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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20. 2021

고향 가는 길

2019년, 코로나 이전 마지막 설명절 고향 방문 

 설, 추석 명절에 고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올해도 설 명절에 고향으로 서둘러 출발하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였으나, 평소보다는 길이 좀 막히는 것 같다. 고속도로 초입부터 차량들이 늘어난다. 


취업을 하고 고향 부산을 떠나 구미에 정착한지 올해로 13년, 처음엔 구미의 모든 것이 낯설었고, 내가 정말로 여기에 이렇게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태어나서 자라고 커 온 고향 부산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고, 내가 꿈에서도 그리는 나의 집은 부산 고향 부모님 집이었다. 주말마다 2시간 거리의 부산을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하였는데, 한 해 두 해 지나갈수록 나도 모르게 서서히 고향에 대한 생각이 옅어져 갔다. 


'연고 고', '시골 향' 한자 그대로의 뜻은 연고가 있는 시골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이라고 하면 부모님이 기다리시고, 오래된 시골이 생각난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도 늙으신 아버님과 얼룩배기 황소가 우는 곳으로 고향을 묘사하고 있잖은가? 사실 나는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그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경남 진주였다. 삼 년 정도 진주에서 살았지만 어릴 때라 기억 나는 일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인지, 나는 한 번도 고향이 진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향이 태어난 곳인지, 태어날 때의 주소지인지, 또는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곳을 뜻하는지 모두가 정확히 구분해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정하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내 욕심대로라면 우리 딸들이 나중에 자라서 '나는 고향이 부산입니다.'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이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볼 때, 부산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광복 후 집도 재산도 버리고, 일본에서 부산으로 와서 아버지께서 태어나고 자라셨고, 내가 5살부터 27살까지 살았던, 우리 가족의 핏속에 흐르는 부산의 명맥이 끊어지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똑같이 부산이 고향인 아내도 마찬가지 생각일 지 모른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리고, 정을 붙이는 곳이 고향이라고, 나도 모르게 구미에서의 삶에 적응해 나갔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구미에 왔을 때, 시 중심에 자리 잡은 공단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부산에서는 시 외곽에 공단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구미 공단으로 들어갈 때마다 변두리로 나가는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20대 청운의 꿈을 안고 여기에 와서 이 사회의 중심, 그러니까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싶은데, 회사로 갈 때마다 변두리로 나가는 듯한 이 느낌은 그런 내 꿈을 꾸는데 방해가 되었다. 


이제는 물론 익숙해져서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다. 13년간 살아오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애들도 태어나고, 아제 나에겐 부산, 구미 둘 다 모두라 소중하고, 부산에서의 좋은 추억들 못지않게 구미에서의 좋은 추억도 많이 쌓였다. 구미에서 부산 가는 길도 이젠 아주 익숙하다. 이정표, 고속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집이나, 산들도 익숙하고, 네비가 알려주지 않아도, 단속 카메라 위치까지 알고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아, 물론 평소 과속을 많이 한다는 뜻은 아니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지금 내가 운전하고 있는 차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타임머신과 같다고. 고향 부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추억들이 존재하고,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 장소들이 있는 곳이다. 반대로 구미는 또 내가 돌아가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장소, 내 가족의 소중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차 앞쪽은 과거, 뒤쪽은 미래, 그리고 차 안은 현재라고 할 수 있겠다. 


뒷좌석에는 5살, 2살 어린 우리 딸들이 앉아있다. 옆 조수석에는 아내가 앉아있고. 같은 공간(시간)에 있지만 앞 좌석과 뒷좌석에는 엄연히 세대차이가 존재하고 있구나. 그럼, 혹시 사이드 미러에 보이는 것과 앞 유리창으로 보이는 것과 백미러로 보이는 것들은 과거? 현재? 미래? 무엇일까? 


그만하자. 이건 너무 나간 것 같다. 운전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사실, 이제는 구미사람(경북사람)이 다 되었는데, 구미에서 살면서도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롯데 자이언츠를 아직 응원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도 한 번 좋아해버린 야구팀은 정말로 절대 바꿀 수가 없는 것 같다. 삼성 라이온즈 구장에 여러 번가서 삼성을 응원도 해 보았으나, 전혀 재미가 없었다. 회사 동료들 중에 삼성 팬이 많았는데, 내가 삼성 팬이었으면 그들과 더 빨리 친해지고,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사회 생활을 원만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롯데 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차는 달리고 달려 청도 휴게소에 도착했다. 애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휴게소에 잘 들르지 않았는데, 애들이 생긴 이후로는 항상 들르게 된다. 차 상태나 운전자의 컨디션 체크가 아니라, 아이들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두 시간이라는 거리도 아이들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므로, 혹시나 멀미라도 하는지, 화장실 가야 하는지, 배가 고픈지, 아니면 지겨워서 뛰어 놀고 싶어하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잠깐 차에서 내려 마실 물도 사고, 아이들 간식거리도 새로 사기로 하였다. 5살 큰 애는 곧장 휴게소 한 켠에 있는 캡슐 뽑기 기계 앞에 가서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상할 정도로 첫째는 동전을 어디나 넣는 것을 좋아한다. 저금통에 동전 넣는 것도 좋아하고, 자판기에 동전 넣는 것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동전으로 하는 것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캡슐 뽑기이다. 동전을 포개어 넣고 돌리면, 좋아하는 장난감이 나오니, 이 아이에겐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명절인데 한 번쯤 해봐라 하고는 500원짜리 동전 2개를 주었다. 해맑은 웃음이 예쁘다. 그런데 이렇게 준 것이 몇 백 번은 된 것 같다. 어쩌면 나도 우리 딸의 떼쓰는 소리 대신 웃음이 보고 싶어서 마음이 후해지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 딸이 원하는 장난감을 얻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뽑기를 하듯이. 


아직 경북인데, 경남 사람들 말투가 많이 들린다. 부산(경남)은 같은 말이라도 세게, 강하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고, 첫 음절에 대부분 강세를 둔다. 부산역, 대구역을 발음할 때 '부'자와 '대'자를 세게 그리고, 좀 크게 말한다. 처음 구미에 왔을 때 가끔씩 말을 잘 못 알아들었는데, 그 이유는 경북 지방은 중간 음절을 세게, 강하게 발음하기 때문에 그러하였다. 


부산역, 대구역을 구미(경북)에서는 '산', '구'자를 세게, 강하게 발음한다. 나는 센 소리가 당연히 첫 음절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었다. 지금은 나도 중간 음절을 세게 발음한다. 계속 경북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경북 말투를 따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웃기지만 부산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말투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게 아닌데.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드디어 부산이 가까워졌다는 이정표를 발견한다. 고향을 가는 길에 가장 기쁜 순간이다. 이상하게 부산 톨게이트 통과할 즈음엔 다 왔다.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다 왔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제부터는 정말 눈 감고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는 익숙한 곳, 차에서 내려서 걸어서라도 시간은 걸리지만 찾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며,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인생의 시작점이 이곳 이기 때문일 것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내가 예전에 알던 곳과 같다는 것을 연신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한 해, 두 해 나이 들면서 변해가지만, 내 고향만큼은 어릴 적 기억과 똑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억이 한 가득한 길을 따라 부모님께서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나는 가고 있다. 



- 제2회 시시한 남자문학상 최우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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