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아일랜드에서 만난 꿈같은 순간

I’ll land on Ireland - 004

by 라이프그래퍼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처음 만나 6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신혼 여행으로 아일랜드에 다시 왔다.


IMG_6114_low.jpg 2019년 10월 아일랜드 신혼여행 중 직접 찍은 사진 - 피닉스파크의 사슴


여행 시작 후 첫 이틀간 미친 비바람과 추위에 떨며 ‘하.. 이래서 신혼여행은 휴양지로 가야 한다는 건가’ 하며 잠시 아일랜드로 온 걸 후회할 뻔하고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운명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오직 우리 둘만을 위한

길거리 버스킹


여행 이튿날 우리는 하루종일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가장 빽빽한 일정을 보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친구를 만났다. 남편의 고등학교 때 친구가 마침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6년 전 우리가 자주 갔던 단골 펍을 그 친구와 함께 다시 갔다. 거센 비바람은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맛있는 맥주와 그동안 못 나눈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우리가 이틀 내내 더블린의 궂은 날씨 때문에 아직 버스킹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자, 남편의 친구는 “그럼 지금 한번 구경하러 나가 볼래?” 라고 말하곤 우리를 이끌고 버스킹으로 유명한 그래프턴 스트릿으로 갔다.


이 늦은 시간에 과연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드문드문 있긴 했다. 가게들이 온통 문을 닫고 사람도 별로 없어 휑한 밤 거리에 몇몇 버스커들의 노래만 홀연히 들렸다.


일단 거리를 한번 쓱 훑어본 후 가장 듣고싶은 버스커 앞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새 노래를 멈추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들 장비의 배터리가 다 되어서 더이상 버스킹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의 친구는 그 버스커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제 막 결혼해서 허니문을 온 커플에게 노래 한곡 해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정말 고맙게도 그 버스커들은 마이크도 못 쓰는 상태에서, 짐 정리도 하다 말고 우리 둘만을 위한 노래를 시작했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2019년 신혼여행 중, 아일랜드 버스커가 우리 둘만을 위해 불러준 노래


그 버스커가 우리를 위한 노래를 임의로 선곡해서 부른 것이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결혼식 입장곡으로 꼭 하고 싶었던 노래였는데, 결국 못 썼던 곡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그 노래, 우리 결혼식에서 꼭 틀고 싶었던 그 노래를 이 머나먼 아일랜드에서 듣다니! 그것도 우리 단 둘만을 위한 버스킹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필 그날, 그 시간, 그 곳에 그 버스커들이 있었고, 마침 아일랜드에 우리의 친구가 살고 있었고, 머나먼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친구가 용기를 내서 어렵게 노래를 청하고, 그 버스커가 우연히도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다니...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아일랜드에 다시 온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그 친구 덕분에, 그리고 그 버스커들 덕분에 정말 행복했다. 아일랜드에 다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행 이틀만에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했다.


그 노래 후로도 그들은 우릴 위해 두곡을 더 불러줬고, 남편은 감격해서 그들에게 20유로를 쾌척했다.





‘우리 노래’를 들으며

꿈결같이 보낸 순간들


그날 이후로도 아일랜드에 다시 온 게 운명 같다고 느낀 순간들이 몇번 더 있었다.


첫번째는 더블린 근교의 호스 항구에서다. 그날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오후 1시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우리는 아예 아침에 일찍 다녀올 셈으로 호스에 갔다.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다행히 비는 안 와서 빠르게 항구 구경을 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그 다음은 언덕길 산책을 할까, 얼핏 본 예쁜 카페에서 쉴까 고민하다가 결국 바람이 너무 거세져서 카페에 가기로 결정했다.


IMG_5922.jpg 2019 신혼여행 중 호스에 있던 작은 티룸의 한켠을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참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우리는 각자 차를 시키고 스콘을 곁들여 먹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아 쉬고 있는데, 일기예보대로 1시쯤 되니 창밖에 빗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우리 카페로 들어오길 잘했다”고 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갑자기 우리 결혼식 입장곡이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Stand By Me


So darlin', darlin' stand by me~ Oh~~ stand by me~

결혼식 며칠 전부터 노래에 맞춰 율동을 연습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익숙하고 더 특별한 노래였다. 별거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그 순간 역시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제는 버스킹으로, 오늘은 카페 BGM으로 각각 다른 우리의 노래를 듣다니! 그날의 그 우연도 참 신기했다. 물론 유명한 노래이기 때문에 카페 BGM으로 나오는 거 자체는 신기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마침 그날 그때 그 카페에, 신혼여행 중인 우리가 앉아있을 때 하필 우리의 결혼식 입장곡이 나왔다는 건 우리 둘에겐 의미 부여하기 충분한 일이었다.


이번 여행 중 또 다른 어느 날 우리는 아일랜드의 항구도시인 골웨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마침 아일랜드의 전통 결혼반지인 클라다링 가게 앞을 지나는데 한 버스커가 거기서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 여행 첫 버스킹에서 들었던 Can’t Help Falling in Love 였다.


2019 신혼여행 중 골웨이의 한 클라다링 가게 앞에서 들은 버스킹


신혼여행 중인 우리에겐 이 노래를 다시 들은 그 순간마저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 노래가 요즘 아일랜드 버스킹에서 많이 들린다고는 나중에 들었다. 그래도 수많은 노래 중에서도 이 노래가 하필 우리 여행기간 중에 유행이라니! 그것도 참 좋았다.


이런 우연한 순간들이 연이어 찾아오니 마치 아일랜드가 온 몸으로 우리에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로맨틱한 순간들. 덕분에 우리의 이번 여행에 더 특별한 추억거리가 생겼다.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이미 이번 여행 전부터 소중한 추억의 장소였다. 어떤 특별한 일 없이 그냥 그곳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거기에 이런 꿈같은 순간들이 더해지니 정말 더할니위 없이 행복했다.


이렇게 우리가 아일랜드를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또 생겼다.


이번 여행이 지나면 우리는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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