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by 이인숙 insouk lee

1. 여행의 시작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보는 경험은 늘 새롭다. 알아보는 사람 아무도 없는 도시의 길거리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무심히 오가는 사람들 바라보기만 해도 내 영혼은 자유의 날개를 단다. 작은 지방 도시의 한적한 거리, 낯설지만 정겨운 골목길들, 무심한 사람들, 무심한 자유… 이런 것들이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중부지방의 수도원을 찾아 떠나는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다. 같이 떠나는 적지 않은 길동무들이 있었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무심한 자유 같은 것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껏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단어, 이탈리아 수도원 순례…

천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중세의 수도원들, 묵직한 석조건물들, 그것만으로도 수도원 기행은 가슴을 뛰게 한다. 일상의 속(俗)된 공간을 벗어난 폐쇄된 성(聖)스러운 공간이 주는 낯설음, 이곳에서 우리의 피곤한 영혼이 잠시 쉬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수도원은 중세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어둠에 잠긴 중세라는 낯선 시간으로 들어가는 여행, 어찌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여정의 마지막에 만나게 될 피렌체는 중세를 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찬란하게 꽃핀 도시이다. 르네상스를 빛낸 뛰어난 천재들과 예술가들의 도시 피렌체 여정은 화룡점정이었다. 수도원 순례 여행에 더불어 ‘르네상스 예술기행’을 겸하게 되었다. 오가는 길에 만날 이탈리아 시골의 작은 마을과 전원의 아름다운 풍광은 가외의 기쁨이고 덤이었다. 오랜 세월 이탈리아에서 학업과 수도생활을 해온 바오로 신부님과 이현숙 수녀님이 우리와 함께 해 마음이 든든했다.

우리가 순례하는 곳은 이탈리아 중부의 움브리아 주와 토스카나 주에 위치한 수도원들이다. 이탈리아의 중요한 수도원들은 대개 이 지역에 있다고 한다. 토스카나 지방은 특히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움브리아 주는 로마가 있는 라치오 주 북쪽, 이탈리아 반도 가운데에 있으며, 비교적 높지 않은 산악 지형으로 포도원과 올리브 나무가 많은 지방이다. 토스카나 주는 움브리아의 서북쪽 지중해에 면한 주로서, 토스카나 주의 수도가 피렌체이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의 등뼈라 할 수 있는 아펜니노 산맥의 큰 줄기가 지나고 있으며, 상당히 비옥한 평원을 가지고 있다. 물결치듯 펼쳐지는 구릉이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주된 산업은 농업이다.


2. 수비아코로 가는 길, 성 금요일 행렬을 만나다


오후에 인천공항을 떠나 로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묵기로 한 수비아코의 수도원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각자 짐을 찾아 기다리던 버스에 오르니 밖에는 완전히 어둠이 깔렸다.

수비아코(Subiaco)는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 주에 위치한 고대의 자치도시(코무네)이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73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는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지금도 네로 황제의 별장 흔적이 남아 있는 고대도시지만 현재는 인구 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이다. 수비아코란 이름은 ‘수브 라쿠스(Sub lacus)’ 혹은 ‘수브 라쿰(Sub lacum)’이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는 ‘호수 아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근처의 아니에네 강으로 흘러드는 호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비아코는 성 베네딕토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으로, 이곳 산중에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과 성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가 별장을 짓고 사치와 향락을 누렸던 마을 수비아코에서 우리는 환락의 도시 로마를 떠나 산중의 바위동굴에서 수도하던 ‘유럽의 수호성인’ 성 베네딕토를 만날 것이다.

밤길을 달리는데 버스 창밖에 은빛으로 빛나는 둥근 보름달이 어두운 밤하늘에 빛을 뿌린다. 어디 하나 이지러진 데 없는 둥근 보름달이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첫날 우리를 맞이해준 보름달, 날짜를 확인하니 음력 3월 15일 보름이었다.

차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보름달을 따라 수비아코 마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니 성당 앞 광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어둠 속에 십자가를 앞세운 긴 행렬이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하는데 “아, 성 금요일 행렬입니다.”하는 바오로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행렬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 들어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날, 즉 고난주간의 금요일이며 부활절 직전의 금요일인 성 금요일, 우리가 도착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뜻밖에 만나게 된 ‘성 금요일 행렬’, 예기치 못한 기쁨이었다.

행렬은 오래 이어졌다. 성당에서 출발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성당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마침내 관 위에 누워 있는 예수의 성체와 아들의 뒤를 따르는 성모 마리아가 도착했다. 예수의 장례를 재현하는 것이다. 성체가 성당으로 들어갈 때 길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향해 기도를 하거나 십자를 긋는 사람들도 있었다.


20190419_222005.jpg

성 금요일 행렬. 젊은 남자들이 멘 관 위에 예수의 성체가 있다. 뒤에는 아들의 관을 따르는 성모 마리아가 보인다.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해 성 금요일에 예수의 고난을 재현하는 ‘성체 행렬’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가슴에 십자를 긋는 사람,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 말없이 행렬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 신심을 가지고 예수의 고난에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체 행렬은 유럽의 중세부터 있었던 오랜 전통이다. 그 시절에는 성 금요일 외에도 국가적인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성체 행렬을 거행했으며, 난세에는 날마다 몇 주일씩 거리를 누볐다고 한다.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14세기에 있었던 부르고뉴 공국의 내전 당시 몇 달 동안 이어진 성체 행렬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불타는 신앙심에서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맨발로 함께 걷거나 행렬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종교적인 의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특히 신심이 깊은 사람들에게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할” 정도로 깊은 마음의 울림을 준다. 현대인은 중세 사람들처럼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지 않지만, 성체 행렬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는 그들의 신심이 깊이 움직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수세기에 걸쳐 이어진 종교적 의례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전통의 아름다움이다. 전례(典例)를 따라 이어지는 종교적 의례는 고귀한 이상이나 신앙이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이미지화하면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80퍼센트가 넘는 이탈리아에서 전통은 살아 있는 힘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