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제 1부 돈은 빛이다 후기
자본주의와 가치
매달 첫째 주 금요일은 회사의 ‘게더링 데이’다. 같이 저녁을 먹고,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서로를 더 알아가고 생각을 나누기 위해 만든 자리다.
이번에는 지인이 추천해준 10년 전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함께 시청했다.
다큐에서는 자본주의의 뿌리를 영국의 금 보관소에서 시작된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설명했다.
남의 돈을 빌려 쓰고, 그 빌린 돈에 이자를 붙이며, 은행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돈을 계산 속에서 불려가며 부를 창출한다.
결국 누군가는 그 계산 속에서 밀려나고, ‘이자’를 갚지 못한 사람들이 낙오자가 된다.
자본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를 보고 팀원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재테크의 중요성’으로 흘러갔고
“자기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말로 이어졌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자산, 더 높은 효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나 자신을 ‘상품’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합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제 인간의 수명이 30년이나 늘었으니, 은퇴 후 30년을 위해 30억은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안이 주입된다.
불안의 논리를 자본의 언어로 포장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수명이 늘었다는 건 단지 시간이 늘어난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더 늦게 배울 수 있고, 더 다양하게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30년을 오직 ‘소비만 하는 시간’으로 계산하는 건 너무 좁은 시각 아닐까.
노후를 단지 돈으로만 계산하는 사회에서는 삶의 의미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우리는 ‘얼마를 벌어야 하는가’에 갇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잊는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인간의 가치를 이루어간다는 뜻이다. 그 가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창의력과 지성, 도덕적인 행동, 감정적인 면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이런 가치들마저 수치화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려 한다.
성과, 연봉, 팔로워 수, 브랜드, 평판.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는 시대. “나는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묻는 것이 어느새 삶의 전제가 되어버렸다.
좋은 사람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선한 행동보다는 ‘성과 있는 행동’을 택한다. 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도 능력이고, 선한 행동 또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남기는 성과다.
역사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가 이루어낸 성과는 수없이 많다. 로자 파크스가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던 그 하루가 인종차별을 무너뜨린 인권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총보다 강한 연대의 힘을 증명했다. 파키스탄의 소녀 말랄라가 ‘배울 권리’를 외친 용기는
전 세계의 교육 환경을 바꾸어놓았다.
우리가 그것을 ‘가시적인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을 뿐,
이들의 가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 왔다.
자본주의가 말하는 ‘가치 상승’은 언제나 비교와 경쟁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가 ‘자기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조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팔리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행위, 그게 진정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일까?
자본주의가 정한 기준이 아닌,
내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의 가치를 높이며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