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어디까지 해봤니? - 1 장례식의 기억"

영화로 보는 웰다잉

by 노리

장례식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몇 가지 의식(ritual) 중 하나이다. 매년 치르는 생일 따위는 비빌 수 없는 것이며, 사람에 따라 결혼도 두어 번 하는 경우가 있다지만 결단코 장례식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일생 단 한 번만 치르게 되는 것이다. 잘 죽자고 고민하는 웰다잉인데, 웰다잉을 하자면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례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이가 60을 향해 가니 장례식에 대한 기억이 꽤나 쌓인다. 전반적으로 그리 좋지 않은 기억들투성이다. 스물을 조금 넘겨서 맞은 친할머니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끝났다. 자신의 어머니와 데면데면했던 나의 아버지가 눈물을 보였는지 어땠는지, 십여 년 중풍의 시어머니를 모셨던 나의 어머니가 후련해했는지 어땠는지, 그런 걸 살필 여유가 없었다. 누워 지내느라 미사에 참석하지도 못한 무명의 신도를 위해 영구차가 성당의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장지로 갔던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스물 후반에 맞은 엄마의 장례식은 개인적으로 기이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죽음이란 것이 처음으로 나를 뒤흔든 순간이 있었다. 나는 바깥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했고, 어쩌다 알고 찾아온 나의 지인들의 위로가 반갑지 않았으며, 구석에서 친구들과 깔깔거리는 동생이 창피했다. 낮이면 국화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던 어머니의 친구들과 밤이면 국화를 치우고 향을 피우던 외삼촌은 서로 대면하지 않고 싸우는 듯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자 비로소 엄마의 부재가 각인되었다.


얼마 전 코로나 시국에 맞은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문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죽음이라는 상황에 당황하지도 않고 장례식의 공간을 현실적으로 보면서, 결국 끄트머리에 남는 감정은 ”이렇게 장례를 치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많은 것들이 상업적인 의도로 진행되었는데 그것을 제지할 기력이 없었다. 밥은 몇 인분으로 할 건지, 수의와 관은 무엇으로 할 건지를 신속하게 결정하느라 감정을 돌아볼 기력도, 추모나 애도를 시도할 기력도, 이런 장례식에서 도대체 어떤 것이 가능할지를 생각할 기력도 없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장례식 사이에 (20대에 잃은 엄마는 ”엄마“로, 50대에 잃은 아버지는 ”아버지“로 표기할 뿐, 관계성의 차이를 내포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지인(의 부모)들의 장례식이 있었다. 오래전에는 부고를 들으면 간만에 사람들과 술자리가 벌어지겠구나 생각하며 빈소로 향했다. 한동안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빈소를 굳이 찾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비교적 근간에는 사회적 예의를 생각하며 빈소에 머물렀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장례식이란 게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웰다잉“을 말하고 다닌 지 얼추 3년이 넘었고, <학생부군신위(1996, 박철수 감독)>를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경상도 어느 시골에서 세상을 떠난 한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이야기다. 장례의 세밀한 절차는 물론 커다란 돼지 한 마리를 잡는 장면의 묘사 등 이 영화는 마치 문화기술지(Ethnography)처럼 전통적인 장례의 풍경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런데 코미디다!! (못 믿겠으면 직접 보십시오. 포스터의 메인 카피가 무려 ”내 죽으니 그리 좋나!“입니다.)

포스터.png <학생부군신위(1996, 박철수 감독)>

웃기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장례식이 원래 누굴 위한 의식인가를 생각하니 나오는 것이 웃음이어서 그렇다. 장례는 죽음을 계기로 이루어지는데, 정작 고인은 말이 없고 남은 자들이 자기 삶을 사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그냥 웃고 마는 코미디가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거리두기를 하면서 익숙한 일상에 의문을 던진다. "저 사람들 왜 저러지?"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린 소년의 존재는 장례식이라는 공간을 기이하게 만들다가 결국 파열을 내고 만다. 장례식, 이대로 괜찮은가?


텅 빈 빈소에서 먹을 사람도 없는데 기본으로 100인분을 주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례식이나 고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조문을 빙자해서 지인들과 유용한 네트워킹이 활발해지는 장례식 같은 것 말고 어떻게 장례식을 만들면 고인과 남은 사람들이 다 만족할 수 있는 장례식이 될까?


공교롭게도 이 글을 시작하고 우연히 들러본 어느 OTT에서 <3일>이라는 단편영화를 보게 되었다. 유승호와 김동욱이라는 호화 캐스팅으로 만든 이 영화의 메시지는 심플하다. 장례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의식이냐는 것이다. 장례식의 주인공이 고인이 될 때, 고인도 좋고 남은 사람들도 좋은 장례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 몰래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한 어머니는 이렇게 이유를 말한다. ”그날은 제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하고 특별한 날이니까요.“


어쩌면 웰다잉이란 장례식이 원래 어떤 의미였는가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내 장례식을 내가 고민하자는, 삶의 마지막 의식까지 내가 주인공이 되자는, 그래야 고인과 남은 사람들이 더욱 단단히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이란 것이 마지못해 도리로 하는 지긋지긋한 것이 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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