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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3. 2021

복실이 4 (완결)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은 내 군대 이야기

2001년 5월10일 목요일, 드디어 내가 전역하는 날이다. 살면서 어떤 날은 정말 그 날 날씨가 어떠했는지, 아침, 점심, 저녁은 뭘 먹었는지, 다 기억이 날 정도로 생생한 날이 있는데, 나 또한 그런 날이 있다. 그 중 하나가 1999년 3월 11일 목요일 입대한 날이고, 또 하나가 2001년 5월 10일 전역일이다.


전역하는 날 아침 난 대충 아침밥을 먹고, 텅 빈 내무실 침상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이 시간에 침상에 누워있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연병장을 돌거나 원산폭격이나 하게 되었겠지. 짐 정리도 다 하였고, 내가 빠져나간 관물대에는 벌써 내 바로 아래 후임이 세면 백을 떡 하니 올려놓았다.


이제 내 관물대는 없다. 문 입구부터 일렬로 늘어선 관물대는 입구 쪽이 막내 관물대이고, 맨 마지막 창가 쪽이 제일 고참 것이었다. 나는 언제 창가 저기까지 가보나 이렇게 생각하다가, 막상 그 자리에 가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이 좋을 뿐이지, 실상은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 똑같은 관물대이다.


오전 9시, 대장님이 출근했을 텐데, 전역 신고하러 오라는 연락이 없다. 괜시리 사무실로 가서 커피 한 잔을 타 먹었다. 행정병들은 분주한 가운데서도 씩 웃으며 눈인사를 한다. 쳇, 처음 전입 올 땐 쟤 내들 나랑 눈도 못 마주쳤는데. 오전에 급한 용무가 끝났는지 전역자 신고를 하라고 전달을 받았다. 9시45분 지루하게 기다리던 전역 신고를 한다.


“충성! 병장 xxx는 2001년 5월10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대장님도 거수경례를 하고, 차분히 신고를 받는다. 악수를 건네고, 마주앉아서 차 한잔을 마셨다. 처음이다. 둘이서 마주 앉은 것이. 어색하지만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긴장되거나 하지 않는다. 제대하고 뭐 할 건지 물어봐서 여행도 하고, 복학 준비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건의할 것이 있느냐고 하셔서 아직도 수리되지 않은 세탁기와 오래된 샤워시설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아마 또 안 고쳐질 거다. 몇 번이나 건의한 내용인데.


차를 다 마시고, 또 한번 악수를 하고 나왔다. 이제 끝이다. 이 날을 무진장 기다려 온 것 같은데 나는 왜 하나도 기쁘지 않을까? 딱 하루만 더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절대로 정이 들지 않을 것 같던 이 곳도 알게 모르게 많은 정이 들었다.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 것 같다. 항상 앞에서 보는 시간과 지나고 나서 돌아보는 시간은 다르다. 지나고 나서 다시 보는 시간이 훨씬 짧다. 그렇다고, 군대가 좋은 것은 아니다. 말뚝 박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갑자기 뒤 돌아서서 가 버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복잡하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고 홀가분하게 가고 싶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전역하고 나서 부대 앞 가로수 길을 걸어서 또는 수송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예전 P병장은 굳이 걸어서 나갔다.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길인데 한 겨울에 걸어 나가면서, 내가 군대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추억하며 나가겠다고 했는데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28살에 전역하는 P병장은 대학원도 졸업했고, 바로 이제 세상과 맞닥뜨려야 된다. 취업, 결혼, 완전히 어른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앞날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총 한 자루 없이 혼자서 세상과 싸우러 나가는 예비역 병장의 모습. 너무나 쓸쓸하게 보였다. P병장은 하지만 그 먼 길을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물론, 아주 기쁘게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만큼, 그들의 삶의 무게도 가볍게만 보였다. 그들의 뒷모습은 왜인지는 모르나 얄밉게 보였다. 같은 기간 군생활을 하였지만 짊어지고 떠나는 보이지 않는 짐의 무게는 각자 달랐다.


나는 어떠한가? 이제 대학교 2학년 복학하여야 하고, 그 동안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니 벌써 걱정이 된다. IMF 이후로 아직까지 경기가 안 좋고, 취업률도 계속 안 좋다. 복학할 때까지 뭐 라도 준비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자꾸 든다. 몸이 안 좋아서 군대 면제를 받은 학교동기는 올해 졸업을 한다. 나는 3년이나 더 공부를 해야 하고, 그저 몸 건강해서 군대에 왔을 뿐인데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있는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학교에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에 알던 친구들도 많이 없어지고, 선배들은 거의 다 졸업했다. 군대보다 바뀐 세상이 더 생소하고, 두렵다. 마음이 복잡한데 후임병들은 모여와서 축하한다고 부럽다고 한다. 심란하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나는 가로수 길을 수송차를 타고 나왔다. 걸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내 군생활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P병장과 같이 나 또한 부대 쪽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바라보는데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기쁨도 아닌, 슬픔도 아닌,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알 수 없는 깊은 감정 때문에 멍청히 하늘만 바라보았다.


부대 앞을 나와서 차가 지나가자, 저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복실이 새 주인집 쪽이다. 멍청한 개, 부대에서 차 나오는 거 처음 보나? 이유도 없이 힘 빼고 있어. 저런 멍청한 개는 아직 살아 있는데 복실이는 된장 발리고, 세상은 사람에게만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개에게도 불공평한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하여 이것저것 기차시간을 기다리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갔다. 우동 한 그릇을 시켰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휴가 나오셨나 봐요.”


아줌마 쫌, 여기 전투모에 그리고, 가슴에 예비군 마크 붙어있는 거 안 보입니까? 안 그래도 기분 별로인데. 나는 생각만 그리하고는


“오늘 제대했습니다” 라고 짧게 말했다.


“그래요? 좋으시겠다. 부모님 기다리시겠네요.” 그 아주머니는 옆 테이블 식기를 바쁘게 달그락거리며, 치우면서 미리 준비한 듯한 투로 내 말에 대꾸하였다.


좋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죠. 군대는 정들면 하나씩 떠나가고, 마지막엔 정든 사람들 남겨 놓고 내가 떠나는 그런 곳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빨리 보고 싶기는 한데 정들었던 전우들과 이별하기도 싫습니다. 물론 제가 설명해도 모르시겠죠. 아주머닌 군대 안 갔다 오셨으니까요. 언젠가 이런 기분 복실이도 느꼈는지 모르겠다.


기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자꾸 기차가 부대가 있는 경기도 쪽으로 또, 집이 있는 부산 쪽으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앞으로 뒤로 가는 것만 같았다. 기차 안에서 산 파란색 레쓰비 캔커피도 먹기 귀찮아져서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큰 절하고, 내 방문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 그리고, 내가 십 년 넘게 사용하던 책상, 옷장, 옷걸이 등, 휴가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 방안의 시간은 마치 그 동안 멈춰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자꾸만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전투복을 벗고, 내 옷으로 갈아입는다. 햇빛에 잘 말린 옷 냄새가 너무나 좋다. 벗은 전투복을 나도 모르게 집어 들어 잘 개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멋쩍게 혼자 씩 웃었다. 이제 전투복을 칼 같이 안 개어도 된다. 방 바닥에 잠시 누워서 천장을 쳐다본다. 내무실에서 봐오던 하얀색 베니아판이 아닌 옅은 아이보리색 벽지가 발린 천장, 익숙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색하다. 내 방에서 조차. 스물 셋, 예비역 병장, 힘내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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