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거북이 Feb 17. 2021

광어와 도다리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 올챙이도 개구리 상황 모른다.

 10여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가장 친했던 친구와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한 시점이.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변한 것인지, 친구가 변한 것인지, 또는 둘 다 인지, 또는 세상이 변한 것인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관계가 점점 소원해져만 갔다.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시간이 꽤 흘러서 이제는 하나의 추억이 되긴 하였다. 그 추억을 지금 꺼내어 보고자 한다.


싱싱한 회를 맛보려는 사람들의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눈빛과 머뭇거리는 발걸음 소리,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렬로 쭉 늘어선 비슷비슷해 보이는 횟집 앞에서 호객 하는 소리, 바닷가 근처 특유의 비린 냄새, 수조의 물고기가 놀라 뒷걸음질 헤엄을 치며 물이 튀는 소리, 일년 내내 정신없이 산만한 이곳 부산 자갈치 회 센터 한 켠의 횟집 'XX상회', 20년은 족히 자리를 지켰을 듯한 낡은 수조와 물때 자국이 가득한 횟집 타일 바닥은 묘하게 이곳의 소리와 냄새에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손님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1층에서 물고기를 고르고, 가격 흥정을 마치면, 2층의 바닷가가 내려 보이는 창가로 난 자리에 앉아 각종 밑반찬과 함께 회를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상차림 비를 따로 받지만 분주하고, 간편함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창가에서 보이는 풍경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거짓말로 여겨질 정도로 정적이고, 조용하고, 엄숙하다. 경망스럽게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좁은 길을 헤집고 다니는 자동차만이 이러한 분위기를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들어 바다를 바라보면, 이런 경망스러운 움직임과 소리는 금방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된다. 이곳에 앉아서 회를 먹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경박스럽기도 한 행위이다. 싱싱한 살아있는 생선을 한칼에 죽이고, 살을 떠서, 예쁘게 접시에 담아서, 우아하게 한 점, 한 점 먹는 행위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뺏는 것이 아닌, 교묘히 꾸며진 야만적인 고대 종교의식과 같이 느껴진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다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매번 방문하는 손님과 그 손님이 선택한 물고기이다.


연말 분위기가 아직은 덜 느껴지는 12월초 어느 날, 아직은 남쪽 부산에서 첫눈을 기대하기에는 이른 조금은 온기가 남아있는 겨울 초저녁, 나는 홀로 XX상회 2층을 찾았다. 1층에서 내가 고른 물고기는 광어와 도다리였다. 광어와 달리 양식을 할 수 없는 도다리가 더 비싸야 정상이지만, 이 곳에서는 대충 조그마한 가자미과 물고기를 죄다 도다리라고 부르기에, 마리 당 가격은 광어보다 훨씬 싸다. 광어 두 마리 시키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한 마리는 너무 적고, 이런 경우 광어 한 마리에, 작은 도다리 한 두 마리 정도 끼워팔기 식으로 파는 것인데,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알면서도 속고, 속이면서 적당량을 맞춰 사고 판다. 자리에 앉아서 뭔가 불안한 듯 연신 핸드폰을 식탁 위에 놓았다, 들었다 하다가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고?"


오랜 친구 민호는 아주 짧고, 가볍게 나에게 전화를 받자 마자, 다짜고짜 어디냐고 묻는다. 약속 장소에 있음을 알리고, 


"그래, 알았다. 나도 방금 도착했다. 회 시켜 뒀으니까 천천히 와라."라고 나는 상투적인 대답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다. 항상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인데, 오늘은 조금만 늦을 예정인 것 같다. 밑반찬이 다 깔리고, 내가 창 밖의 풍경에 조금 지루해져 갈 때, 한 남자가 불쑥 2층으로 올라온다. 푹 눌러쓴 야구모자, 짙은 색 외투, 그리고, 트레이닝 바지와 구겨 신은 운동화. 나는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오, 민호야, 반갑다. 진짜 오랜만이다."


