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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Oct 29. 2024

어딘가 서툴고, 그럼에도 도전적인 제목

[독자에게 물었어] 한때 부서 후배가 읽은 <이런 제목 어때요?>

안녕.

곧 '10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가 되었네.

시간 너무 금세 간다. 올해도 이제 두 달 밖에 안 남은 거잖아.


오늘 만날 독자는 오마이뉴스 유지영 기자야. 2021년에 <말하는 몸>이라는 책도 펴낸 작가고! 안 읽어본 사람 있으면 꼭 읽어보기 바라.


http://aladin.kr/p/2ykaj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몸은 건강한 몸보다 허약해요 _백세희의 몸 14
씹는 동안에 괴로워진다 _정혜윤의 몸 22
혜경이에게 날개가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_한혜경의 몸, 김시녀의 몸 32
장애 남성과 결혼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_배복주의 몸 41
글쓰기도 결국 몸으로 하는 일이더라고요 _이슬아의 몸 49
털이란 게 사소하지만 저에게는 크거든요 _줄라이의 몸 58
폴댄스를 하면 할수록 몸에서 자유로워졌어요 _곽민지의 몸 65
‘귀여운 몸’이라는 사회적 자원을 놓치기 싫었어요 _강혜민의 몸 75
내 몸을 다 잘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_배리나의 몸 83
콜센터 노동이 감정노동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아요 _오희진의 몸 92
이 사회는 임신한 여성의 몸에는 관심이 없어요 _송해나의 몸 101
행복해서 운동하러 오시는 분은 없거든요 _김수영의 몸 111
키스가 그렇게 황홀한 줄 몰랐어요 _김인선의 몸 120
제게 이 몸은 유일한 재산입니다 _김명선의 몸 129
하나의 감정으로 결론지어질 수 없는 부분이 크더라고요 _오드리의 몸 138
아시아 여성 말고 저라는 사람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_봄이의 몸 148
어떻게 아이를 ‘그냥’ 낳나요 _박나비의 몸 157
여자가 아니면 꼭 남자여야 하나요? _챠코의 몸 165
몸매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해요 _김다해의 몸 173
모범생이 되면 아무도 몸에 대해 뭐라고 안 한 대요 _정김의 몸 182
색칠할 도화지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_이나연의 몸 191
공적인 자리에서 몸을 말하는 경험이 중요할 것 같았어요 _김슬기의 몸 198


<말하는 몸>은 1, 2권인데 1권은 유지영 기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목차만 봐도 끌리지 않아? 궁금하면 바로 주문이야. ^^


유지영 기자는 사회부 기자로 있다가 편집기자로 순환근무를 하면서 나와도 함께 일하게 되었어. 지금은 다시 사회부 취재기자로 가 있지. 내가 이번 책은 가급적 증정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유지영 기자는 그럴 수 없었어. 책에 그와 일하면서 쓰게 된 이야기가 꽤 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적어서 집으로 책을 보내줬지.


"도전하는 네 모습이 자극이 되는 순간이 많았어. 나와 함께 일한 시간이 쉽지 않았겠지만 약간의 자극이 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너와 함께 일한 에피소드가 책에도 실려 있으니, 추억이 방울방울한 시간이 되길."


'쉽지 않았다'라고 쓴 건 사실이야. 유지영 기자는 나와 연차도 10년 이상 차이 나고 나이도 그 이상이지. 서로 힘들고 어려웠던 건 당연해. 같은 팀에서 일하기 전에 당시 노조 집행부였던(아, 당시는 사회부 쪽 편집을 하고 있었어) 유지영 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

점심 먹고 카페 회의. 둘이 일하는 팀의 일상.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냐?"라고 툭 던지듯 물었는데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아직은 실수도 하고 어디까지가 편집의 영역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어. 이 시간을 지나 자유롭게 일하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웃었어.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말, 그건 한 마디로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말이었을 거야. 그런데 그는 그저 일을 잘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 말이 내게는 퍽 인상적이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나는 언제였지? 자유롭게 일한다고 느낄 때가 나는 언제였을까. 혼자서도 일이 어렵지 않게 흘러갈 때, 어떤 어색함이나 불편함 없이, 물 흘러가는 듯 일이 되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 언제였을까.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일을 마무리 짓고(당직이 익숙해졌을 때?) 판단에 자신감도 생기면서 스스로 제법 1인분의 일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가 말한 자유로움을 나도 느꼈던 것 같아.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도 제법 눈물 콧물 흘릴 만큼 흘렸지만.


