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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20. 2021

코로나19와 일상생활의 변화

비정상적인 일상의 연속

2020년, 2월말 대구 코로나 19 집단 감염 이후, 연일 경북지방에 확진자 수가 늘어나게 되자, 여러가지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었다. 나름 코로나 19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마스크도 하고,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을 하며 조심하고 있었다. 1월말에는 운이 좋으면 메르스 때처럼, 코로나 19가 금방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다소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대폭 늘렸지만 소용 없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 19 확진자가 증가하기 시작할 무렵, 회사(구미에 있다.)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대책으로, 사내 셔틀 버스 운행 중지, 복지 시설 폐쇄, 출입자 발열 체크 등을 선제적으로 진행하였고, 이로 인해 회사 생활에 여러 불편한 일이 발생하였다.


회사에서도 업무효율과 코로나 방역 사이에서 적정수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매일 지침이 바뀌고 있던 때, 주말에 처음으로 사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시청이나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가 되기 전에 벌써 주말 출근자들을 통해서 카톡으로, 사내 문자 서비스로 단편적인 정보와 소문들이 빠르게 돌았다. 걱정이 좀 되었는데, 나는 확진자 바로 옆 건물에서 근무를 하였기에, 혹시나 근접 접촉이 되었는지, 되었다면 나도 코로나에 걸렸는 것인지, 또는 걸리지 않았더라도 근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가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 날 회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안내 문자를 발송하였는데, 정리하자면, 월요일 출근 시간을 늦추고, 회사는 정밀방역을 실시할 예정이며, 근접 접촉자는 회사에서 분류하여 별도 연락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해 보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출근 시간 입구에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발열 체크 및 감기나 기타 의심증상이 있는 환자 분류를 하느라 사무실까지 들어오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코로나 TF가 별도 구성되어 있었고, 매시간 안내 방송, 문자를 통해 지침을 전달하였으나 불명확한 지시도 많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며칠 후, 두 번째 확진자가 같은 건물에서 발생하였고, 또, 며칠 후 이번에는 바로 옆 부서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옆 부서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날,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옆 부서에 사람이 하나도 없고, 우리 부서에서도 소식이 빠른 사람들은 이런 소문이 있던데 하면서 사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서로 아는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다. 갑자기 부서장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시더니


“빨리 오늘 실험실이랑 자리 정리하고, 약속된 회의나 일정 모두 취소해.”라고 하셨다.


아마 확진자 발생 때문에 건물이 폐쇄될 것 같다고 하셨다. 갑자기 모두 총알같이 자리에서 뛰어나가 각자 급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업체에 오늘 꼭 내보내야 하는 물품을 정리해서 1층 입고로 내려 보내고, 협력업체와 약속된 일정 취소, 연기,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급하게 전화통화를 여러 번 하였다.


갑자기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지금 시간부로 방역을 위해 건물 폐쇄합니다. 근무자들은 지금 바로 퇴근하시고, 향후 출근 일자는 개인 연락 드리겠다고 하였다. 쫓겨나다시피 사무실에서 나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제퇴근을 하였다. 오전 8시 반에 퇴근하는데,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바람은 상쾌하고, 햇살은 따스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서 몇 시간 후 부서장님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우리 딸 밥을 떠 먹여 주고 있었다. 지금 무엇하고 있냐고 물으셔서 우리 애 밥 먹이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시며, 근접 접촉자로 TF에서 분류 받았으니, 앞으로 2주 동안 모든 사람들과 격리된 생활을 하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자 바로 와이프가 숟가락을 뺏고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나의 2주 동안의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니 가까지 가지 마라.”


문 밖에서 와이프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들렸는데, 좀 서운했다. 와이프 말이 끝나자 마자, 6살 호기심 많은 큰 딸이 방문을 쾅 하고 열고는


“아빠, 아빠 진짜 코로나 바이러스 걸렸어?”하고 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해 주자,


“우와, 아빠 지금 아파? 얼마나 아파? 코로나 바이러스 어떻게 생긴 건데? 어떻게 하면 코로나 감염되는데?”라며, 아이가 할 수 있는 아이다운 질문을 끝도 없이 쏟아 냈다.


질병관리본부가 아닌 회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접촉자로 분류되었기에 따로 나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내가 감염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이 되어 외출은 전혀 하지 않았다. 업무는 개인 노트북으로 회사 사내망에 접속하여 진행하였는데, 회사 사내망에 너무 많은 사람이 갑자기 접속하여 계속 끊기고, 튕기고,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가 접촉자로 분류되었는지 궁금하였다.


회사에서 CCTV를 돌려서 다 찾은 건지, 아니면 확진자 자리에서 몇 m이내에 내 자리가 있어서 인지 궁금하였는데, 그저 그 전날 점심시간에 확진자와 우연히 같은 메뉴를 선택해서 먹었고, 확진자 앞 뒤 열 명씩 사원증을 태깅한 순서로 접촉자를 구분한 것이었다. 평소에 점심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그 날은 어쩌다 갑자기 너무 배가 고파서, 한 달 만에 먹은 점심이었는데, 하필 확진자 뒤에 줄을 선 것이었다.


재택근무 기간동안 주변에 계속 확진자가 나왔다.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상가 급기야는 같은 동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불안해지니까 괜히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목이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불안 속에 시간은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개인정비하고, 컴퓨터만 켜면 업무가 시작되는데, 너무나 생소하고, 어색했다.


