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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6. 2021

내게 진정한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값으로 살 수 없는 사랑

 10월 13일, 어머님 생신, 와이프가 나 대신 용돈을 송금해 드렸고, 10월 24일, 동생 생일에는 쿠팡으로 선물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큰조카 생일에 카카오톡으로, 여동생에서 케이크를 보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낸 게 선물이 맞나?


바쁜 시대에 살면서 이제는 점점 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서 선물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 그런 방법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자유경제 안에서 수요와 공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매겨지고, 가치가 결정되지만, 선물은 축하하거나, 상대방에게 호감이나 친분을 표시하는 좋은 방법인데, 간단히 1분도 안 걸리는 시간에 돈을 보내거나, 쿠폰을 보내는 것은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정성’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른이 된 이후에는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이 있을 때, 대부분 돈으로 받거나, 또는, 그저 축하의 말을 받았던 것 같다. 결혼할 때도 다들 돈으로 축의를 전하지 않았던가. 지금 나에게 가장 기억나는 선물은 받았을 당시에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축하, 호의의 표시로 보냈고, 정성을 다 하였으나 받을 때 기쁘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감사한 그런 선물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는 직접 스웨터를 짜 주셨다. 거의 해마다 선물해 주셨는데, 솔직히 나는 그 스웨터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어린 나이지만, 예쁜 옷을 입고 싶었는데,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단색의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도 없는 스웨터는 너무 촌스럽게 보였다.


더군다나 겨울에 이 옷을 벗을 때면, 정전기가 일어나서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특히나 장남인 내가 동생들보다 더 많이 이 옷을 선물 받았고, 내가 싫다고 해도, 어머님이 자주 이 옷을 입혀주었다. 이 스웨터 덕분에 유치원에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하였다. 집이 가난해서 옷을 짜 입는데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당시에는 정말 마음의 상처가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바끄럽고,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외할머니께서 짠 옷 사진을 못 찾았다 ㅠㅠ. 여동생의 파란모자는 외할머니께서 짜 주신 것이다.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할 때 자주 선물을 하였는데, 딱 한 번 선물을 했다가 서운한 일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 초 토요일에 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나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잔뜩 담긴 MP3를 선물로 준비하였다. 별것 아닌 선물이지만 기쁘게 받아줄 것만 같았다.


문제는 선물 포장을 미처 하지 못하였었다. 그래서 급하게 백화점 안에 선물 포장샵으로 가서 아주 예쁜 선물 상자와 포장지를 고르고, 리본과 장식을 달고, 작은 꽃 한송이도 붙여서 포장을 하였다. 연말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예상보다 시간도 많이 걸렸다. 덕분에 약속시간에 5분 정도 늦어버렸다.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서 선물을 주었더니, “뜯어봐도 되죠?”라고 묻고는 바로 단 3초 만에 포장지를 찢고, 꽃, 리본, 장식까지 다 포장지와 함께 뭉쳐서 손에 잡고는 테이블 한 쪽으로 밀쳐 놓았다. 순간 마치 내가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서운하였다. 내가 포장에 들인 시간은 30분인데 그게 쓸모 없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3초, 그리고, 포장비로 지불한 돈이 2만원인데,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그 물건의 가치는 보통 소비자가 결정하지만, 선물의 경우에는 주는 사람이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물은 상대방에게 공짜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물의 가치는 주는 사람이 들인 정성에 따라 달라지며, 받는 사람이 그 정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는지에 의해 다시 결정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스웨터의 가치를 알게 되는데 2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였던 것 같다. 와이프는 내 핀잔을 듣고 나서야 포장지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항상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라고 하는데 정말로 공감한다. 우리는 어느덧, 어린 시절의 조그마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습성을 버리고, 이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내 만족도는 얼마인지에 관심이 있고, 상대방의 진심이나 정성은 별로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공산품에 의해 물질적 풍족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이제 정보와 시간마저 점점 더 풍족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줄 모르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다.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나, 태양 빛, 소중한 추억, 사랑, 우정, 그리고 하루 24시간의 시간, 봄, 여름, 가을, 겨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커피 향, 꽃 향기, 한 통의 마음이 담긴 편지, 길을 걷다 걷어차기 좋은 깡통 등등. 세상에는 이렇듯 선물같이 그저 가격으로만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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