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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3. 2021

복실이 1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은 내 군대 이야기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4월이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 그 해 3월에 나는 육군에 입대하였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후, 4월말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경기도 산 아래에 위치한 육군 제 xxxx부대, 갓 전입 온 이등병인 나를 대놓고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초장에 군기도 잡고, 위계질서가 명확한 군대의 특성상 살갑게 맞아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그러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복실이는 부대에서 키우던 진돗개 잡종이었다. 암컷이고, 나이는 세 살 반, 그리고, 얼핏 보면 영락없는 진돗개일 정도로 잘 생겼으나, 크기가 좀 작았다. 이 놈의 뒤치다꺼리도 내 일과 중의 하나였다. 매일 먹을 것을 챙겨주고, 주변 청소도 해야 했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무실 청소나 화장실 청소, 잡초 제거 등등 여타의 잡무보다 난 복실이를 돌보는 시간이 좋았다.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였고, 매일 살기등등한 고참들만 대하다가 내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와 같이 있는 시간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복실이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개들 중에 가장 똑똑했다. 앞발을 내밀어 악수를 할 수 있게 훈련되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몇몇 재주가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사람 말을 몇 가지 알아듣는 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른손’하면, 오른발을 내밀고, ‘왼손’하면 왼발을 내밀었다. ‘양손’하면 오른발을 먼저 내밀고, 뒷발로 일어서면서 왼발을 내밀었다. 만약 오른손, 왼손이 아닌 오른발, 왼발로 말하거나 또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 호령하면,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였다.


고참들이 강아지 때부터 장난 삼아 훈련을 시켰기 때문인데, 일어서고, 던지는 것을 받아 물고, 고개 흔들고, 다 하는데 배를 하늘로 향하고 바닥을 구르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다. 내가 볼 때, 할 줄 알면서도 안하고 끝까지 개기는 것 같았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나름의 철학이 있었던 것 같다.


부대 안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인지, 입맛도 아주 까다로웠다. 건빵은 절대 먹지 않았다. 아마 하도 많이 먹어서 질려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먹고 남긴 잔반에서 고기만을 모아서 먹었는데, 국에 들어가서 살이 흐물흐물해진 고기는 잘 먹지 않았고, 닭고기보다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더 좋아하였다.


캔커피도 좋아하였는데, 헤이즐넛 커피나 아메리카노는 먹지 않았다. 맛스타는 가끔 먹었다. 우린 식사시간에 반찬이 부실하게 나오면, 오늘은 복실이도 안 먹는 게 나왔다고 불평하곤 하였다.


특이하게도, 이 놈은 이등병을 가장 좋아하고, 계급이 높을수록 싫어했다. 병장이나 상병들이 가까이 오면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였고, 우리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옆 부대 사령관과는 무슨 원수라도 진 것처럼 적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령관과 마주치면, 죽기 살기로 짖으면서 정말로 물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진지하고, 험악한 표정은 다른 때는 정말로 보기 어려웠다.


사령관을 만나기만 하면 이 모양이기 때문에, 복실이는 대부분의 시간 즉 사령관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목줄을 한 채로 묶여 있어야 했다. 그게 안타까워서 야간에 사무실 근무를 할 때 잠시 사무실에 들여 놓고, 교대시간이 되면 다시 밖에 묶어 두었다. 사무실에 들여놓으면, 여름이면 시원한 문 가에서, 겨울이면 벽 쪽 라디에이터 앞에 딱 붙어서, 세상 좋게 늘어져 잠을 자곤 했다.


물론 나 말고도, 복실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사무실 야간 근무교대를 하러 들어서면, 앞 근무자 고참이 이미 사무실에 들여 놓은 복실이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문이 열리면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파 묻고 자는 모습이 때론 건방지게 보이기도 하였다.


복실이는 이름 말고도 별명이 있었다. ‘복하사’, 이름의 첫 글자와 하사 계급을 붙여서 그렇게 불렀다. 삼 년 반이라는 시간을 군대에 있었고, 사무실에서 자다가 쳐다보는 건방진 행동처럼 자주 거만하게 고참같이 행동해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짓궂은 고참들은 나에게 복실이가 고참이니 경례를 하라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그 고참도 복실이에게 경례를 해야 하는데 왜 만만한 후임병한테 그런 장난을 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장난으로 시키는 것이니 난 복실이한테 한 번도 경례를 안하고, 개겼다. 나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고, 복실이는 개인데 그건 아니지 싶었다.


