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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3. 2021

내가 겪은 최악의 부정부패

두려운가요?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것이? - 맥베스에서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입사하고, 4,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업무에도 익숙하고, 한참 열심히 일하던 시기에, 정말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부정한 일이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일어났었고, 지금도 그 때 일이 종종 떠오르면서, 내가 왜 좀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하였을까? 내가 왜 좀 더 용기를 내지 못하였을까? 라는 후회가 들어서 마음 한 켠을 아프게 한다.


당시 디스플레이 관련 개발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우리 부서장이었다. 개발부서에서 하는 일 중에 각종 원자재를 검토해서, 신뢰성과 품질을 확보하고, 우리 회사가 구매해서 제품에 사용해도 된다는 최종 기술 승인을 내는 업무도 있었는데, 나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원자재 업체 입장에서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우리 부서가 막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시장은 포화된 상태에서 고객사들도 다변화되고, 원래 일본업체들이 만들던 부자재들을 하나, 둘 국내 업체들이 만들기 시작하면서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춘추전국시대 같은 시기였었다.


문제의 부서장은 삼 년 전쯤 우리 부서로 갑자기 오게 되었고,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었고, 국내 업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선후배, 뭐 이런 관계를 이용해서 인맥이 꽤 넓은 사람이었다. 업무 능력은 별로 안 좋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항상 누군가가 옆에 붙어서 보좌해야만 자신의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실력 없는 부서장이라 다들 싫어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고과,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맘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부서는 금세 사분오열이 되었다. 나처럼 대부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듯이, 한 두명의 사람들 때문에 점점 부서 분위기는 안 좋아졌다.


그러던 중, 내가 맡은 원자재를 만드는 A라는 일본업체, B라는 한국업체를 통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원래 내가 맡은 원자재가 우리 회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제품을 만들면서 처음 사용하는 신규 원자재인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기술력이 있다고 알려진 A라는 업체를 먼저 선정하여, A업체 단독으로 기술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단독업체는 회사에서 권고하는 사항이 아니라 1년 후 한국업체 B도 기술 승인을 받아 두 회사가 한 원자재를 양분하여 납품하고 있었는데, 서로 견제를 무척이나 했었다. 상대방 품질이나, 실패 사례, 영업력, 등등 오만가지 잡다한 것을 다 흉을 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두 회사 담당자들이 서로 흉보는 것을 중단하고, C라는 일본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시간 날때마다 나에게 문의를 하였는데, 나는 왜 갑자기 이러는지 납득이 안 되었다.


C라는 회사는 신규 원자자에 대한 기술이 전무하고, 애당초 A업체 검토할 때 샘플을 한 번 받아봤는데, 너무 조악한 수준이라 처음부터 완전 배제하였었다. 그런데, 왜 이 업체에 대해 궁금해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얼마 후, 주 고객사에서 신규 원자재에 추가 기능을 넣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추가해 달라는 내용이 딱히 어려울 것은 없는 기능이라 나는 당연히 내가 A와 B 업체를 통해 업무가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부서원이 C업체를 통해 개발 진행하는 것으로 회의 시에 부서장이 결정 내렸다. C업체가 추가 기능에 대한 우수한 기술이 있고, 비교적 신규 업체라 물량을 줄 필요도 있다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되는게 추가 기능은 그냥 원자재 업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기술이고, 신규 원자재의 원래 기능, 즉 A와 B업체의 것이 어려운 기술인데, 앞뒤가 맞지 않고, 개발 부서장이 업체 물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구매나 운영부서에서 고민할 일이었다.


이해가 안 되었던 나는 반론을 제기하였고, 부서장은 마지못해서 A사와 B사도 검토해보라고 하였다. 최종 샘플을 만들어서 고객사에 제출하던 날, 부서장이 C업체를 맡은 담당자와 둘이서 고객사 방문을 하였는데, C업체로 결정이 났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게 아무리 봐도 A와 B업체 샘플이 C업체보다 월등하게 좋아 보였다. 가격도 C업체가 제일 비쌌다.


부서장이 설명을 잘못해서 고객사에서 잘못 결정을 내린 것이라 생각 들었지만,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문제는 단독업체가 회사 내규에 위배되니 A와 C업체 중 최소 한 곳을 재검토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A업체도 그렇고 B업체도 그렇고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뭐 어떻게 바꿔서 개발해 드리면 될까요?’ 라고 묻는데,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겨우 구슬려서 다시 스펙을 바꿔서 업무 진행을 하는데 부서장이 계속 딴지를 걸어 기술 승인이 자꾸 지연이 되었다.  


이 때쯤이었다. 둔하기 둔한 나도 무언가 부정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당장 A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 부서장에게 나 몰래 뭐 밉보인 거 있냐고 물었었다. 꽤 오랫동안 같이 고생하며, 친분이 쌓인 사이라 몇 번 다그치자, 사실은, 절대 다른데 말씀하지 마시고,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만 말씀드리자면 등등 책임지기 어려운 말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말들을 한참 꺼내고는 부서장님이 일본업체들 사이에서는 돈을 엄청 밝힌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C업체는 뭐 그렇지 않았겠느냐? 우리 회사는 거절했다.라고 얘기하였다.


B업체는 그냥 부서장이 컨설팅 강의를 하고, 돈을 받아갔다고만 하였다. 어이가 없었다. 회사에서 금지하는 일이고, 컨설팅 내용은 우리 회사 제품 라인업과 개발 아이템, 로드맵 등이었다. 내가 볼 때는 대외비 내용이 외부로 빠져나간 것이고, 이걸로 돈까지 받았다면 해서는 안 될 짓임이 틀림없다.



