나눠 갖자.”
한 놈이 말했다. 그러자 혓바닥을 큰 돌로 쓰러뜨린 놈이 대들었다.
“야, 내가 혓바닥을 쓰러뜨렸잖아. 그러니까 내가 더 가져야지.”
돈을 빼앗은 패거리들은 그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시 다투기 시작했다. 그들은 쓰러진 혓바닥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혓바닥은 머리에서 많은 피를 쏟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남은 패거리들은 또 다시 자기들끼리 주먹질을 하고 돌로 상대방을 치기도 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악을 썼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6.
미우족 마을이 생긴 이래로 살인 사건은 처음이었다. 마을이 발견되기 전에는 서로 간에 크게 싸울 일이 별로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눠 먹었기 때문에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침내 서로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혓바닥과 그 패거리들이 한 짓을 모두 알게 되었다. 돈을 알게 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마을의 늙은이들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게 됐지만, 그러나 혓바닥의 죽음은 그들에게도 두려움이었다. 큰활과 돌팔매의 무리들이 큰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돈을 훔치고 살인에 가담한 패거리들을 잡아서 큰어머니 앞으로 끌고 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사람들은 분노에 차서 잡혀온 무리들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일부는 돌을 던지기도 했다. 한 사람이 돌을 던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돌이 날라왔다. 패거리들은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기도 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큰어머니는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말리지 않았다.
이제 죽은 혓바닥이 문제였다. 혓바닥의 부모는 비록 자식의 일이지만 마을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그동안 혓바닥이 한 짓이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혓바닥은 부모 말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혓바닥의 시체를 산에 묻어버리고 모든 사건을 감추고 싶었다. 그러나 안내인은 통역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궁리 끝에 그들은 시체를 혓바닥이 자주 다니던 시내에 몰래 갖다 버리기로 했다. 마치 시내에서 싸우다가 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시체의 여기저기를 칼로 찌르기도 했다.
당국에서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주민 한 사람쯤 죽은 것이 뭐 대단한 문제인가, 그들은 사건을 빨리 종료하기를 원했다. 따띠 형사는 피해자가 도시에서 불량배들과 싸우다 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원주민들에게 의심이 갔지만, 그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려면 시체가 어떻게 해서 시내에서 발견되었는지 설명해야 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의 협조가 없이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어려웠다. 그러나 벙어리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상대로 더 이상의 조사는 불가능했다. 원주민 한 사람을 누가 죽였든 당국은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조사는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고, 따띠 형사는 일을 쉽게 끝내기로 했다.
혓바닥이 죽은 후에도 미우족 마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구경거리를 보여줘야 했고 젊은이들은 돈벌이를 찾았다. 그런데 돈 맛을 알고 최신 유행을 좇는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구경거리에 관광객들이 싫증을 내고 있었다. 산 속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원주민이라고 했는데, 그들을 원주민으로 보기에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젊은이들의 머리 모양은 분명히 도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이미 혓바닥이 죽기 전부터도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 마을은 당국이 꾸며낸 가짜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당국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관광객은 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관광객 수가 줄어들자 지방 당국은 결국 마을을 폐쇄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미우족에 대한 모든 보조금도 끊어버렸다. 관광객들도 오지 않는데 미우족 마을에 더 이상 식량이나 보조금을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마을은 다시 세상에서 고립되었고, 이들은 자기 힘으로 모든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마을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문명사회의 도시 생활의 맛을 알게 된 이들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사냥도 농사도 다 팽개쳤다.
젊은이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도시에 나가 막일을 하거나 유흥업소 같은 데에서 청소 같은 잡일을 했고, 혹은 산속에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던 구경거리를 술집 무대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바깥 세상의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몸 쓰는 일밖에 없었다. 마을에 사람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늙은이들까지도 도시로 나가 뭔가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사람 없는 산 속 골짜기에서 몇 사람만 남아서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우족 마을에는 이제 큰활과 돌팔매를 비롯한 몇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풀잎도 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떠나고 미우족 마을이 와해되는 데에 충격을 받았는지 큰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큰어머니의 장례식을 그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치르기로 했다. 큰어머니의 장례식에는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갔던 많은 미우족 사람들도 모였다. 그들은 큰어머니의 시신을 산의 높은 곳에 모셔 놓고 모두가 시신 위에 돌을 얹었다. 큰어머니가 돌무덤에 덮여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모두들 그 앞에 꿇어 앉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뭐라고 외쳤다. 장례가 끝난 후 남은 사람들도 모두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더 이상 산골짜기에서 살 수가 없었다.
마을에 관광객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이후, 큰활은 그 변화를 싫어했고 달라진 마을 사람들을 걱정했지만 그도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풀잎도, 돌팔매도 모두 마을을 떠났고, 관광객을 끌던 산골짜기 원시마을은 완전히 사라졌다.
큰활은 풀잎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자기를 찾는 손님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힘 좋고 싸움 잘 하는 큰활은 술집에서 불량배들을 막는 일을 하고 있다. 풀잎은 도시에 나온 미우족의 다른 젊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술집의 접대부가 되었다. 산속의 원주민 출신이라는 사실이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 덕분에 인기 있는 아가씨가 되었다. 그녀는 미우족 마을에서 살 때 관광객들 앞에서 하던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제 손님들 잎에서는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그런 풀잎이 안타까워 큰활은 혼자 가슴을 친다. 술집에서 웃음을 팔게 된 풀잎이 언젠가 자기 색시가 될 수 있을까, 큰활은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2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