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의 그림책편지] 신시아 라일런트 시, 브렌던 웬젤 그림 <삶>
수많은 그림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이 글을 씁니다. 이번 글은 엄마의 이름으로 열세 살 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 기자말
"(모델 일) 올해까지만 해야지."
"올해까지? 지금까지 (20년) 한 것도 기적이다야."
이 말 기억해? 너희들이 즐겨보는 <나혼자산다>에서 모델 한혜진이 동료이자 친구 김원경과 함께 출연해서 나눈 대화잖아. 그걸 보면서 30대의 엄마가 생각났어. 엄마도 그땐 "나이 마흔이 되면 일 그만 둘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거든.
네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직장에 다녔으니까, 일하지 않는 엄마는 잘 상상이 안 가지? 엄마도 그래. 40세 이후에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막연히 그때쯤 회사를 그만 두자, 그랬는데 지금 나이 42세. 내 마음 속 정년을 어느새 2년이나 넘기고 있구나. 더 놀라운 건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 '지금은' 없다는 거야. '짧고 굵게' 아니고 '가늘고 길게' 일하며 살기로 마음이 바뀌었거든. 소속은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일은 계속하고 싶고 많든 적든 돈도 계속 벌고 싶어서야.
언젠가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글을 쓰는데 네가 말했어. "엄마처럼 일하고 싶다"라고. 즐겁게 일하는 게 좋아 보인다면서. 그런데 네 말을 들은 순간, 왜 그랬는지 "엄마가 하는 일이 편해 보여? 이거 노동이야. 글 쓰는 노동! 얼마나 힘든데!"라고 목소리를 높였어. 그건 마치 사장님에게 '제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기나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말했어. "그래도 엄마는 좋아하는 일 하잖아."
그래, 맞아. 아직까지는 기사를 편집하고 글 쓰는 이 일이 좋아.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16년째 하고 있다니, 모델 김원경의 말처럼 엄마도 지금까지 일해온 게 기적 같아. 모델 일을 하는 그들과 속사정은 전혀 다르겠지만 엄마라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이 없지 않았어.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 힘들 때도 있었고, 나에겐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을 때도 있었지.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오해를 받은 적도, 산 적도 있었어. 일하면서 힘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일 때문에 긴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고. 지금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엄마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살려고 하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
그래도 너 말대로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이 제법 일치하는 지금의 삶이 가끔은 행운이라는 생각도 해. 그러면서 자연히 너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게 될까, 생각하게 되더라. 열세 살 너는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키워나갈까.
어느 선생님의 말대로 네 꿈이 무슨무슨 직업으로 불리는 명사가 아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동사이길 바라. 엄마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하겠지만, 그전에 신시아 라일런트가 쓰고 브렌던 웬젤이 그린 시 그림책 <삶>에 나오는 이야길 들려주고 싶어.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 작은 코끼리가 햇빛 달빛을 받으며 성장하듯 우리는 모두 자라나. 자라면서 사랑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산다는 게 늘 쉽지만은 않지. 길을 잃을 때도 있어. 하지만 힘든 시간은 지나가고 새로운 길들이 열리지.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해. 세상에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아주 많다는 것과 또 누군가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거 아니? 동물들도 아는 삶의 비밀. 그건 바로 모든 삶은 변한다는 거야.
너의 삶은 어떨까. 10대, 20대, 30대 너의 삶은 어떨까. 시시때때로 변하는 삶 속에서 너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관계없이 너만의 속도로 살길 바라. 변화의 폭이 크든 작든 너만의 중심으로 휘둘리지 않길 바라. 어떻게 변하든 네가 가진 모습은 잃지 않기를 바라. 보호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든 주저 없이 말해주길 바라. 두려움 없이 집으로 오길 바라. '매일 아침 부푼 마음으로 눈을 뜨길' 바라. 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