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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28. 2021

육군복지근무지원단

코카콜라 캔에 깔리는 꿈을 수없이 반복되었다.

 제대한 지 20년이나 지났으니, 나의 군생활을 적어보고자 한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없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 세월이 지났으니, 군 보안에 위배되는 내용은 없겠지. 그리고, 군대 간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군생활에 대해서가 아니라 육군 복지근무지원단에서 내가 겪었던,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써 보고자 한다.

 

훈련소 6주 신병교육을 마치고, 육군 복지근무지원단 XX지원 본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사실, 군대에 오기 전에는 이런 부대가 있는지도 몰랐다. 기갑부대나 일반 보병부대, 공수부대 정도가 내가 아는 육군의 전부였다.


좀 특이한 곳이기는 하다. 부대의 존재 자체가 군인의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콘도, 스키장, 골프장, 전자상가와 같은 곳도 직접 관리하고, 또한, 영내 외 PX를 관리하였다. 군대 다녀오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부대마다 매점인 P.X라는 곳이 있고, 이곳에 필요한 과자, 음료수, 생활용품 등을 보급하는 부대이다. 물론, 군장병들의 복지를 위한 다른 시설들도 있다. 전자상가, 콘도, 스키장 운영 등등, 아무튼 내가 배치 받은 부대는 P.X에 물건을 보급하는 부대였다.


우리 부대는 행정병이 3명, 운전병이 1명, 창고병이 10명 정도이고, 나와 같은 창고병의 주요 업무는 P.X 보급 물품을 싣고, 내리는 일이었다. 엄청 편한 일같이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해보면, 정말 중노동이 따로 없다. 하루 종일 물건 싣고, 내리는 일을 하면서, 정말로 여러 번 내가 소나 나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정도로 고되고, 군대라는 특성 때문에 제대로 된 보수도 당연히 없고, 휴식도 충분히 보장을 받지 못했다.  


처음에 자대배치 받고,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과자박스 같은 경우 쭉 일렬로 서서 던지고 받으면서, 하역을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서 침상 정리와 옷을 입기가 많이 불편하였다. 고참들과 같이 어느 정도 내 몫을 하기까지는 대략 3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 것 같다. P.X에 나갈 물품을 싣는 일은 매일매일 정해진 양이 비슷했다. 물론 성수기 비수기 따라 틀리기는 하였지만. 문제는 하차하는 일이 매일 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도, 훈련은 적어서 상대적으로 편하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육체 노동을 해야 되어서 몸이 고된 곳이었다. 매일매일의 업무강도는 어떤 공장에서 어떤 물품이 오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농심, 크라운, 롯데, 해태, 코카콜라, 크라운, 진로, OB 등등, 그 날, 그 날, 계획된 차량들이 일정표에 표시가 되었는데, 롯데는 ‘롯’, 해태는 ‘해’등으로 앞 글자에 동그라미가 쳐져서, 어느 공장에서 차량이 오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11톤, 15톤 차량이 쭉 들어오는데, 이게 어디서 오는 차량이냐에 따라, 그날의 업무강도가 정해졌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동그라미 쳐진 글자는 ‘농’이었다. 트럭 가득 실려와도, 농심은 무거운 음료수는 하나도 없고, 라면과 과자만 있기 때문이다. 과자도 아주 고맙게도, 비교적 봉지에 질소가 많이 든 봉지과자가 많았기에, 농심이 잡힌 날은 업무 강도가 확 떨어지는 날이었다.


‘롯’이나 ‘해’는 음료수와 과자 모두를 만드는 곳이라, 그냥 평균적인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경우였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코’ 바로, 코카콜라였다. 무조건 무거운 음료수, 그것도 재미없게 단일품목인 코카콜라만 만들어 보내는 곳, 일정표에 ‘코’,’코’,’코’ 이런 식으로 코카콜라 트럭이 여러 대 적혀 있으면 진짜 잠깐 탈영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여름에는 음료수가 잘 나가고, 겨울에는 라면이 잘 나갔다. 당연하겠지만. 여름에 날씨는 더운데 음료수만 계속 내리자면, 정말 힘이 든다. 그래서 고참들은 주로 여름에 휴가를 많이 갔었다. 코카콜라가 너무 싫어서, 휴가 나가서도 매번 사이다만 마셨다. 치킨에 사이다, 피자에 사이다, 햄버거에 사이다를 마시니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가장 많이 마신 사이다는 물론 칠성 사이다였다. 당시 다른 사이다도 있었지만, 별로 부대에서 볼 일이 없었다. 군대가 좀 많이 보수적인 곳이라 콜라는 코카콜라, 사이다는 칠성 사이다, 이런 인식이 강했고, 보급관님이나 행정병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급량을 정했지 싶다.  


칠성 사이다도 음료수인데, 싫지는 않았냐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당시에 나도 군인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해한다. 여름에 P.X에서 시원한 음료수 사 마시고 싶은 마음을. 하지만, 코카콜라는 너무하지 않은가? 하루에도 10톤이 넘는 트럭에 가득 실려서 계속 들어오는데, 이거 뭐 계속 똑같은 검정 음료수만 보다 보니까 정말 쳐다보는 것만해도 지긋지긋 했었다.


