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의 그림책 편지] 전소영 '적.당.한.거.리'
<슈퍼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본 한 뮤지션을 기억해. ‘디폴’이라고 했던가.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한 번만 듣고도 그가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어. 그런데 사실 음악보다 더 강렬했던 건 디폴이 심사위원인 가수 윤종신과 나눈 대화 내용이었어. 그의 무대를 본 윤종신이 극찬을 하며 말했지.
윤종신 : “집에서 ‘맨날 게임만 하고 방에서 뭐하니?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하고, 공원이라도 좀 나가라...’ 그러셨을 텐데, (부모님이) 지금 이 모습 보시면 얼마나 뿌듯하시겠어요.”
디폴 : “그런데 제가 하는 걸 부모님들도 잘 이해를 못하세요.”
윤종신 : “그러니까... 그런데 이 모습 보고 아, 우리 아들이 이런 거 했었구나, 하셨을 거 같다.”
디폴 : “사실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거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미디어 아티스트로 소개된 디폴은 전자음악의 특성상 혼자 음악을 만들다 보니 외로워서 이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했어. 음악 하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면서. 그의 무대를 보며 생각했어. ‘혼자만의 노력으로, 진짜 처절하게 외로움과 싸우면서 만든 게 이 정도인데 뜻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면 얼마나 대단한 음악이 나올까.’ 내 아들은 아니지만 대견하고 멋지더라.
그런데 내가 엄마라서 그랬을까. 윤종신의 말대로 뭔지도 모를 음악을 하겠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아들을 오래 지켜봤을 그의 부모들이 떠오르는 거야. 어쩌면 그들도 아들만큼이나 외롭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라도 ‘우리 아들이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에요’ 대놓고 말할 수 없어서 힘들지 않았을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과 인정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어쩌면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하는 일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까. 부모라면 누구나 그러고 싶을 거야. 그럼에도 디폴처럼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도 어딘가에 분명히 있겠지. 이유가 뭘까. 어쩌다 그들이 꿈꿨던 모습과 다른 형태로 현재를 살게 된 걸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엄마는 궁금했어.
그러다가 우연히 전소영의 그림책 <적당한 거리>를 읽게 됐는데... 뭐랄까. 그 이유가 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이 그림책은 작가가 여러 종류의 식물을 키우면서 알게 되고 느끼게 된 것들을 담은 건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 어디 한번 들어볼래?
'인정한다'는 것은 '알게 된다'는 것
어떤 식물은 물을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물을 싫어하지. 또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식물도 있어. 이것들을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거라고 작가는 말해. 아이들도 그렇지. 작가의 말대로 사랑의 시작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거기서 출발하는 건지도 몰라. 아마 아이들과 갈등하는 많은 부모들이 여기서부터 어긋난 게 아닐까. 서로를 인정하는 것 말이야. 그게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만약 '학원에 절대 가지 않겠다'는 네가 '반드시 학원에 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혹은 지금과 같이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서 학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랬다면 우린 지금처럼 편한 관계는 아니었을지도 몰라. 학원 문제로 갈등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 일은 아주 많지. 청소년기에는 성적 혹은 진로에 대한 갈등이 대표적이겠지만 이성친구 문제나, 가족 문제, 학원 문제 등등 따지려고 하면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일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알게 된다'는 말과 같대. 그건 인정하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지.
디폴의 부모님이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디폴이 무슨 음악을 하는지 어떤 음악을 하는지 부모가 알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안다'는 건 이런 거니까.
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매일매일 눈을 마주쳐 잎의 생김새를 가만히 둘러보는 거야.
구부정했다가 활짝 펴지는 모습을.
바짝 세워졌다가 느긋하게 늘어지는 모습을.
안다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기도 해.
앞서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조급해하지 않고 스스로 떨구는 잎을 거두어 주는 것.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야.
어때?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한 발자국 물러서 본다’는 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거야. 엄마는 이 문장들을 여러 번 읽었어. 소리 내어 읽어도 봤지. 저 바라봄의 대상이 ‘화분’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
그러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 아, 내가 너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것이겠구나. 가만히 너를 둘러보는 것. 천천히 너를 기다려주는 것. 내 손길이 필요한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알게 되는 것. 이것들은 너와 내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어.
물론 살다 보면 그 적당한 거리 조절에 실패할 때도 있을 거야. 조급하게 먼저 판단하고, 너와 제대로 눈 마주치지 못할 때도 생기겠지. 그렇다고 해도 엄마는 지금처럼 너를 응원할 거야.
디폴의 부모님도, 어쩌면 눈에 띄지 않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들을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내가 믿는 이유야. 그러니 부디 기억해주렴. 넌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혼자일 수가 없다는 걸. 끝으로 이 책의 첫 문장을 들려줄게. 왜냐고? 엄마가 꼭 듣고 싶은 말이라서 그래.
“네 화분들(아이들은)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
그러면 작가가 썼듯 꼭 이렇게 말해 줄 거야. ‘적당해서 그래.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말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