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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3. 2021

복실이 3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은 내 군대 이야기

며칠이 지났다. 아침에 점호를 마치고, 일과를 시작하려는 즈음, 어? 낯 잊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복실이였다. 살은 쪽 빠졌고, 털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우린 반갑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았다. 마침, 수송관님이 출근하였고, 출근하자 마자 복실이 못 보았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간 며칠 간의 일을 이야기해 주셨다.


“아, 그 형님이 어떻게든 복실이를 길들여서 새끼 보려고, 처음에 데리고 와서 북어 대가리도 삶아서 주고 했는데, 복실이가 안 먹는 거야. 계속 도망만 다니고, 으르렁거리고 해서, 묶어 두고 삼일 동안 물 한 모금도 안 줬대. 자기가 지금까지 살면서 삼일 굶고 말 안 듣는 개 못 봤다고 그랬대.”


그래서, 복실이가 살이 쏙 빠졌구나. 우린 조용히 듣기만 했다. 복실이가 굶은 게 화가 나서 뭐라고 한 마디하고 싶었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삼일 째 되던 날 먹을 것을 가져 주었더니, 복실이가 그 때도 짖으면서 물려고 덤빈다는 거야. 그래도 먹을 건 먹겠지 했는데 이 놈이 앞 발로 밥그릇을 엎어버리고, 거들 떠 보지도 않더래. 살다 살다 이렇게 독한 개는 처음 봤다 하더라.”


“그러다가 어제 밤에 목줄을 풀고는 잡으러 다니면 계속 도망 다니고, 그리 넓지도 않은 마당에서 형님 내외가 용을 써서 잡으러 해 봤지만 얼마나 빠른지 잡지도 못하고, 어거지로 잡으려다가 손까지 물리고, 결국 포기하고, 날 밝으면 잡자고 들어가서 잤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울타리 아래를 땅을 파고, 기어코 탈출을 했더라 이거야.”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인데 화가 나서 뭐 그런 개를 팔았냐고, 당장 잡아오라고 승질을 내더라고. 그래서 복실이가 결국 갈 데가 여기밖에 없는데 해서 오늘 빨리 출근한 거지. 그 형님 부대 문 앞에서 몽둥이 들고 기다리고 있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땅을 파고 탈출하느라 흙투성이가 되었고, 나흘 동안 쫄쫄 굶어서 야위었구나. 그리고, 복실이가 헐거운 목줄 푸는 거 도가 튼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니까. 아마 굶어서 살이 빠지니까 목줄이 헐거워진 모양이다. 얼마나 목줄을 풀기 위해 용을 썼던지 목 주위의 털은 움푹 파여진 것처럼 뽑혀 나가 듬성듬성 하였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이게 정말 복실이가 계획한 것이라면, 이 개의 지능지수는 세 자리는 될 것만 같았다.


너무나 안쓰러웠다. 우린 그저 막연하게 복실이가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겠다. 부대 밖으로 나가서 살 게 되다니. 우리도 군대에 묶인 몸이라, 우린 우리 마음대로 이 곳을 벗어난 복실이가 자유를 찾아 더 좋은 곳으로 간 것으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행보관님이 출근하셨고, 복실이는 한 걸음에 달려가서 품에 안겼다.


행보관님은 복실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복실이는 아주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우리 부대 막내가 따뤄 준 파란색 레쓰비 캔커피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행보관님은 복실이를 깨끗이 씻겼고, 얼마나 깨끗이 씻겼던지 샴푸 냄새가 진동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수송관님 손에 이끌려 목줄이 채워진 채로 부대 밖으로 아주 무거운 발걸음으로 끌려 나갔다. 무언가 체념한 듯한, 그러나 당당한 걸음이었다. 우린 당연히 허가 없이 영내를 벗어 날 수 없었고,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복실이는 죽었다. 부대 밖에서 복실이를 기다리는 새 주인은 몽둥이가 아닌 전기 충격봉을 들고 있었고, 손에 무언가를 든 새 주인을 본 복실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다가 새 주인이 내민 전기 충격봉을 본능적으로 물었고, 그렇게, 감전되어 죽었다. 화 나는 건 그 수송관님이 아는 형님인 새 주인이 한 말이다.


“이거 뭐 방법이 없다. 본전 찾기는 글렀고, 복날 되려면 멀었지만 고기 맛이나 보고, 마을 사람들 몸보신이나 시켜야겠다. 개는 때려잡아야 맛있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냥 좋게 보내줬어”


그렇게, 복하사는 부대 밖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개 한 마리가 죽었다. 복실이가 죽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린 아주 우울해졌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있지만 복실이는 지켜주지 못했다. 그 날만큼은 다들 필요한 말만 하고, 그렇게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점호 시간이 되었다. 분대장인 P병장도


“잠 못 자게 밤에 짖고 그럴 때는 정말 미웠는데, 그래도 죽었다는 거 들으니까 안 됐다. 개가 무슨 잘못이라고. 그래도 고놈 참 똑똑했는데 아깝다”라고 말하였다.


P병장은 다소 예민한 성격이다. 내무실에서 누가 코만 골아도 잠을 못 자는데, 개 짖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복실이가 싫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걸로 복실이 이야기는 끝이다. 난 그 후로 복실이 없이 7개월 군생활을 하였고, 제대하였다. 상병 말 호봉, 병장 기간이라 이등병 때처럼 복실이한테 위로 받거나 혼잣말인지 대화인지 모를 말을 하지 않아도 심심하진 않았겠지만 추운 겨울 사무실에 혼자 야간 불침번을 서고 있으면, 왠지 라디에이터 쪽에 복실이가 있을 것 같아서 자꾸만 쳐다보곤 하였다. 복실이 목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밥그릇과 개 집은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었고, 누구든 그걸 치우자고 말하지 않았다.



- 4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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