"어, 그래 반갑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하다."

민호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바쁘게 신발을 벗으며, 아무렇게 인사를 한다. 


"그래, 이번에 취업했다고 이야기 들어서, 오랜만에 주말에 부산 내려왔다. 친구가 취업했다는데 내가 당연히 축하해줘야지. 내 때도 니가 축하해줬자나."라고 내가 말하자, 


"그랬었나? 몇 년 지나니까 나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바쁜데 나 때문에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니가?" 민호가 나에게 말한다. 


민호는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였다. 같은 동네, 비슷한 학교 성적, 좋아하는 연예인이 같았고,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나는 취업이 되어서 다른 도시로 떠났고, 민호는 부산에 남았고, 이제서야 취업을 한 것이다. 둘이 떨어져 지낸 5년 동안 이젠 친하지만,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일상인 회사 생활, 학창시절에 비하면 아주 풍족해진 지갑 사정, 내가 무심코 건넨 명함, 이런 것들이 민호로 하여금 자꾸만 패배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민호도 그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회사원 같은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려서 은연중에 자신의 감정이 드러나게 되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광어와 도다리가 나오고, 소주가 나오고,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군대 이야기, 대학교 때 이야기, 롯데 자이언츠 이야기 등등, 20대 때 수도 없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였다. 민호는 계속 비싼 광어를 마다하고, 도다리를 한 점씩 젓가락으로 들어서 먹으며, 내가 시작한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하며, 천천히 소주잔을 비웠다. 한참의 옛날 이야기가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내가 


"이번에 취업한 곳이 어딘데?"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 아버지 친구분 회산데 양산에 있다. 니는 말해도 어딘지 모를 거다."


"그런데 뭐 돈은 제법 준다고 하더라, 모레 첫 출근한다."

민호가 한마디 한마디를 끊어서 대답한다. 


"그래, 입사 기념으로 내가 오늘 다 살 테니까 마음껏 먹어라. 모자라는 것 있으면 얘기하고, 여기 로얄 샬루뜨 한 병 시킬까?"

실없는 나의 농담에 민호가 쓴웃음으로 화답한다.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린다.


"네, 과장님, 아니 괜찮습니다. 지금 전화 통화 가능합니다."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며, 나는 손짓으로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내가 1층으로 내려가며 보니, 민호는 광어 두 점을 한꺼번에 들어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먹고는 원샷으로 술잔을 비운다. 광어와 도다리는 비슷하게 생겼고, 사촌 지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기만 비슷하다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광어는 왼쪽으로 눈이 돌아가 있고, 도다리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다는 것이다. 이빨이 튀어나오고, 색깔이 틀린 것도 사실이나, 눈에 띄는 차이점은 아니다. 광어와 도다리 모두 치어 때에는 다른 물고기처럼 눈이 돌아가지 않고, 정면에 붙어있으나, 자라나면서 눈의 방향이 달라진다. 


잠시 후 멋쩍은 표정으로 내가 돌아왔고, 민호는 다시 내가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린다. 먼저 말을 꺼내서 이득 될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먹은 맛있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꺼냈는데, 내가 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최근에 먹었다고, 쭉 열거하면 잘난 체는 커녕, 또 본전도 못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취직했으니까, 나 소개팅 좀 해주라." 


민호가 웬일로 먼저 말을 건다. 오늘 첫 공격이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회사 이름도 안 가르쳐 주면서 어떻게 소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왜? 니네 회사 여직원들 많잖아. 신문에 보니까 매년 30%이상은 여사원 뽑는다면서?"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며, 행여나 또 그냥 넘어갈까 민호가 다시 한 번 공격을 한다. 


