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력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장애 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 약간 불편한 일이 있는 정도이다. 군대에서 사격 훈련 후 이명이 생겼다. 오른쪽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항상 들린다.
영구적인 손상이라 딱히 치료방법도 없고, 20년이 지났지만,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고, 항상 그 상태 그대로이다. 일상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일단, 한쪽 귀에서 나는 소리라 아무래도 오른쪽 청력이 왼쪽보다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소리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사무실 누군가의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리면, 어느 전화가 울리는지 알아내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 다른 단점은 가끔 이명 소리와 동일한 높낮이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소리의 크고 작고를 떠나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이 정말 힘들다. ‘윙’소리에 상대방 목소리가 묻히니까, 몇 번씩 다시 말해 달라고 해야 하고, 주의 깊게 듣느라 긴장된 얼굴로 대화를 하게 되니, 가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내 이명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자그마한 불편함도 내 삶에 나쁜 영향을 많이 끼친다는 것이다. 항상 내 핸드폰 소리도 듣지 못할 것 같아, 폰을 자주 들여다보고, 누군가와 같이 걸어갈 때면, 조금이라도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 상대방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노력한다.
매일 남들에게는 필요 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가급적 이명소리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윙’소리에 신경이 덜 쓰이게 되므로, 항상 밥을 먹든, TV를 보든 남들보다 더 그 상황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몇 년을 같이 살았지만, 와이프에게 종종 불러도 왜 반응이 없느냐고 핀잔을 듣곤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한도 내에서 장애가 있는 분들을 뽑아서 채용한다. 좀 마지 못해서 최소 인원만 채용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일하다 보면 이런 분들과 상당히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느 정도 장애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경 쓰이기도 하고, 혹시나 같이 일하는데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주의사항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장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데, 나는 절대 먼저 물어본 적이 없다.
내 이명의 경우도 다른 분들에게 미리 알려드려도, 대부분 흘려서 듣거나, 쓸데없이 여러가지 질문을 되묻는 경우가 많아, 그냥 상대방이 나를 정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이지만, 뻔히 눈에 보이는 장애라도, 나는 상대방이 자신의 장애에 대해 말하지 않는 한 정상인으로 대한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라도, 본인이 자신의 장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면, 어딘가 가야 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정상인들을 대할 때와 똑같이 같이 가자고 하거나,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린다. 다리 때문에 못한다고 말씀하시면, 그제서야 인지했다는 듯이 ‘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는 배려를 해 드린다.
이 방법을 쓰는 이유는 장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나에게 폐를 끼치거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괜히 미안 해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좀 눈치 없고, 배려가 없는 사람이 되어서 상대방이 미안해 할 때, 그제야 같이 미안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 영어 단어 중에 좋아하는 단어가 있는데 ‘이해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understand’이다. 이해하는 것은 아래쪽(under)에 내려서는(stand) 것이라는 좋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내가 먼저 자세를 낮추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정말로 기억에 남는 장애인이 있는데,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다. 여자아이였고, 나이는 10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살 소녀는 선천적인 지적장애가 있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와 한 명의 장애 아동이 가을 산행을 같이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와 같은 부서 과장님이 이 아이를 도와서 같이 산행을 하게 되었다. 장애 아동들마다 장애 정도가 다 달라서 한참 앞서 나가는 조도 있었고, 우리와 같이 한참 뒤쳐지는 조도 있었다.
이 소녀는 지적 장애가 있는데도, 밝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기본적인 인사나 높임말도 꽤 잘 하였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발음이 워낙 어눌해서 정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지만, 다른 조의 장애 아동들보다는 같이 행동하기에 편하게 느껴졌었다. 주의가 산만하고, 빨리 가는 것을 싫어하여서 보조를 맞춰 천천히 걷다 보니, 우리 조가 제일 뒤쳐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쉽게 모든 것이 진행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산행이라고 해도, 산 초입의 등산로를 따라 몇 키로만 걷다 돌아오는 코스였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갑자기 이 아이가 소변이 급하다며,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우린 더 당황했었다. 둘 다 남자였고,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전혀 예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가자면 왔던 만큼 되돌아가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지만, 숲에서 볼 일을 보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저쪽 나무 뒤가 좋겠다고 말하고,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 지 몰라 정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이 아이가 혼자 나무 뒤로 뛰어가더니, 거기서 기다리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 오면 알려 달라고 말하고는 우리에게 뒤 돌아서라고 하고는, 옷을 내리고, 앉은 다음….
이렇게 정해진 순서를 혼자 중얼거리며, 정확히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돌아서서, 그 아이의 설명을 차근차근 듣는 동안, 펑펑 울고 싶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이 얼마나 열심히 그 아이를 교육시켰는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나는 그 반의반도 못할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도 계속 장애인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이 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시각 장애인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앞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인보다 훨씬 더 인기척을 잘 느끼고, 심지어 바람 소리를 듣고서 앞에 나무가 있는지, 벽이 있는지 인지하며, 손으로 만져보고, 어떤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머리 속에 더 잘 기억을 해 둔다. 장애란 그저 남들보다 불편할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불편한 부분을 기꺼이 도와줄 마음만 있다면, 그 분들이 나와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정상과 비정상, 일반인과 장애인의 차이는 상대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우사인 볼트가 볼 때 100m를 18초에 달리는 사람이 정상으로 보이겠는가? 기껏 평균치의 지능과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능이 낮은 사람, 앞이 안 보이는 사람, 귀가 안 들리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는 학생이 꼴등인 학생을 열등생이라고 업신여겨도 될까? 그럴 자격은 당연히 없다. 이상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번 개선시킨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내 생각은 정답이 아니라 생각한다. 더 선하고, 더 공정한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계속 노력해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