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학교를 떠나는 나의 친구에게
네 번째 조각
다채로운 조각은 익명의 사연을 콘텐츠로 창작하는 미니 프로젝트입니다. 창작자의 시선을 담아 사연자의 이야기를 글, 사진, 그림 등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연
먼저 학교를 떠나는 나의 친구에게
같은 해에 입학한 대학 친구가 졸업했다. 나는 2년을 휴학해서 내년에야 겨우 졸업할 것 같다.
같이 사진 찍자고,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를 위해 같이 사진을 찍었다.
'졸업하고 뭐 할 거야?'
그 시기 으레 하는 질문이 입에서 느닷없이 나왔다. 그러다 잠깐 아차 싶던 차에,
'아…. 뭐, 하하..'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애써 웃어넘기려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기분 좋으려고 한 날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얘길 꺼낸 것 같아 미안했다. 왠지 미안하다고 하기도 뭣해서 급하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사진 어디서 찍을까?'
나도 그랬을 것 같아서. 너는 매 학기마다 4점대의 학점을 받았고, 나는 뭐 하나 제대로 못 하고 한참을 헤맸어. 난 내가 뭘 해야 할지, 무엇을 잘하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너는 교수님이 시키는 것도, 동아리 활동도 뭐든 잘했어. 그런 네가 부러웠어. 그렇게 네가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똑같은 길을 두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많이 다치고, 굴렀어. 우린 분명히 같은 곳에서 출발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언젠가, 너는 내가 부럽다고 하더라. 이것저것 해보는 내가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자기는 모르는 걸 나는 많이 알고 있다고. 그때 솔직히 좀 놀랐다? 네가? 내가 부럽다고? 나는 줄곧 너를 부러워했었거든. 확실한 미래가 하나라도 있는 너를. 나는 계속 그걸 찾고 있었고.
'도전'... '용기'...
진심이었는지 형식적인 맞장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넌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 그땐 그냥 웃으면서 넘겼지만 사실 나, 도전한 것도 아니고 용기 낸 것도 아니야. 도망친 거야. 꿈이 확실한 다른 동기들만큼 열심히 할 자신도 없었고, 열심히 하고 싶지도 않아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엉거주춤하니 계속 있게 될까 봐 무서워서. 그래서 계속 이곳저곳으로 도망친 거야. 그래도 여긴 괜찮겠지...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
그렇게 다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어. 네가 날 불쌍하게 볼까 봐. 네 옆에서 한없이 초라해지기 싫었어. 그건 망한 시험, 제출 못 한 과제처럼 투덜대고 끝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니까. 차라리 생각 없이 사는 애인 게 낫지. 너한테는.
여느 때처럼 그렇고 그런 수다였을 텐데, 오늘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어.
어쩌면 그때 너도 나한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걸까? 내가 한심하게 볼까 봐 두려웠을까? 어쩌면 너도 몰랐을까... 네가 어디로 가는 건지. 왜 계속 가고 있는 건지.
그 얘길 꺼내려는 입을 내가 막았던 걸까.
우린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그때 내 얘기를 멈추고 네가 어떤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면, 너는 어떤 말을 했을까.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래도 미안해. 멋대로 기대해서. 멋대로 너와 나를 비교해서. 너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해.
다만, 우리가 어떤 길을 어떤 심정으로 가고 있든, 무슨 일을 겪게 되든 그 위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강하게 버텨내서 단단하게, 우리 다운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길 바라. 네 오늘이 그 시작이길 바라.
그리고 내년의 나도.
우리가 서로 솔직해지길 원할 때, 다시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너와 내가 진짜로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졸업 축하해.
다채로운 조각 - 004
<엇갈린 악수>
창작자의 시선
엇갈린 악수
너의 졸업을 축하하며 건네는 악수에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축하와 응원, 그리고 나만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것 같은 박탈감과 왠지 모를 허탈감까지. 너를 위하는 마음과 나를 위한 마음이 뒤죽박죽 엉켜 내 손으로 전해진다.
너 또한 사회로 나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기대, 그리고 아직은 학교에서 보낼 시간이 더 남은 나를 위한 응원과 격려를 담아 내게 손을 뻗는다. 그러나 우리의 두 손은 서로의 속마음을 들키기 싫었는지 서로 엇갈리고 만다.
우리의 손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했다. 둘 다 펜을 쥐고 나아갔으니까.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다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난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미래를 꿈꾼다는 핑계로 카메라로 눈을 가리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반면, 내가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와중에도 너는 꿋꿋이 펜을 쥐었다. 미적지근한 결과에 네 믿음이 흐려질 때에도 넌 오히려 펜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네 결정을 믿고 포기하지 않았겠다는 의지가 네 손엔 있었다.
그에 비해 내 손은 주먹을 쥐는 법조차 몰랐다. 나는 너와 달리 나를 믿지 못했다. 종종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면 확신이 들기보단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부터 점점 성장하는 너를 볼 때마다 커져갔던 존경심과 열등감까지, 뒤죽박죽인 기억들과 감정들이 내 뇌리를 빠져나와 급기야 내 얼굴까지 가려버렸다.
잡념들은 곧 나를 나대로 볼 수 없게 하는 새까만 눈가리개가 되었다. 한편, 나도 점점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격려의 말들을 듣곤 하는데, 날 위한 말들은 이미 가려진 내 얼굴 위로 스쳐 갈 뿐 내 마음을 열진 못했다. 오히려 날 위한 말들을 내 멋대로 뒤집어 듣고는 고까운 말이라며 무시해버렸다.
난 여전히 날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그렇기에 너 또한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너의 대단한 모습을 그대로 봐주기엔 내 열등감과 질투가 내 눈을 가려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악수가 엇갈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넌 날 잡을 용기와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널 보는 마지막 순간, 오롯이 나로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럼에도 너도 날 이해해주길 바란다. 네 손에 닿지 못했을지라도, 내 마음속엔 언제나 너의 졸업을 축하하고 네 미래를 응원하는 내가 있으니까. 언젠간 이 마음을 당당히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리고 오늘의 악수를 추억하며 나의 한심함을 웃어넘길 수 있기를.
창작자 정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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