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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4. 2021

구덕산

산에 오르면 겸손해진다.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에 위치한 금정산맥의 끝 구덕산(九德山),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 산을 천 번도 넘게 올랐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 산에 올라 약수터에 물을 길러 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정례화 된 주말 일과였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산술적으로는 천 번이 넘게 이 산을 오른 것이 맞다. 철없던 어린시절에는 산이 가져주는 선물들을 전혀 몰랐고, 그저 산에 가는 것이 힘들고, 지겨웠었다.


 대학교 입학 이후에는 약수터 등반에서 해방되었는데, 그래도 가끔씩 산에 오를 일이 있기는 했다. 친구들과 같이, 아니면 내가 속한 모임에서 야유회나 야외행사를 할 때, 종종 이 산을 찾아왔었다. 이 산과 알고 지낸 시간이 십 년이 넘었는데도, 항상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번 봄, 여름, 가을, 겨울, 수목과 바람, 꽃과 새, 곤충들이 다 달랐지만, 산이 나에게 주는 깨끗한 공기와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조용함과 신선함에 마음이 쏠려, 산이 변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 인 것 같다. 마치, 매일 밤 고단한 몸을 이끌고 푹신한 침대에 누울 때, 매번 똑같은 기분에 빠지듯 말이다.


구덕산 초입길, 올라가는 길이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입구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싫어했던 산인데 머리가 굵어지고, 반 사회인이 되고 나니, 힘들고 지칠 때, 산에 오르게 되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산에서 바라보면, 바다도 내려 보이고, 집들과 학교도 보인다. 내가 자란 동네이기 때문에 작게 보여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아는 곳이라 정겹게 느껴졌고, 건물에 가려진 작은 골목, 지붕만 겨우 보이는 친한 친구 집을 보면서도 즐거운 추억 한 두개 정도는 매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내가 좁은 곳에 속해 있는 지 알게 되어 절로 겸손해지고, 작게 보이는 만큼 내가 크게 느껴져 자존감도 올라갔었다. 꿈 많던 20대에 그렇게 산에 올라 내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상상해 보는 것은 저 멀리 바다 수평선 너머로 지팡코나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대항해시대 모험가의 설렘에 감히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흥분되고, 즐거웠다.


 2005년 3월부터 5월 사이, 나는 수십 번 구덕산을 찾아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서 외롭고, 괴로웠기 때문이다. 번듯한 회사에 이미 취직한 친구들도 보기 싫고, 언제 취업하느냐고 물어보는 가족들도 싫고, 나와 같은 처지인 몇몇 친구들을 만나봐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기에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때마다 등산을 했다. 솔직히 용돈 받기도 미안하고, 취업 공부하느라 아르바이트도 못해서 어디 돈 없이 다른 데 갈 만한 곳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장소가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너무나 빨리 변한다. 금방 길이 생기고, 건물이 생기고, 또 부수고, 고쳐지고, 그리고, 나도 벌써 학생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산은 달랐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올라가는 길, 내려오는 길,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가 볼 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산도 계절 따라 변하긴 하지만 다시 한 해가 지나면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원래의 상태를 찾아가곤 한다. 산을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이다.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이렇게 전진하며, 한 걸음씩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 인생도 더도 말고 딱 등산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산에 오른다고 취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토익 공부하고, 이력서 쓰고, 취업 정보 찾고, 그러다가 운 좋게 서류전형에 통과하면 면접 준비하고, 그렇지만 실패는 계속되었고, 취업은 나에게 넘기 힘든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 영영 주저앉을 지도 모르겠다는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산에 오르면 그런 두려움을 잠시나마 떨칠 수 있었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기분도 좋지만, 산에서 내려올 때의 기분도 나름 괜찮았다. 산을 내려가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올라갈 때보다 빠르고, 쉽게 내려가기 때문에 내가 뭔가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땀에 젖은 얼굴로 날아드는 상쾌한 바람이 내 마음을 다독여 줬었다.


이상하게 아침부터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고, 그 날 날씨가 어땠는지 다 기억이 나는 날이 있는데, S사에 최종 합격한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이다. 5월 6일 금요일, 어버이날 이틀 전, 저녁 5시반 나는 초조하게 S사 최종 합격 결과를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험번호를 입력해 보아도 아직은 발표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팝업 창만 떴다. 6시에 발표되는데 도저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간혹 발표가 빨리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일 이분 마다 재확인을 하였다. 5시 50분 정도에 무심코 수험번호를 넣고 결과확인을 클릭했는데, 기다려 달라는 한 줄짜리 메시지가 아닌 두 줄짜리 메시지가 있는 팝업 창이 떴다. 심장이 순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마음을 다 잡고, 팝업창의 글을 읽었다. 합격이었다. 항상 불합격이었기 때문에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두 번 더 내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한번 더 사이트 접속부터 다시 해서 재확인을 하고, 다음 일정인 신체검사에 대한 안내사항을 확인하고서야 “합격이다.”라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무심히 내뱉듯이 말한 것인데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가 다 듣고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는 20대의 나에게 가장 크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였다.


