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유럽 동행 로맨스를 꿈꾸지 않나요?
로마 여행 일정 중 하루는 바티칸 투어였다. 로마는 그냥 돌아보더라도 바티칸만큼은 꼭 투어를 해야 한다는 말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미리 예약한 코스였다. 바티칸 투어 당일, 유랑에서 구한 동행과 약속 장소에서 만나 미팅 포인트로 향했다.
남자 동행과 둘이서 투어 대열에 합류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혹시 커플이 아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 나는 그런 관심과 질문이 정말 싫었다. 내가 눈길을 주었던 사람은 유랑 동행이 아닌, 친구와 함께 로마에 놀러 온 그 오빠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오빠는 여행 로맨스를 상상할만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첫째, 키가 컸다. 심지어 한쪽 어깨에 꽤나 무거워보이는 dslr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둘째, 듬직했다. 50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단체 투어라서 10명씩 5개 조로 나뉘었는데, 그 오빠는 우리 조의 조장이었다. 투어 중 조별로 모여 인원 파악을 할 때마다 나는 제일 먼저 그 오빠 앞에 달려가서 눈을 마주쳤다. 그러면 그 오빠는 한 번 씨익 웃어주고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바티칸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개별 관광객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몇 번의 유럽 여행을 통해 투어에서 잠깐 만난 사람은 유랑 동행보다도 일회적인 관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오빠와 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와 동행도 바티칸을 나왔다. 내가 바티칸에서 너무 그 오빠만 졸졸 따라다녔는지, 나의 동행은 혼자 투어에 참가한 또 다른 동행과 친구가 되어 함께 다니고 있었다. 셋이 된 우리는 바티칸에서 가까운 천사의 성으로 향했다.
"어? 그분들이신가?"
우리보다 훨씬 앞에서 걷던 남자 둘이 우리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그 오빠와 친구였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만난 김에 같이 돌아보자고 할까?' 생각을 다 하기도 전, 그들은 남은 시간 즐거운 여행 되라며 뒤돌아 가버렸다. 내가 혼자 너무 과하게 반가워한 것은 아닌가 흔들던 손이 뻘쭘해진 순간이었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들과 다시 마주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저녁을 먹기 전, 우리는 나보나 광장에 들렸다. 동행들은 분수가에 앉아 있었고, 나는 나보나 광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제일 마음에 드는 버스킹을 찾고 있었다.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뒤돌아보니 그 오빠의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