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밤이 되면

<다채로운 매일의 조각들>

by 다채로운

아이들이 잠든 뒤,
집 안이 조용해지는 그 순간이 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나에게 온전히 돌아오는 짧은 틈.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쏟아내고,
일하고, 챙기고, 서두르던 마음이
그때 비로소 조금 느슨해진다.

피곤이 한꺼번에 올라오면서도
이 시간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과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올라오는,
그 묘한 감정의 겹이 밤마다 찾아온다.

어떤 날은
책 한 장을 넘기는 것도 힘들 만큼 피곤하지만
그래도 책상 앞에 잠깐 앉아보고,
또 어떤 날은
에너지가 조금 남아 있어서
글 몇 줄을 적거나
그림 한 조각을 그리기도 한다.

이 짧은 시간에는
하루 동안 쌓였던 생각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지.”
“아까 그 말은 조금 신경 쓰였어.”
“아, 이건 잘했네.”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정도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

거창한 성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목표를 다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루의 남은 결을
잠깐 쓰다듬어 주는 정도의 시간.

피곤해서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앉아 있다가 바로 누워버리는 날도 많지만
그조차도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게
요즘은 오히려 기분 좋다.

밤의 고요는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조용한 조각이다.
빛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줄어들고,
집 안의 온도도 조금 내려가지만
그 틈 사이로
나의 작은 생각들이 더 또렷해진다.

어쩌면 이 시간 덕분에
나는 다음 날을 버텨내고,
또 다시 나를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밤이 되면 나는
비로소 나에게 다시 온다.
길진 않아도,
완벽하진 않아도
이 하루의 마지막 조각은
언제나 가장 나다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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