고민하다가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서 부서에 믿을 만한 선배에게 얘기했고, 인사과 동기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꼭 보고해서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선배나 인사과에서 선택한 것은 문제의 축소 및 은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선배인 팀장님이 뒤를 봐 주셨고, 글쎄, 내가 고발한 것을 부서장이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서장 눈 밖에 나 버렸고, 꽤 오랫동안 내 회사생활은 완전히 꼬였었다.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회사에 친한 사람들에게 얘기하였는데, 부서장이 이런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서장이 부정을 저질렀다면, 회사 사택에 살고, 중고 소형차 몰고 다니겠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고, 결국 자기 인생 망칠지도 모르는 일을 설마 했겠냐? 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적지근한 회사의 대응과 자신을 비호하고, 편드는 사람들 때문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부서장은 점점 안 좋은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부서 회의비 같은 것도 사적으로 사용하고, 기타 여러가지 비용도 횡령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회식 후 식당 사장과 작당하여, 카드 비용을 올려서 영수증을 받아 경비 처리하고, 현금으로 돌려받고, 동일한 방법으로 물품을 사고, 카드깡을 하는 방법이었다. 정말 최악은 자기 와이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부서회식을 하고, 동일 방법으로 경비를 올려 처리하는 것이었다. 매상 올리고, 공짜 술 마시고, 카드깡으로 추가 수입도 얻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도,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나만이 아니라 주위의 양심 있는 사람들 모두 입 다물고, 정말 친한 사람들끼리 속닥거리는 정도였지, 공론화하거나 다른 부서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알아서 쉬쉬할 정도였다.


나는 이미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과악을 가르는 기준이 평소와는 달랐다. 부서장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편드는 사람들, 알고도 모른 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무렴 어떠냐, 내 돈이 축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고, 언젠가 밝혀질 날이 있겠지, 이렇게 아주 태만하게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도저히 그냥 일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부서장은 여사원 간담회 같은 것을 만들더니 부서 여사원들만 챙겨서 따로 술자리를 만들거나 퇴근 후 따로 불러내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부서 막내 여사원이 늦은 밤에 나에게 전화로 부서장이 화내면서 지금 어디로 나오라고 하는데 제발 같이 가자고 부탁할 때, 나는 이 부서장이 징계를 받지 않으면, 갈수록 끔찍한 일이 일어나겠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서장은 같이 온 내가 못 마땅하였지만 쫓아 보내지 못하였고, 그렇게 어색한 세 사람의 술자리가 되어 버렸다.


나는 비겁한 행동을 하였다. 막내 여사원을 부추겨서 인사과에 면담을 신청하게 하였다. 왜 나는 그런 일을 봤으면서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많이 된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게 합리적이라는 몇몇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말장난이고, 나에게 피해가 될 까봐 내가 만들어낸 변명이고, 궤변일 뿐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고는 인사과와 우리 부서 몇몇 간부들과 의견이 몇 번 주고, 받는 것 같더니, 몇 주 후, 감사팀에서 들이닥쳐서 부서장과 면담 진행 후 직책 해지 및 사실관계 확인이 시작되었다. 성희롱 사건이 아니라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C업체에 대한 것이었다.


C업체는 부서장에게 청탁을 하였고, 3년 동안 건내 준 돈이 30억원 정도였다. 원래 일본업체들은 대부분 한국에 에이전트를 끼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에이전트의 통상 비용은 매출액의 10%정도였다. 이런 사정을 알고는 부서장이 에이전트를 내가 할 테니, 비용을 달라고 제안을 하였고, 신생업체이자 실력으로는 정당하게 승부하기 어려운 C업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누가 그런 증거들을 모으고, 어떻게 C업체에게 자백을 받아냈었는지. 아무튼 부서장은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회사는 이 사건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 고발하지도 않았고, 자진 퇴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팀장 후배가 운영하는 회사로 재입사를 하였다.


곰팡이 핀 빵에서 곰팡이 핀 부분만 떼서 버려도, 그 빵은 곧 곰팡이가 다시 핀다. 그렇게 어영부영 마무리 지어버리는 바람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부서장이 한 일을 따라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돈을 대놓고 횡령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편가르기, 부하 사원의 정당한 기회 박탈, 막말 등등, 회사 사정도 마침 안 좋아지고 해서 여러가지 갈등을 심하게 겪다가 나는 결국 그 부서를 떠나게 되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내 인생의 항로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부서를 옮긴 후, 나는 예전처럼 밤 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에 출근하거나 하지 않았다. 딱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내 삶을 회사보다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업무로 만난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기계적으로 차갑게 대하게 되었다. 세상은 어릴 때 읽은 동화와 다르게 정의롭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00%중 20%는 무조건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 20%는 무조건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 그리고, 나머지 60%는 기회 보아서, 분위기 봐서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여러가지 법안도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말 세 마리가 뇌물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고등법원과 대법원 판결이 다른 것을 보면, 아직 부정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없는 듯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어떨 때는 잘못, 어떨 때는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면 80%의 사람들은 적당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양심의 선을 넘어 불의와 타협을 하게 될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내 생각에는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쉽게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어서 법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으면, 선의 기준을 낮추어 버린다. 부서장도 하나씩 단계적으로 잘못된 일을 한 것이다. 그 때를 회상하며, 나는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물어보며, 옛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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