이번에는 유지영 기자가 내게 물었어. "왜 이 회사를 계속 다니느냐?"라고. 그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말했어. 배움과 성장 때문이라고.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고 느낀다고. 자율성이 큰 회사에서는 그 무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걸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일도, 그 일을 하는 나의 성장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지.


사실 나는 이날 유지영 기자와는 거의 처음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랜만에 후배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좋기도 하고 신선해서 일기장에 적어두었어. 그걸 이렇게 또 써먹을 날이 오네. 그때만 해도 유지영과 같이 일하게 줄은 전혀 몰랐는데... 뭔가 이런저런 썰이 길었다. 한때 같은 팀원이었던 후배는 <이런 제목 어때요?>를 어떻게 읽었는지, 빨리빨리 보자고.


나랑 2022년 초부터 2023년 중순까지 함께 일했던 은경 선배가 새 책을 냈다. 제목은 <이런 제목 어때요?>다. 어느 자리에선가 누가 내게 (당시 같은 팀에서 일하는) 은경 선배가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은경 선배는 일을 잘하는 것도 잘하는 건데, 경력이 2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일을 잘하고 싶어 해요. 저는 선배에게 바로 그 마음을 배우고 싶어요."
나는 정확히 선배 경력의 절반 연차로, 내년이면 10년 차가 된다.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조금씩 이런저런 이유로 마모돼 간다.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걸 날이 갈수록 느끼는 요즘이다.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팀에서 일했을 당시 은경 선배의 제안 아래 제목 스터디를 꾸렸던 적이 있다. 매주 한 번씩 회의가 끝나고 따로 모여 여러 신문에 등장하는 '제목만을' 따로 5~10개씩 선정해 제목을 어떻게 새롭게 뽑을 수 있는지를 공부하는 자리였다.
제목 스터디가 끝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어딘가 성기고 어설픈 "내가 뽑은 제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 스터디를 거치면서, 그리고 선배와 무수히 많은 제목을 뽑으면서("한 기사에 적어도 제목 후보를 5개 이상 뽑아봐!") 조금씩 내가 뽑는 제목도 최종면에 실리곤 했다.
나는 소위 오마이뉴스가 짓는 제목의 '쪼(바꾸기 어려운 습관이나 몸에 밴 특유의 버릇 같은 것을 이르는 말)'가 마음에 들지 않아(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여러 제목을 관찰하다가 '아, 이거 오마이뉴스 제목이구나' 싶어 눌러보면 어김없이 오마이뉴스 제목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아직도 많다) 여러 차례 '쪼'에서 벗어난 제목, 그러나 어딘가 서툴고, 그럼에도 도전적인 제목을 지으려고 했다.
선배는 아직 무리한 제목이 아니면 내 제목을 최종면에 반영해 주거나, 반영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설령 최종면에 제목이 반영되지 않더라도(편집기자가 제목을 한 차례 지으면 그 제목은 팀장과 본부장을 거치게 되고, 때로는 온라인 지면 배치의 균형에 따라 다른 제목이 최종 선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특이하다 싶으면 그 제목을 짓게 된 경위를 내게 물어보았다. 이것이 내가 앞서 말한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제목을 20년 간 지어온 사람이 쓴 책이 <이런 제목 어때요?>다.
선배는 책 속에 중간중간 나와 일하면서 있었던 일화도 담았다. 그 제목 짓기의 묘미를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반복하다 보면 느는 게 있다고 믿어. 유지영 기자도 말했잖아.


어딘가 성기고 어설픈 "내가 뽑은 제목"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때를 지나...

어딘가 서툴고, 그럼에도 도전적인 제목으로 지으려고 했다고.


서툴지만 도전적인, 어딘가 어색하지만 새로운 제목을 보면 나는 매우 몹시 반가워. 눈이 반짝이지. 어떻게 이런 제목을 떠올렸지? 그 탄생 비화가 궁금해서 못 참겠거든. 그걸 알아가는 시간은 꽤 즐거웠어. 그 제목 짓기의 묘미를 이 책과 함께 즐겨보길 바라.




글은 써도 제목은 어렵다면?

http://aladin.kr/p/Oq6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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