 그 후 회사가 있는 경북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계속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일도 바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취업의 단맛도 이젠 사회생활의 쓴맛에 점점 사라져 초심마저 잃어버렸을 때, 다시 구덕산을 올라보았다. 부산에 살 때는 그렇게 자주 오르던 산인데 근 5~6년만에 오르려고 하니, 옛 추억들이 떠올라서 자꾸만 서글퍼졌다. 과거 나의 발자국 그림자를 따라 산을 오르면서, 산도 나와 같이 달라진 것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약수터는 예전보다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정수기와 생수의 보급으로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묵은 낙엽이 켜켜이 쌓인 약수터, 내 눈에는 폐허로 변한 유적 같아 보였다. 썩은 낙엽과 오물 아래로 예전에 사람들이 마시던 약수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고, 건드리지 않아도 산에서 훼손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개울도 수로 정비를 해서 민물고기 숫자가 늘었으나, 내가 볼 때는 개악이다. 수심이 깊어지게 되면서 얕은 물에만 사는 물고기가 사라졌다. 밀어는 예전에는 흔했는데, 수로 정비 이후에는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과 생태계는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보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치된 약수터 벤치에 앉아 아픈 다리와 고단한 몸을 잠시 쉬게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그러나 내 고민에 대해서 이것저것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게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처럼 산에 숨어버린 자연의 한 부분이라도 되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머리를 굴렸다. 나는 왜 그렇게 힘들 때마다 쓸데없이 술이나 마시고, 시간을 허비하였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고, 정상까지 고생해서 갈 필요없이, 적당한 곳에서 주저앉아서, 소소한 행복으로 위안 삼으며,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 약수터에 와서 아래쪽 개울에 내려가서 가재도 많이 잡았는데 지금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구덕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


밀어, 가재와 같이 구덕산이 점점 잃어가는 것들을 나도 그저 내 욕심과 나태함 때문에 잃어가는 소중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밀어는 하천 바닥에 사는 작은 물고기이다. 계곡물이나 맑은 하천 바닥에 산다. 덩치는 작아도 자기보다 큰 민물새우를 아주 잘 잡아먹는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메기나 퉁가리도 단단한 껍질 때문에 민물새우를 먹지 못하는데, 이 작은 친구는 아주 특별한 기술로 새우를 잡아먹는다. 새우가 방심하고, 돌 위에 있을 때 다가가서는 잘록한 허리를 물고 회전을 하며, 돌 위에 패대기를 친다. 이렇게 하면 새우가 두 동강이 나는데, 두 동강 난 조각 중 먹기 좋은 허리 아랫부분을 꿀꺽 삼켜버린다. 가재는 깨끗한 물에서만 살 수 있다. 중국에 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민물가재가 너무 흔해서 식당에서, 길거리 간식으로 정말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흔한 먹거리였던 것이다. 중국의 가재는 더러운 3급수에서도 살기 때문에 그렇게 흔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가재는 물이 더러워지면 물 밖을 기어나와 살 곳을 찾아 떠난다. 물론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


내가 겪은 회사생활은 밀어나 가재의 노력보다 더한 것들을 요구한다. 차라리 능력이 모자라거나 내 노력이 부족하다면 빨리 승복이라도 하겠는데, 차별과 거짓, 위선, 부정, 이런 것들이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곤 한다. 남들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산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인간이 욕심을 위해 만든 여러가지 콘크리트나 철재 구조물이 안 보이고, 조물주의 솜씨로 만들어진 예술품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쓰레기 소각장의 인부가 하루 종일 삽으로 땅에 쓰레기를 파묻다가 잠시 쉬면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커피 한잔 타기 위해 설탕 한 스푼을 커피잔에 파묻으면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과 행복, 그것과 같은 기분이 아닐까?


그 날, 짧은 산행을 마치고, 나는 인생의 중요한 답이나 뭐 대단한 것을 찾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구덕산 등산길을 그려보며, 나 혼자 상상 속의 등산을 하곤 한다. 인생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평지를 걸어서는 아무런 성취감을 느낄 수 없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면, 그만큼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 제1회 서구사랑 작품 공모전 우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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