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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3. 2021

복실이 2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은 내 군대 이야기

시간은 흘러 다시 봄이 찾아왔고, 복실이는 강아지 6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2마리는 이틀 후 죽었다. 복실이 몸집에 비해 강아지들 크기가 컸고, 너무 많았다.


복실이는 강아지 4마리만이 젖을 빨 수 있을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기에 형제들과 경쟁에 밀려 젖을 빨지 못한 두 마리는 결국 죽었다. 죽은 강아지 두 마리를 복실이 집에서 끄집어 낼 때, 복실이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낑낑거리며, 필사적으로 죽은 새끼를 뺏기지 않기 위해 우리를 밀쳤다. 미안했다. 좀 빨리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두 마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나머지 강아지 4마리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한 마리는 복실이와 같은 누런색, 두 마리는 옆 부대 덩치 큰 수컷개와 똑같은 검은색, 그리고, 특이하게 흰색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복실이가 여러 개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흰색개와 같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고, 부대 주위에 흰색 개는 없다. 숨겨진 열성 유전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복실이는 강아지들을 키우는데 전념했다. 고양이를 봐도 덤벼들지 않고, 항상 새끼들을 불러 모으고, 같이 놀고, 그렇게 복실이와 네 마리 강아지들을 보는 것은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강아지들이 워낙 젖을 많이 세게 빨기 때문에, 복실이 건강이 안 좋아졌다. 우린 강아지들에게 빵이나 우유 같은 것들을 조금씩 먹였다. 빨리 젖을 떼게 해서 복실이가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하지 않는 게 더 좋았다.


복실이가 워낙 똑똑하기 때문에, 복실이의 강아지들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대 안의 군무원, 납품 기사 등등,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가지고 싶어했다.


 강아지들이 젖 말고, 다른 것도 먹을 수 있게 되자 마자, 한 마리씩 누군가가 입양해갔다. 누런색 강아지가 가장 늦게 입양되었는데, 누런색 강아지는 색깔 때문인지, 좀 똥개 같아 보이기도 했고, 발육도 늦었다. 마지막 남은 누런색 강아지를 복실이는 살뜰히 보살폈으나, 복실이와 강아지 모두 쓸쓸하고, 우울해 보였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사실 복실이는 출산 경험이 있었다. 두 살 즈음에 강아지 세 마리를 낳아서 똑같은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실이의 엄마 개(진돗개였다.)도 여기에 있다가 복실이와 복실이 형제들을 낳은 후 다 팔리거나 입양 당하고, 복실이만 남게 된 것이다. 아마 마지막 강아지를 보면서 다음에 나가는 게 네가 될까, 내가 될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에게 꽤 마음 아프게 다가온 까닭은, 우리도 집을 떠나 부모님, 형제들과 난생처음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다음해에 신체검사 받고, 그 해, 또는 그 다음해에 일반적으로 입대를 하기 때문에 입대하기 전에 거의가 집을 떠나서 산 경험이 없었다. 어디 외국에 나가 본 적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한 번 타 본적이 없기에 군부대는 집에서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외롭고 항상 집이나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복실이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 특히나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누런 강아지는 부대에 식음료 납품하는 기사가 거의 뺏들다시피 가져갔다. 행보관님에게 돈을 건네고, 강아지를 움켜잡고, 트럭에 재빨리 올라타고 가 버렸다. 복실이는 낯선 사람이 강아지를 집어 들자 맹렬히 짖으며 달려들었지만, 행보관님에게 붙잡혀서 결국 강아지가 떠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였다.


그 이후로 복실이는 우울해 하였지만, 몇 달이 지나자, 다시 예전의 복실이로 돌아왔다. 고양이를 쫓고, 오른손, 왼손을 내미는 재롱도 다시 부리기 시작했고, 빠졌던 살도 다시 붙기 시작했다. 그 이후 강아지들의 소식은 가끔씩 들려왔다. 검둥이 두 마리는 아빠 개를 닮았는지 폭풍성장을 하여 훌륭한 집 지키는 개가 되었고, 흰 강아지는 동네 말썽꾸러기에다가 난봉꾼이 되었다. 하지만, 멀리 떠난 누런 강아지 소식은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그 해 겨울, 마음씨 좋은 행보관님이 우리 부대로 오셨고, 그 분은 복실이를 아주 좋아하셨다. 복실이도 가끔씩 짖궂은 장난을 거는 우리보다는 행보관님을 따르는 것 같았다. 행보관님은 종종 복실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하셨고, 퇴근하실 때 종종 복실이 목줄을 풀어놓고 가시곤 했다. 복실이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그 일도 역시 하지 않는 게 더 좋았다.


복실이는 어느 날, 행보관님이 퇴근하면서 풀어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 날 따라 부대를 시찰하는 옆 부대 사령관 일행과 마주쳐 버렸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사령관을 향해 복실이는 맹렬하게 짖으며 덤벼들었고, 수행하는 간부들도 그 기세에 눌려 몸을 피하기 바빴다. 복실이가 사령관의 군화를 꽉 물었고,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 부대 행정관님이 달려 나와 복실이를 떼 놓았다.


“이 개 아직도 있잖아? 내가 이 개 팔아버리라고 했지? 사람 무는 개를 부대 안에서 어떻게 키워?” 화가 난 사령관은 노발대발했고, 복실이는 팔기로 결정이 났다. 사령관의 참모가 우리 부대 대장님에게 전화하였고, 대장님도 화를 내며, 빨리 팔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무조건 팔아야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어떻게 판단 말인가? 우린 복실이가 좋은 곳에 가길 원했고, 마침 적임자가 있었다. 부대 앞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는데, 수송관님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집에 혈통 좋은 개를 몇 마리 키우고 있는데, 다 수컷이라 복실이를 데려가서, 강아지를 얻고 싶어하였다. 꽤 많은 돈을 받고 복실이는 팔려갔고,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우리는 하루 종일 우울했다. 점호시간에 점호보고가 끝나고, 분대장인 P병장이 말을 꺼냈다. P병장은 우리 중 유일하게 복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26살이라는 나이에 늦게 군대 입대하여 막내 때, 복실이 뒤치다꺼리하면서, 감정이 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둘은 소 닭 보는 듯한, 그런 관계였다.


“개 한 마리 팔렸다고, 분위기 다운 시키지 마라. 내 진작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령관한테 대드니까 그렇게 될 수 밖에. 자업자득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분 나쁘다.


솔직히 사령관이 복실이한테 물렸다 길래 속으로 통쾌 했었다. 사령관은 항상 거드름 피우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부대의 간부들은 우리 직속상관도 아닌데 경례할 때 소리가 작다느니, 걸음이 안 맞다니 등등 종종 트집을 잡던 사람들이다. 우리 부대 규모가 훨씬 작아서 식당을 비롯한 일부 시설을 더부살이하여 빌려 쓰고 있었는데, 그런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복실이는 우리를 야단치고, 혼내는 옆 부대 간부들과 사령관을 우리를 대변해서 맞서 준 것 일수도 있다. 우리 중에 적어도 반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복실이가 없어졌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군대에서 개 한 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뭐 그리 크겠는가? 복실이가 팔려간 주의 토요일에 우리 부대는 회식을 하였다. 복실이를 판 돈으로. 고기도 먹고, 술도 마셨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전 회식은 누런 강아지 판 돈으로도 하였고, 이젠 복실이 판 돈으로 회식을 한다.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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