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웰다잉
내가 주인공인데 내가 없어야 성립되는 의식(ritual)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죽어야 열리는 장례식. 대개 내 장례식에 나는 사진 같은 것으로만 존재한다. 누군가 “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음모 술수를 숨기고 있거나 기이한 세상의 기괴한 이야기냐고 할 것이다.
중년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발칙 명랑한 십대 딸과 잘 나가고 근사한 변호사 아내를 가졌다. 연기자였던 그는 비록 연기 경력이 눈부시게 펼쳐지지는 못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인기스타였다. 아동용 방송프로그램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를 오랜 시간 연기하고 있는 이류 연기자인 것이다. 특별히 실패랄 것은 없는 삶이지만 늘 아내와 딸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지 위축감을 느끼며 살았다.
또 한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가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인도에서 왔다는 그는 운전기사에게 들뜬 마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지금 친구의 장례식에 가는데 좀 흥분되네요."
"별, 미친...“
서비스정신을 깜박한 운전기사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멀리서 찾아올 만큼 각별한 친구의 장례식이라면서 이렇게 망칙한 모습이라니.
<나의 첫 번째 장례식>(원제 ”Vijay & I“, 샘 가바르스키 감독, 2013년)이라는 벨기에 영화의 한 장면이다. 윌은 자동차사고를 당했다가 깨어난 후 자신이 사망 처리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 공고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이 심각한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것보다 더 근사한 생각을 해낸다. 알아보지 못하게 인도인으로 변장을 하고 자신의 장례식에 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온 인물이 인도에서 왔다는 터번 두른 비제이였고, 운전기사를 놀래킨 비제이가 바로 윌 자신이었다.
이 영화는 코미디로 분류된다. 한 편의 소동극을 만드는데 장례식이 사용된 것이긴 하다. 소동이란 게 크리 큰 규모가 아니고, 장례식에서 비제이-윌-이 아내에 의해서 쫓겨나는 것이 고작인 작은 소동극이다. 웃음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뭔가 뚜렷한 질문을 하나 남기는 코미디였다. 윌은 왜 갑작스런 사고로 슬퍼할 가족들에게 나 살아 있다고 얼른 알리지 않고 자기 장례식에 무리해가며 가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무엇을 보겠다고? 무엇을 듣겠다고?
서구의 장례식에는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연설처럼 모두의 앞에 나와서 하기도 하고 – 이건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그러던데, 그쪽에서는 스피치를 일상적으로 많이 하는 것 같다 – 삼삼오오 모여서 조용하게 나누기도 한다. 당신이 만일 이런 장례식의 주인공-고인이라면 나의 가족과 친지들이 나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한가?
나는 궁금하지 않다. 그냥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고, 나 때문에 모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얘는 정말 포장이 잘 된 사람이에요. 실상은 최악으로 못됐어요. 그 애가 자기 부모에게 하는 짓을 보면 여러분은 모두 놀랄 거예요." 내가 죽어 없어졌다고 이런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란 것은 명색이 그렇다는 것이고, 나 없이 그들이 만드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전통의 이름으로 혹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장례식을 할 것이므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끼어들 틈이 없다.
장례식은 나에게 뭘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질문이 남았다. 장례식 같은 거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장례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장례식은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건가? 장례식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며 그가 없는 나날을 살아갈 남은 사람들이 서로의 슬픔을 달래는 일을 나의 마음에도 차게 만들 수 없을까?
인상적인 장례식 장면이 있다. 20세기 영화 <필라델피아(1994, 조나단 드미 감독)>의 에필로그다. 톰 행크스가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전도유망한 변호사 역을 맡아 기가 막힌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그렇다, 그는 영화 속에서 죽었고 에필로그는 그의 장례식이었다. 당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무턱대고 퍼지던 때였고, 영화에서도 그는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런 그의 장례식 분위기는 어땠을까?
(여기서 영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니까.)
세상이 그를 경멸하고 그의 삶을 망가뜨리려고 애를 썼어도, 그의 장례식은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장례식을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장례식이라면 괜찮겠다 싶다. 그의 동성 애인이 그의 지인들에게 위로받고, 그의 어린 시절 비디오를 보며 그를 추억하고, 그의 삶은 시종일관 사랑이 가득했음을 잔잔히 보여주었다. 이런 거라면 좋겠다 싶다. 대개의 장례식처럼 고인이 사진 같은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말과 기억들로, 내가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작은 요소들로, 죽은 자와 남은 자들이 연결되는 따뜻한 고리들로 가득 찬 의식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