복실이가 사령관 말고, 정말로 싫어하는 존재가 또 있긴 했다. 바로 고양이였다. 부대 뒤쪽이 산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야생 고양이들이 부대 안에 많았다. 고양이가 나타나면,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고, 복실이가 줄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아는 고양이들은 복실이를 딱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복실이는 가끔 한밤중에 나타난 고양이를 보고 짖었고, 그 때마다 잠이 깬 고참들 때문에 내가 나와서 복실이를 달래고, 때로는 협박하여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못하게 하였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강아지 시절, 짓궂은 고참들이 고양이를 잡아와서 종종 싸움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고양이한테 얻어터진 기억 때문인지 고양이를 보면 죽기 살기로 덤벼 들었다.


하루는 마침 복실이가 목줄을 풀고 있을 때, 덩치가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복실이가 짖기 시작했고, 곧 고양이에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 경우, 고양이는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고, 복실이는 나무 아래에서 한 종일을 버티다가 우리 손에 이끌려서 다시 목줄이 채워지는 게 결말이었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한 동안 복실이를 쳐다보던 고양이는 싸울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야옹’하고 울부짖으며, 복실이를 맞았다. 한 번 고양이가 앞발로 복실이 얼굴을 할퀴었다. 복실이는 다시 휘두르는 고양이의 앞발을 피해, 주둥이를 아래로 내리깔고는 고양이 배를 물고, 낚아채서 빠르게, 그리고는 여러 번 흔들어 찢어 던졌다. 고양이는 뱃속이 터진 채 순식간에 죽었다. 우린 모두 당황했다.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 우린 나라를 지키고, 전시에 전장에 뛰어들어야 할 군인이지만, 이러한 잔인한 광경에는 오히려 너무나 익숙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복실이는 더 많은 시간을 줄에 묶어 있어야 했다. 아무도 복실이에게 물려 죽은 고양이를 또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9년 가을, 나는 일병이 되었고, 복실이는 여전했다. 어느 날, 야간 사무실 야간 근무를 서다가 근무가 끝난 후 복실이를 사무실에서 끌고 나가 목줄을 채웠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복실이가 목에 힘을 주고, 목줄을 조이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지만, 정말로 불편해 보여서 목줄을 한 칸 늘려서 묶었다. 원래 복실이 목줄은 세 번째 칸에 채워야 하는데, 네 번째 칸에 묶었다. 복실이 목줄 묶는 칸도 딱 정해져 있었다. 윗 고참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고, 난 다른 것들도 그렇듯이 질문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지금껏 해 왔다. 그 날만 제외하고.


근무 교대하러 내무실로 가는 길은 야트막한 숲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산 중턱의 교회 불빛을 제외하곤 그 길에 다른 불빛은 없기 때문에 가끔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날도 그 길을 따라 내무실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별다른 생각 없이 뒤돌아보려 하다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어깨너머로 살짝 돌려서 뒤돌아온 길을 힐끗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하고는 또 걷기 시작했는데, 바스락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였다. 나랑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건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보다 가볍고, 두 개 이상의 발을 동시에 땅에 내딛는 그런 걸음 소리였다. 심호흡을 했다.


뒤를 돌아보기 전에 마음 속으로 하나만 생각했다. 제발 빨간 눈 이어라. 여긴 산과 맞닿아 있어서 이 맘 때쯤 야생 동물이 내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초식동물은 빨간 눈, 그리고, 육식 동물은 녹색 눈으로 보인다고 TV에서 본 적이 있다. 몸을 홱하고 돌려서 뒤를 확인한 순간, 저기 고개너머 커다란 녹색 눈 두 개가 보였다. 나는 진짜 깜깜한 밤에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하였다. 거의 주저 앉을 뻔하였다. 복실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익숙한 걸음걸이로 가까이 오지 않았더라면.


갑자기 기쁨, 안도, 민망함, 짜증, 분노가 차례로 다가왔다. 이걸 또 데려가서 묶어 두어야 한다. 알고 보니 복실이는 목줄을 조금만 느슨하게 묶어도 줄을 푸는 방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참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목줄을 단단히 묶고, 내게도 세 번째 칸에 맞추어서 묶으라고 한 것이었다. 복실이의 목줄은 그 날 이후 더 단단하게 묶여졌다. 난 그 날 밤의 일을 후임병들에게도 다 알려주었고, 다들 이제는 목줄 세 번째 칸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느슨하게 목줄을 묶는 사람은 없어졌다.


복실이 사진이 없어서 픽사베이에서 진도개 사진 빌려옴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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