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품·포장재(ESPR·PPWR) 글로벌 규제대응 전략 설명회
1월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던 어제,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주최로 열린 제품과 포장재 분야 글로벌 규제대응 전략 설명회에 참석했다.
(본 설명회 녹화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BdZePp2P4
본 설명회는 유럽 연합(EU)의 에코디자인 규정(ESPR)과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을 중심으로, 향후 글로벌 규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자리였다.
이번 세미나는 규제를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닌, 다양한 전문가의 시각을 통해 EU의 산업 전략이자 글로벌 규제 프레임으로 조망하며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졌다.
Brussels Effect
첫 세션에서는 EU의 형성과정과 세계화 속에서 규제가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왔는지가 다뤄졌다. 특히 EU 의회가 위치한 브뤼셀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이 전 세계 국가와 기업에 관철되는 ‘규제의 세계화 현상’, 이른바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가 언급되었다. 즉 ESPR과 PPWR도 유럽을 넘어 사실상 글로벌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는 구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핵심은 ESPR과 PPWR 모두 아직 완벽히 ‘완성된 규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상위 규정의 틀은 이미 존재하지만, 실제 산업별 의무와 세부 요구사항은 향후 섹터별 위임법(Delegated Acts)을 통해 단계적으로 구체화될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사들 역시 확정적인 답보다는 해석과 전망, 그리고 준비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Q&A 세션에서 참석자들은 어떤 요구사항에 어떤 문서를 준비해야 하는지, 실제로 어떤 데이터가 언제부터 요구되는지와 같은 실무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규제가 아직 구체화되는 단계에 있는 만큼, 연사들은 확정적인 답변보다는 현재까지의 해석과 전망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참석자들(특히 내 뒤에 있던 사람들)은 연사들의 답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꽤 안타깝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규제 자체가 아직 형성 중이라는 구조적 한계에서 완성된 답을 기대하기는 당연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도 익숙하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CARE ID에서 순환 패션을 위한 DPP(Digital Product Passport)를 설계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불확실성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곧 준비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SPR은 이미 확정된 상위 규정이지만, 섬유·패션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의무와 요구사항은 향후 제정될 섹터별 위임법을 통해 단계적으로 명확해질 예정이다. 패션 산업은 소재의 원료-원사-원단-가공 단계를 포함하여 디자인 단계부터 생산, 유통, 사용, 폐기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 전반의 구조가 복잡하고, 제품 특성 또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특성상 실제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떤 데이터가 현실적으로 수집 가능하며, 또 어떤 정보가 의미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그동안의 패션 산업 실무 경험을 토대로 ESPR 본 규정과 부속서, 그리고 CIRPASS-2 기술 문서를 분석 및 정리하며 패션 산업에 적합한 DPP 데이터 설계를 연구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ESPR의 단계적 규제 도입 구조를 반영해, 브랜드가 혼란 없이 준비할 수 있도록 Level 1부터 Level 5까지의 단계적 순환 패션 DPP 데이터 스키마를 구성했다.
그렇기에 나 역시 현장에서 종종 “섬유 분야 위임법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CARE ID의 DPP가 어떻게 말이 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유럽의 흐름을 함께 살펴보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섬유·패션 산업에서 DPP를 선제적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년 PIS 세미나 때 연사로 초청했던 Andrew Xeni는 Fabacus (DPPSP)의 설립자이자 영국 기반 패션 브랜드 Nobody’s Child의 회장으로 제품별 QR 코드로 생애주기 정보와 환경 데이터를 제공하는 DPP 적용을 진행해 왔다. 이 사례는 다가오는 EU 규제 도입에 앞서,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데이터 기반의 투명성과 순환성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우리는 아직 확정된 표준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미리 준비하며 학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조를 다듬어가야 하는 전환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므로 DPP는 규제 이후를 따라가는 도구가 아니라 규제의 현실적 작동 방식을 미리 검증하고 축적하는 실험적 프레임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번 세미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유럽의 규제를 ‘번역하고 전달하는 위치’에 있다. 물론 그것은 필수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글로벌 생산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에 집중된 현실을 고려할 때, 유럽 중심의 관점만으로는 현장의 부담과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 역시 단순한 규제 수용자를 넘어, 섹터별 실행 프레임을 보다 정교하게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순환자원 인정 제도 등 다양한 정책적 시도가 이어져 왔고, 이는 국내 자원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다.
다만 산업 구조와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도의 취지와 현장 이행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의 규제 강화는 새로운 부담이라기보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정책적 노력들을 실제 실행 단계로 연결하기 위한 전환 국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세미나는 분명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규제가 향하는 방향을 다시 확인했고, 지금은 ‘완벽함’보다 ‘준비’가 더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체감했다. ESPR과 PPWR이 구체화될수록, 이러한 질문과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단일 규제 대응을 넘어, DPP는 ESPR을 포함한 향후 다양한 EU 환경·산업 규제에 공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보 구조와 데이터 체계를 선제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된다. 어제의 세미나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구조적 전환의 과정 속 하나의 지점이었고, 나에게는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정리하게 만든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