칠성사이다는 기본적으로 롯데에서 만드는 다른 과자와 같이 공간을 나누어서 트럭에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참고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롯’이라는 글자를 보면, 사이다일까, 과자일까, 기대도 되고,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오늘 만약 칠성 사이다가 가득 실려왔다면, 내일 ‘롯’은 과자가 가득 실리겠지 하는 식으로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더군다나, ‘해’랑 비교하면 칠성사이다는 정말 착한 음료수이다. ‘해’의 경우 칠성사이다와 같이 주력으로 많이 들어오는 음료수가 없어서, 오렌지 맛 탄산, 포도 맛 탄산…. 이런 식으로 여러 종류가 다품종 소량으로 들어왔다. 관리하는 입장에서 이것도 상당히 귀찮고, 불편했다. 딱, 칠성 사이다 정도가 맘에 들었다.


차량 중 최악은 '중'이었다. '중’이 무엇이냐 하면 복지단 본부에서 실어 보내는 차량이다. 보급할 물품이 적은 회사들은 전국으로 보내야 할 물품을 한꺼번에 실어서 단 본부로 보내고, 이것들을 모아 모아 각 지역별로 나눠서 한 트럭에 보내는 차량인데, 하역하는데 시간이 엄청 소요된다. 하역할 때, 물품 송장을 확인하면서 한 품목씩 내려야 하는데, 예를 들어, 롯데에서 트럭을 보낸 경우 물품 송장에는 칸쵸 50박스, 빼빼로 50박스, 레쓰비 캔커피 100박스..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중'의 경우 송장에 모나미 볼펜 1박스(12자루), 모닝 글로리 지우개 2박스, 애경 빨래비누 3박스...이런 식으로 물품이 빼곡히, 그리고, 여러 장으로 쓰여져 있다. 10톤이 넘는 트럭에서 이걸 찾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중'이라는 트럭이 두 대 이상 잡히면 우리는 아침부터 한숨을 쉬며 일과를 시작했다.


해태의 경우 가장 재미있는 차량이었다. 해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벼운 과자와 무거운 과자를 동시에 만든다. 홈런볼과 맛동산이다. 고참 중에 제대하고 맛동산 절대 안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맛동산 단일품목으로는 공포 그 자체였고, 홈런볼은 마른 하늘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맛동산 한 봉지 85g, 홈런볼 한 봉지 46g, 한 박스에 똑같이 30개씩 들어있을 때, 5박스의 무게는 맛동산 12.75kg, 홈런볼 6.9kg으로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나중에 박스 숫자 세기 편하게 5박스 단위로 내려서 한 사람이 들고 나르기 때문에, 이 차이는 굉장히 크다. 맛동산은 한 번 들 때마다 무릎이 휘청거렸고, 홈런볼은 머리위로 번쩍 들어 올릴 수도 있었다.


멀리서 보면 부피는 비슷하기 때문에,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참들이 홈런볼을 들고 나를 것 같지만, 실상은 고참들이 맛동산을 들고, 후임병들이 홈런볼을 대체적으로 들었다. 일이 익숙하지 않은 후임들을 위한 고참들의 배려였는데, 그래도 이런 날 후임병들이 홈런볼 박스를 실수로 떨어뜨리면, 평소보다 많이 혼났다.


이러한 일 때문에, 나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 동안 맛동산과 코카콜라는 먹지 않았다. 코카콜라의 경우 안 그래도 싫었는데 제대를 앞두고, 아찔한 사고가 나서 더욱 더 마시기 싫었다. 전역을 일주일 앞둔 마지막 하역 때, 하필이면 코카콜라가 들어왔다. 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슬슬 물량이 많아지던 시기라, 다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였다. 며칠 뒤 제대하는 나만 빼고 말이다. 나무 팔레트에 코카콜라 캔을 15단 높이로 쌓는데, 후임들이 트럭에서 일렬로 서서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팔레트가 오래되어서 아무래도 불안해서


“이거 팔레트 새 걸로 바꾸고 하여야 되겠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 라고 말 했는데 실세인 김상병이 콧방귀를 뀌며,


“김병장님 제대할 때까지 끄덕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했다.


분대장 견장 뗐더니 고참한테 ‘요’자로 말 끝내고, 기가 찼지만,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캔 15단이면, 내 키보다 높은데 얼추 반정도 쌓았을 때였다. 갑자기 삐꺽 하는 소리가 나더니, 팔레트가 부러지며, 쌓아 둔 코카콜라 전부가 나에게 쏟아졌다. 나는 미처 못피하고, 어쩔 수 없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넘어지는 캔을 등으로 막았다. 어차피 피하기엔 늦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0.1초 정도 아주 짧은 시간 버티다 견디지 못하고, 캔과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다들 얼굴이 하얘지면서 달려와서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0.1초 버틴 게 도움이 되어서, 그 시간동안 캔들이 옆으로 상당수 쏟아져버려, 난 찰과상만 입었다. 하지만, 정말 말년에 아찔했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전역하고도 한동안 군대 꿈을 꾸면 그 지긋지긋한 콜라 캔에 깔리는 꿈을 꿔야만 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정말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내가 겪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이렇게 글로 남기려고 한다. 현재 육군 복지근무지원단은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삼군 통합으로 바뀌고, 이름도 바뀌고, 민간으로 넘긴 부분도 있고, 조직도 많이 작아진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병역의 의무를 다한 곳이 사라지는데 추억할 글 하나 남겨두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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