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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Mar 11. 2021

나의 부모님

1. 내 생일은 공교롭게도 5월8일 어버이날이다. 어린 시절에는 왜 하필 어버이날이 생일인지 불만스러웠었다. 내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생일 선물을 달라고 조르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영 불편하였었다. 나는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0,90년대는 한창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고, 정치적으로나 문화적, 사회적으로 큰 격변의 시기였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쁜 시기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5살이 되었을 때 육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나를 나보다 한 두 살 많은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보냈다. 아버님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댕돌같은 분 이셨다. 유치원 행사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다. 재롱잔치, 운동회, 학예회, 입학식, 졸업식 모두 어머님께서 혼자 참석하셨다. 그 당시에 철 모르는 친구들에게 듣는 가장 싫은 말이 ‘너는 아빠가 없냐?’는 말이었다. 꽤나 상처를 많이 받았었는데 아버님께서는 아마 아직도 내 마음을 이해 못 하실 것이다. 도대체 내 감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셨고, 오직 당신께서 원하는 대로 내가 자라나는 것만 관심이 있으셨다.


태어난 지 5달 정도 되었을 때


어릴 때 '너는 아빠가 없냐?'는 말 다음으로 싫어했던 말은 아마도 '넌 이제 다 컸다.'일 것이다. 연달아 동생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떼를 쓰거나 어리광을 부릴 때면 부모님께서는 항상 넌 이제 다 컸으니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참고, 인내하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솔직히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이 다 큰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은 많이 미성숙하고, 많이 배워야 하는 시기인데.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 내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하였었다.


2.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내 경우에는 독서와 폭력이었다. 전자의 경우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인생을 바꾸어 놓았으나, 후자의 경우는 정말로 안 좋은 영향만 끼쳤다. 아버님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내가 공부에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가차없이 폭력을 행사하셨다. 아직도 잊혀 지지 않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문제 한 문제를 못 풀어서 정답을 맞출 때까지, 새벽 두 시까지 아버님에게 맞으면서 문제를 풀고 또 풀고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님께서 답을 잘못 보고, 원래는 벌써 맞춘 문제를 틀렸다고 한 것이었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울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들어가서 자!!!"라고 오히려 빽 소리를 지르셨다.   


"쓸모 없는 자식, 나가 죽어라." 이 말까지 하셨는데 아직까지 어제 들은 듯이 귀에 생생하게 울리는 듯한 그런 말로 남았다. 그렇게 맞고 잠이 든 날이면 거의 항상 어머님이 맞은 곳 약을 발라 주셨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분노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고, 내가 나쁜 선택이나 방황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폭력의 영향은 꽤나 컸었던 것 같다.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고, 조용하고, 의기소침하고 가살스러운 그런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어릴 때는 환하게 웃었는데, 커서는 웃는 표정 짓는 게 어색해졌다. 맨 오른쪽 사진은 정말 최선을 다해 웃고 있는 사진이다.


3. 아버님은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 몇 가지를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셨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학도 아버님이 정해준 학교, 정해준 학과에 지원하였고, 군 입대할 시기도 정하셨고, 대학원 진학도 못하게 하셨다. 나의 10대, 20대 시절은 그저 아버님이 키우는 분재와 같은 삶이었다. 정해진 대로 몸을 감싸 방향을 잡아주면 딱 거기에 맞춰서 커가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정말 그 당시 궁금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러다가 나중에 아버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과 아버님이 내 결혼식에는 참석할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버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불편한 생각이 가끔 들긴 하였다. 다행히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였고, 결혼식에 아버님이 불참하진 않았지만, 결혼을 하기 하루 전, 저녁 식사시간에 아버님한테 끔찍한 질문을 받았다.


"그래, 내일 결혼식이 몇 시지?"


4. 어머님은 항상 도시락 반찬을 정성껏 준비해 주셨다. 난 그 도시락이 싫었다. 왜냐하면 친구들 도시락은 각종 햄과 소시지, 참치 통조림, 냉동 만두 등의 반찬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내 반찬은 깻잎, 콩자반, 부각, 오이 소박이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못 사는 집 아이라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때까지 반찬 투정을 했었다. ‘이게 몸에 좋은 거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정말로 귓등으로도 안 들렸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면서 집을 떠나 몇 년 생활하다 보니, 어느 날 정말로 어머님이 해 주신 집 밥이 너무나 먹고 싶어 졌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그냥 다른 곳에서 먹는 음식은 처음에는 맛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리고, 먹기 싫었다. 주말에 가끔 집에 와서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결혼 후에는 이제 어머님의 음식을 먹을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한참 어머님 음식을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식탁에 콩자반과 깻잎, 소박이가 올라왔는데 나는 먹는 순간 울음을 터트릴 뻔하였다. 먹자 마자 바로 어머님이 만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옛 기억들이 마구 떠올라서 감정이 격해졌다. 특히나 반찬 투정할 때의 기억이 떠올라 아내 몰래 표정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음식의 맛은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좋은 재료를 구하고,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인 음식이 이렇게 소중한 줄 왜 나는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5. 가장 어머님께 감사했던 때를 꼽으라면 군대 시절일 것이다. 6주 기초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만을 기다리며, 조교 인솔하에 3분간 주어진 전화통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어머님은 대뜸


"그래, 몸은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냐?"라고 물으셨는데, 그 목소리는 울컥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인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진짜 눈을 꼭 감고, 입으로 호흡하면서, 간신히 차분히 통화를 마쳤다. 울음을 억지로 참았더니 코로 눈물이 나왔다. 그런 일은 처음 겪어보았다. 군 생활 중에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편지를 보내주셨다.


 여전히 보수적이고, 내 군생활은 별 관심도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내가 매번 받아보는 어머님의 편지는 내가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나도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면 정말로 아버님과 반대로 그리고 어머님 이상으로 해 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 약속은 지금 지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6. 반대로 가장 서운했던 순간은 내가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어서 알랑거리며 몇 달 방황하던 때였다. 이미 취업을 한 어머님의 친구 아들, 딸들의 이야기를 하며, 은근히 나를 압박하였고, 그 시기에는 정말 나도 너무 힘들던 때라 화도 났고,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다행히 그 기간은 길지 않았고, 나는 내 삶이 결국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내 삶을 통해서 당신들의 삶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아버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7. 지금의 나는 결혼도 하였고,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이제 곧 둘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님이 그립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죄송하다. 어머님이 나를 가장 사랑해주시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님이 아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매일 나를 못살게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네 살 우리 딸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이 아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옛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는데, 눈 앞에 어린 시절의 내가 순간순간 나타나는 이 마법이 나는 너무 좋다. 너무 귀엽게만 보인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두 딸들 ^^


 8. 아버님 이야기도 마저 해야 하겠다. 나는 충분히 예전의 아버님을 이해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태어나신 분이고, 그 분이 겪었던 어려웠던 일의 나는 반의반도 안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연히 가치관이 틀리고, 사랑이 나쁜 방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추운 겨울 갑자기 쏟아져 나와 손을 데이게 만드는 뜨거운 수도꼭지의 물처럼 말이다. 조금만 찬물이 섞여 나오게 돌리면 되는데, 아버님은 그걸 못 하셨던 것이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항상 뵙고 싶고, 감사한 마음만 남아있다.




※ '1979년생'이라는 작가 본인의 책 내용을 사진과 함께 순차적으로 올릴려고 합니다.


     하기는 종이책과 전자책 링크 입니다.


부크크 : 서점 (book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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