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살감기로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집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봤다. 그 사이 남태령 고개에서 시민들은 경찰과 28시간 동안 대치를 하였고, 그다음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탰다. 내가 기억하는 한(솔직히 나도 시민운동의 역사를 다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은 당사자들의 ‘하나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외쳤던 것 같고 '우리들의' 주장에 '다른 시민단체' 이른바 '운동권'의 개입과 연대를 배제했던 것 같았는데 남태령 이후에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모두 긍정적인 입장이다. 가장 유명했던 일화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로 정유라 부정입학 및 비리 관련 시위였던 것 같은데, 그들은 시위의 상징이었던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으며 당시 시위대 내부로 들어오려는 '운동권'을 색출하고 퇴출하고자 했던 노력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다. 이 얘기는 꽤 유명한 얘기였는데 그 당시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강경한 학생들의 행동에 주춤하면서도 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조금 냉소로 일관했던 것도 기억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 당사자들의 하나의 주장을 펼치고 싶은 이화여대 학생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운동권' 사람들의 뻘쭘함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저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안 그래도 힘든 여정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이나 비난은 좀 덜어주고 싶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고 지금도 딱히 뭐가 맞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맞는 말과 맞는 말이 부딪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조용히 침묵하는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동안 내가 지켜본 시민운동과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 남태령 대첩과 무지개떡의 연대, 장애인 이동권 시위 연대 등을 지켜보면서 뭔가 신기하다는 느낌도 들고 우리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벅찬 마음도 든다. 그러나 상당히 고무적인 일들이 연일 계속되는 와중에 나의 마음은 조금 스산한 기운이 맴돈다. 어쩌면 해리포터시리즈에서 불사조 기사단이 죽음을 먹는 사람들과 볼드모트에 대항했던, 그 길고 긴 암흑의 시간이 우리에게 겹쳐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어쨌든 픽션이라서 볼드모트의 죽음과 죽음을 먹는 사람들의 죽음, 회피, 도망 등으로 결국 호그와트 내 학생들이 만든 덤블도어의 군대가 승리했지만 우리의 삶은 엔딩이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영화라서 언제고 악의 변주와 부활을 결코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24년에 계엄령이 선포될 거라 상상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고양감이라는 감정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닌데 나는 왜 이 분위기가 무섭고 스산할까? 생각해 보니 “내가 바꿀 수 있어!”라는 그 자신만만함이 어떤 현실에 꺾여버리는 그런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함께 추운 날씨에 핫팩을 나누던 그들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신의 지난날들을 가벼이 여기거나 또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의 무언가로 치부할 것 같아 막연히 두렵고 무서운 것 같다. 응원봉과 촛불이 밝히는 시위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름을 아는 민주 열사들만 우리의 선배가 아니니까. 민주열사들, 그들이 죽음으로 지켜냈지만 어쨌든 지금 '국민의 힘' 의원이 되어 시민들 사이에 또는 배후에 '종북세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해도 산천은 아는 그들의 죽음을 누군가는 그렇게 젊은 날의 어떤 패기 같은 것으로 손쉽게 혹은 가볍게 또 허무하게 바꿔버린다. 작가 유시민은 이 비슷한 감정에 대해 “그들은 그저 이기려고 했기 때문에, 승리하지 못하자 변절해 버렸다.”라고 설명한다. 유시민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가 많이 고민했을 어떤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이 공감하고 동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승리’라는 말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그저 인간의 어떤 감정을 조금 경계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고양감이라고 생각한다. 길고 긴 투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승리’라는 것은 사실 딱히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어떤 정해진 결과도 아니고. 승리한 정권이라는 것은 사실 이 땅에-어쩌면 지구상에- 온 적이 없다. 그러한 상태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우리는 무언가에 대항했으며, 그저 그 자체로서의 시민.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시민, 그 시민이라는 존재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민주주의 운동에서 그들이 수없이 많은 죽음과 고문, 불법을 견디는 힘은 그저 인간의 일상은 애석하게 계속된다는 잔인한 저주에 불과하다. 그들이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했든 하지 않았든 계엄, 유신, 독재 등 국가적 폭력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지 어떤 승리를 쟁취하고자 함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의 말에 이해가 되는 날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날도 있고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유시민작가의 말이 대체로 적용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 투쟁의 역사를 마치 대단한 게임처럼 여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많고 솔직히 내 안에도 일부분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어떤 사건과 이벤트에 대해 ‘승리’와 ‘패배’를 구분하고 또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것 같다. 그리고 승리하지 못한 누군가는 자신의 지난 선택을 후회하며 또 다른 승리의 길을 모색하거나, 패배의 분노를 풀 곳을 찾아 질타와 책임을 운운하고 그러는 것 같다. 마치 이완용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