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조 Aug 05. 2020

로마에서 만난 그 오빠 -2

저도 꿈꿨습니다, 유럽 동행 로맨스.

알고 보니 또 다른 친구가 로마에서 투어 가이드를 하고 있어서 셋이 저녁을 먹기로 했고, 나보나 광장에서 그 친구를 만나기로 했단다. 혹시 저녁 먹을 곳을 정하지 않았으면 자신들과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길래 우리는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그 오빠의 친구는 말이 많고 쾌활했다. 동행들과 함께 분수가에 앉아 버스킹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우리는 금방 친해져 연락처도 교환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의 눈은 한쪽 어깨에 멘 카메라로 나보나 광장의 야경을 찍는 그 오빠를 좇아 다녔다.


가이드를 하는 친구가 나보나 광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레스토랑에 갔다. 그 오빠는 다정하기도 했다. 메뉴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접시에 요리를 덜어주었다. 그 날은 그 오빠가 아스파라거스 하나만 내 접시에 올려줘도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은 후 트레비 분수에 갔다. 그 오빠가 아니었으면 트레비 분수의 야경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원래 동행들과는 저녁을 먹고 헤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사진을 몇 장 찍고, 슬슬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언제쯤 번호를 물어보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오빠가 먼저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오늘 찍은 사진들 보내줄게요. 카톡 아이디나 번호 알려줄래요?”

"... 허!.."


그게 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때 나는 분명히 놀라서 감탄사를 뱉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린 것이었다. 나의 반응에 당황하며 멋쩍게 핸드폰을 가방에 넣은 상대방에게는 ‘허! 내가 왜 너한테?’ 정도로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허!.. 망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행들과 헤어진 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후회하던 중, 또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오빠의 친구였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갈로 넘어갈 때쯤이었다. 나의 속상한 사연을 들은 교환학생 언니 오빠들이 당장 오빠 친구를 통해 번호를 물어보라고 부추겼다.



마침 그 오빠의 친구와는 카톡을 가끔 하고 있었다. 이게 진짜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생각하며 나는 그 오빠의 번호를 물어볼 타이밍을 쟀다. 사진을 받을 핑계로 연락처를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했나. 우물쭈물하며 며칠이 지났고 그 오빠의 친구를 통해 사진이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뒤에도 분명 번호를 물어볼 타이밍이 몇 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진을 전달받고 ‘될 사람이었으면 진작 됐겠지. 나는 그냥 안될 사람인가 보다.’하고 포기했던 것 같다.


요즘에도 주변 사람들과 유럽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나에겐 로마 오빠가 있었지..’라며 말을 꺼내곤 한다. 허무한 결말에 바보냐고 비웃음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마에서 만난 그 오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