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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Oct 27. 2019

그렇게 산을 오른다

먼 길 가는 방법

산은 산이라고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산 너머의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 작년부터인가 나는 산을 그렇게 오른다. 결심이 섰을 때, 오르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려 오른다. 아마 어깨가 부러졌을 때, 그때였을 것이다. 창 밖의 산이 내 마음속으로 폭 들어온 시점이.


삶의 제약은, 무엇을 하고 싶은데 무엇 때문에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 때다. 산을 꼭 오르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다. 어쨌거나 나는 하고 싶은데 혼자여서 겁나서 못한다는 마음에 지고 싶지 않다. 늘 그렇게 산을 오른다.


아빠에게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묻는다. "선생님,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그러면 하산하는 등산객 아주머니는 내게, 본인이 내려온 길은 험하니 저쪽 쉬운 길로 올라가라고 까지 알려주신다. 하산하는 사람들과 산을 오르기 전에 대화하면 그 에너지가 전해진다. 그들이 늘 하는 거짓말, '얼마 안 걸려요!'를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들으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게 된다.


산을 오르면서 산을 내려가는 사람을 많이 봤다.

오를 때는 내려가는 이만 보이고,

내려갈 때는 오르는 이만 보이는 구나. 

맞는 말을 혼자서 상대속도, 그룹 속도로 설명하는 이런저런 상상도 했다.



먼 길 가는 법은, 어쩌면 간단하다.

먼 길이라고 겁내지 않고, 짧은 길을 여러 번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로 코 앞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그렇게 산을 오른다.


오늘은 산에 가고 싶었는데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일이 참 귀찮았다. 차를 몰면 15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 환승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1시간이 걸린단다. 게다가 그 버스가 1시간에 1대다. 시간이 어긋나면 외지에서 발이 묶일 수 있다는 겁도 났다. 게다가 홀로 등산을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집 밖을 나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현관을 나서니, 나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씩씩하게 걸어서 첫 번째 버스를 탔다. 환승 정류장에서는 또,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 여기서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하는 합리화가 시작됐다. 그러다 정상까지는 가지 말고 중간에 있는 절까지만 오르자는 꾀를 냈다. 두 번째 버스는 나를 굽이굽이 외진 곳에 내려줬다. 그런데 내리니까 사람들이 아주 많더라. 그걸 보고서 휴, 다행이네 라고 생각했다.


오후 3시에 산을 오르는데 하산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으면 어떡하나, 는 마음은 오르면서 사라졌다. 나는 내 앞의 파란 잠바를 입은 부부를 페이스메이커 삼아서 뒤따라 올랐고 내 뒤에는 홀로 오르는 젊은 친구도 있었다.


안심이 되자, 절보다 조금 높은 전망대까지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이정표가, 0.4km만 더 가면 쉼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갔더니 이번에는 이정표가 0.4km만 더 가면 전망대가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또 갔더니 이번에는 정상이 0.5km만 더 가면 나온단다.


처음부터 정상은 이만큼이야,라고 했으면 내 첫 여정은 조금 벅찼을 테다. 찔끔찔끔 알려주는 이정표 덕에 나는, '그래 온 김에 요만큼 더!'를 외치며 정상에 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오늘 산을 오르다가 알아냈다. 늘 그렇듯 행동이 먼저 일어나고, 설명은 늘 나중에 붙는다는 걸 말해두고 싶다.


묵묵히 나의 길을 가려면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된다. 그러면 먼 길을 쉬이 갈 수 있는데, 머리로는 쉽다. 나는 그걸 몸으로 익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나 장거리 달리기나 등산은 같다. 내 페이스대로 가다 보면 결승선을 지나게 돼 있다는 점. 그러려면 지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속도 조절을 해야 된다는 점.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오버페이스라는 점. 그걸 체화하기 좋은 수단이다. 그러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오늘은 그걸 몸으로 익혔다.


안지는 오래됐는데

그 걸, 몸에 익히는 게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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