"정 안되면 고졸사원도 괜찮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는 아직도 대학 나왔다는 타이틀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세상 나가서 소위 명문대학 나왔다는 것들에게 무시도 당해보고, 책으로 배운 게 항상 맞지도 않고, 뒤죽박죽 불공평한 세상 맛도 보고, 고졸 사원들에게, 일 잘못해서 무시도 당해봐야 아, 내가 등록금 너무 비싸게 내고 학교 다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어서, 


"그래, 내가 한 번 알아볼게. 다들 내 주위엔 남자친구 있던데, 그래도 찾아보면 마땅한 사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적당히 핑계거리를 섞어서 긍정의 답을 했다. 매운탕이 올라왔다. 광어와 도다리 머리와 뼈가 들어간 매운탕. 광어와 도다리 눈이 터져 나가서 구멍만 움푹하다. 떡 줄 생각도 없는 나의 마음도 모른 채 민호는 진지하게 소개팅을 머리에 그리고 있다. 어쩌면 소개팅만 잘 되면 다시 나와 동등하여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으니까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예전에 민정이 좋아하지 않았나?"


나에 물음에 민호는 힘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연락 안 한지 오래되었다. 캐나다 갔다가, 아직 안 온 것 같다. 최근에는 전화번호도 바뀌었는지, 카톡에 다른 사람 프로필 사진이 있더라." 


"어 아닌데? 작년에 국내 들어와서 올해 초에 나에게는 잘 지내냐고 전화 한 번 왔었다." 


내가 눈치 없이 이렇게 말하자, 민호는 애써 고개를 돌려 나의 시선을 피하고는, 또 다시 도다리 한 점을 먹는다. 


"매운탕 맛있네, 너도 좀 먹어라."


나는 잠시 눈치없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무안해서 재빨리 다른 말을 꺼냈다. 창 밖의 겨울바다에는 파도소리만 요란하다. 갈매기도 추운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바다에서 무지개를 찾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민호의 마음에 희망의 무지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쉽지 않은 분위기이다.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말하려 했지만, 민호는 내가 말을 꺼내자 말자 귀를 닫아 버릴 것 같아, 별다른 이야기를 해 줄 수 없었다. 


겨울 밤은 소리 없이 깊어만 가고, 광어와 도다리는 사라져 갔다. 넷이 삼겹살을 실컷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 나왔고, 내가 계산하였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다른 친구를 통해 민호가 그 회사를 그만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 둔 사유는 ‘일이 힘들어서.’ 였다. 직접 민호를 만나서 들은 얘기로는 매일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윗사람들이 시키는 일이 많고, 월급도 적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배를 타 본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배를 탄 기억은 어린 시절 해수욕장에서 작은 배를 빌려서 아버지가 직접 노를 저어서 배를 탔던 기억이다. 한번 노 저어서 나가면 파도 때문에 다시 반쯤 돌아오고, 또 한 번 저어 나가고, 다시 반쯤 돌아오고, 이렇게 천천히 가는데, 어린 내가 봐도 너무 답답했다. 반대로 돌아올 때도 파도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파도가 배의 방향을 조금씩 돌려버려서 내가 배의 방향을 매번 알려드려야만 했다. 잘못 알려줘서 배가 약간 엉뚱한 곳으로 갔고,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글쎄, 민호가 사회에 나가며 탔던 배가 어떤 배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배를 타는 것과 비교해도 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앞의 바다만 보고 노를 저었었다. 그 당시 나는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도저히 그만 둔 이유가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내가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까 두려웠다. 


 민호는 그 이후에도 계속 단기 알바나 간단한 일을 하였고, 어쩌다 괜찮은 곳에 입사를 하더라도 금방 그만두었다. 그런 민호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민호는 내가 결혼한 이후 절대 나와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이 민호 집 코 앞이었는데, 민호가 전화로만 위로의 말을 전했을 때, 이제는 너무나 멀어져서 친구라고 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우리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도 이젠 3년 전 일이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에겐 바다하면 이렇게 해운대 백사장이 가장 많이 생각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 당연하지만, 친구 이름은 가명이고, 조금 사실을 윤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송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 진정한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