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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20. 2021

2018년 둘째가 태어났다.  

크게, 맑게, 밝게 자라줬으면...

 2018년 12월 10일에 고대하던 둘째 딸이 태어났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곧,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신경 쓸 일이 많아져 버렸다. 아내와 둘째는 산부인과를 거쳐 산후 조리원으로, 그리고, 네 살 첫째 딸은 당분간 장모님이 우리 집으로 와서 봐 주시기로 하였고, 나는 최대한 회사에 많은 휴가를 내고 집, 산부인과, 조리원을 오가며, 가족 구성원들을 다 챙기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첫째 딸이었다. 항상 엄마와 붙어 지내다가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잠깐 만나고, 그 외의 시간은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이 아이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아내와 둘째가 산후 조리원에 있을 때, 첫째는 혼자 외할머니와 자고, 일어나서 어린이 집에 다녀오고, 하원 시간에 내가 마중 나가서 바로 조리원으로 픽업해오면, 서너 시간 정도 엄마와 같이 있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데, 그런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집에 데려 주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조리원 유리창을 통해 동생을 보고 난감해 하는 첫째.

 

하루는 우는 첫째를 겨우 달래서 차 뒷좌석에 앉히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직도 울먹이는 우리 딸을 위로하기 위해 별 생각 없이


"태린아, 엄마 아직 아파서 주사 맞는 거 봤지? 동생도 아직 어려서 누워 있잖니, 우리 며칠만 참자, 알겠지?" 라고 말했다.


첫째는 우는 목소리로


"다 아는데......그래도....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말하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당황하였다. 이 아이는 갑자기 개밥에 도토리가 된 자신의 상황을 나름 최대한 이해하고 있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이해는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아빠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


"태린이."


내 질문에 평소에 해 오던 대로 첫째가 대답하였다.


"아빠, 엄마도 태린이가 정말로 보고 싶어, 엄마 최대한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의사 선생님한테 말할게. 태린이도 할머니 말 잘 듣고, 안 울어야지? 그래야 엄마가 힘내서 빨리 나을 수 있지, 그래, 안 그래?"


"그래." 첫째가 힘주어 대답했다.


그 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첫째는 울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 밖만 내다보았다. 아파트 입구의 알록달록한 전등으로 멋을 낸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지날 때도, 평소처럼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라고 노래를 부리지도 않았고, 아파트 상가 마트 앞을 지날 때도, 여느 때처럼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그 날 따라 왜 그렇게 길이 막히고, 신호는 안 받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신경이 쓰였지만,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서 첫째를 내려 놓으니 또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 기다리신다. 집에 일단 들어가자."


"싫어, 집에 안 가, 엄마 보러 병원에 또 갈 꺼야."


조리원을 병원으로 알고 있는 첫째가 발까지 구르면서 힘주어 말했다.


"지금 병원에 어떻게 가? 깜깜 하자나."


"아빠가 운전해서 가면 되잖아?"


첫째의 대답에 나는 마음이 아파져서 순간 눈물이 왈칵 흘러내릴 뻔하였다. 낮 동안에 엄마한테 가자고 할머니에게 말 할 때마다 아마도 장모님은 차가 없어서 갈 수가 없으니, 나중에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여러 번 얘기하였을 것이고, 그걸 이 아이가 기억했다가 아빠는 왜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안 해주느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진 나는 첫째를 꼭 끌어안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그럼 우리 집 말고, 태린이 집에 잠깐 갈까?" 라고 물었고, 다행히 이번에는 먹혔다. 첫째가 태린이 집이라고 부르는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한참을 놀았다. 겨울이라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그리고, 아내가 알게 된다면 야단 치겠지만, 나는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추워서 첫째 코가 제법 빨갛게 되었을 때, 이제 집으로 가자고 설득했고, 추위에 지친 첫째는 순순히 응낙했다. 미끄럼틀을 내려오며 첫째는


"할머니 싫어, 태린이는 아빠랑 엄마랑 예린이(둘째)랑 살거야."라고 말했다.


"왜?"라고 물었더니


"태린이는 엄마랑 아빠가 좋아, 그리고 예린이는 귀여워."라고 대답했다.


"그럼 할머니는 왜 싫어?"


"할머니는 안 좋아, 안 귀여워."


재치 넘치는 천진난만한 대답에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한 번도 이렇게 연속해서 계속 진 적이 없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 팔에 꼭 안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주 담담한 말투로


"이제 아빠는 가도 돼."라고 말해서 나는 그 날 K.O.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나는 조리원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태린이 집 주변을 서성이며,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겨울 밤 찬 공기를 한 가득 폐에 집어넣어야만 하였다.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느냐며, 핀잔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냥, 그렇게 됐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할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내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고, 그리고, 혹시나 아내가 마음 쓸까 봐 걱정이 되어서 짧게 얼버무렸다. 내가 잠깐 나쁜 남편이 되는 게 도리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둘째 첫 생일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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