며칠이 지나니, 출근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출근하는 시간 합쳐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번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퇴근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로 절약되었다. 재택근무의 단점은 업무 집중도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방 밖에서 우리 애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TV 소리가 다 들렸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집도 휴원이라 애들이 방문을 열고 자꾸만 같이 놀려고 하는데, 아무리 내가 확진자와 접촉되어서 위험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애들이 내 사정을 봐 줄 리 만무하였다. 안 놀아주는 아빠가 밉고, 컴퓨터 켜고 일하는 모습은 처음 보아서인지 방문을 열어보고는


"엄마, 아빠 일 안하고, 게임해요."라고 일러바치기 일쑤였다.


점심시간에 침대에서 이불 덮고 푹 낮잠을 잘 수 있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좀 미안한 일도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갑작스럽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작된 재택근무라 나도 그렇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협력업체 담당자들 모두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우왕좌왕하며, 해결방법을 찾느라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미안한 일이지만, 확진자가 아닌 동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업무를 떠 넘긴 일도 몇 번 있었다.


2주간 집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에도 구미에 계속 확진자가 나왔다. 우리 가족도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다음 희생자를 찾아 갑자기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학원, 어린이집도 휴원이라 집안에서 아이들이 계속 있으니, 이것도 큰 문제였다. 매일 놀 거리를 만들어줘야 했고, 우리 눈을 피해 애들은 수시로 사고를 쳤다.


두번째 사진은 휴지통을 밟고, 장난감 컵으로 정수기 사용중인 장면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확진자 현황과 동선을 확인하고, 뉴스 찾아보는 게 일이었다. 코로나 19에 대해 많은 뉴스나 인터넷 상의 댓글을 볼 때마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대구나 경북지역 폐쇄해야 된다는 글이나, 신천지 사태 이후 종교나 종교행사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악의적인 비판이 그것이었다. 국가적인 재난 앞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시기에, 물론 정당한 비판은 당연하지만, 선을 넘어서 마녀사냥을 일삼으며, 남 탓만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분열만 조장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늘어갈수록 회사에서도 나처럼 격리되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났는데, 이제는 사무실에서 누군가가 꼭 처리해 줘야할 일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더 이상 요청할 사람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업무의 반 이상이 마비되었다. 부서 간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도, 하루 이틀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에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필 그 기간에 해외로 장기간 출장을 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호텔에 격리되어 있다가 도망치듯이 국내로 속속 복귀하고,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회사에서 자가 격리자로 분류해버려서, 2주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출장자가 많았던 부서는 도저히 업무 공백을 메울 수가 없어서, 타부서에 죄송하지만 현재는 도저히 업무 진행할 방법이 없다고 전체 메일을 돌리기도 했었다.


몇 달이 지났고, 이제는 마스크, 손세정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과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싫었던 회식도 이젠 그립고, 날씨가 더워지니까 정말, ‘마스크 없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면 얼마나 기분이 상쾌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마스크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아이들도 이젠 마스크에 적응을 해서, 외출을 할 경우에는 스스로 마스크를 준비한다. 다시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젠 1년이 지났는데, 이젠 자의반 타의반으로 적응이 된 것 같다. 아이들도 이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바깥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아, 아이들을 위해서 종이접기도 배우게 되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도 그리게 되었다.


종이접기 ~ !!


그림 1


그림 2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부분은,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좋지 않아, 잔기침이 많은 편인데, 잔기침을 할 때마다, 주위사람들을 의식해야만 하고, 주위사람들도, 나를 경계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 가볍게 감기 기운이 있었던 날은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치료를 받고 나서야, 맘 편히 출근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회사는 회사대로, 우리는 우리 대로,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인지, 회사 내 확진자는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체로 봐도 어느정도 안정세인 것 같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유지와 같은 개개인의 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의심자 격리 및 관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서 내 안전담당 관리자를 몇 년째 맡고 있는데, 예상보다 다들 적극적으로 코로나 예방활동에 참여한 것 같았다. 평소에 화재 대피, 지진 대피 훈련을 하면, 본인 할 일 다 하고, 느릿느릿 핸드폰 게임하면서 대피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화재 경보를 울리면, 대피는 하지 않고, 불구경 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좀 의외이기는 한 것 같다. 아마도 확진자가 너무 한꺼번에 늘어서 나도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진 영향이 아닐까 싶다.


2009년 내가 신종플루에 걸렸던 때와 비교하면, 그 당시와 지금은 너무 차이가 크다. 호흡기 감염 팬데믹에 대해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시스템도 많이 보완이 되었다. 단지, 사망자가 발생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 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방심을 해 버려서 이렇게 많이 확산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후에 똑같은 일이 생겼을 때, 이번 코로나 19사태를 교훈삼아 초기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어려운 때 일수록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정도만 준비하면 되겠지.’,‘설마 내가 걸릴까?’와 같은 근거 없이 희망적인 안일한 생각들이 없어진다면, 좀 더 이런 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 : 보건소 진료의사인 아버지께서는 일년동안 굉~장히 고생을 하셨다. 항상 확진자나 접촉자와 마주할 수 밖에 없어서, 출퇴근 외에는 거의 가택 연금상태로 지내셨다. 당구장을 갈 수 없어 괴로워하셨는데, 나와 연합하여 어머니 반대를 꺾고, 얼마 전 비어있는 방에 축소 당구대를 설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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