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통엔 역시 체포와 탄핵뿐

주말에도 출근하는 느낌.

by 박다은

경찰과 공수처가 윤석열 체포에 실패했다.

한국에 사는 모든 회사원, 아르바이트생, 학생 등 모든 국민들이 의아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경호처가 격렬하게 저항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난관은 늘 존재한다. 모든 시민들은 그 정도의 난관을 매일매일 넘으며 살고 있다. 특히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 장애인들의 출근길은 지하철 운행에 방해가 된다면서 불법시위가 되고,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서교공)는 출근하는 장애인들을 지하철 역사 밖으로 끌어낸다. 홍수가 나도 전쟁이나도 계엄이 선포되어도 모두가 학교에 등교하고 회사로 출근하는 이 "이상한" 대한민국에서 경찰의 변명에 다 같이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이후, 민주노총은 용산 대통령 관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당연히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불법 시위"라며 강하게 제지하였고 뜬금없이 민주노총 조합원 2명을 체포하여 은평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또 너무 황당했고, 자꾸 서로에게 사실을 확인했다. "윤석열이 아니고 민주노총을??" 그리고 우리는 경찰이 법을 수호하고 이 사회의 규칙과 행정을 준수하며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렇게 광화문을 가야 하나, 한강진에 가야 하나 서로서로 갈팡질팡하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나와 친구는 광화문대신 한강진으로 갔는데, 도착하였을 때 경찰들은 우리에게 집회에 합류할 수 없다고 손으로 막고 있었다. 분명 경찰의 무능력한 변명을 봤지만 우리 안에는 경찰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더욱 커서 "그럼 입구가 어딘가요?"라고 너무 천진 난만하게 물었고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친구와 지도를 보던 중 이미 시위 중이던 시위행렬과 민주 노총 사회자 분이 "차 빼라"를 외치기 시작했고, 우리를 제지하던 경찰들이 갑자기 없어졌다. "어? 어디 가시는..?? 저희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건지..?" 그렇게 갑자기 경찰들은 사라졌고 시위를 하던 시민들은 교통정리를 했다. 어리둥절한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차들이 다 빠지고 난 뒤, 수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 대오에 합류했다.


길을 건너기 전에 골목에서 서성거리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대오에 들어왔고 우리는 경찰이 우리만 막았던 것이 아니구나 싶어서 사태파악을 조금 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이동을 하다가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앉게 되어 방석도 꺼내고 주섬주섬 응원봉을 꺼냈더니, 갑자기 누가 "응원봉에 리본 달아주세요."라고 검은 리본을 주었고 검은 리본을 사러 다이소에 못 들렸던 나는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 없었다. 친구도 나도 "근데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응원봉 꺼내는 것과 리본이 없는 것을 어떻게 본 것이지?" 싶은 당황스러움과 감사한 마음이 뒤섞여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그렇게 검은 리본을 보면서 나는 내 가방과 소지품들에 달려있는 수많은 색깔의 리본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가방에 수없이 많은 리본을 달고 다니다가 또 다른 리본을 만들고 죽는 다.


과연 나는 또 언제 어떤 참사로 죽을 것이며, 그 참사는 또 어떤 색 리본으로 당신의 가슴에 눈물 맺히게 할까?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고 참담하다. '사고'라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은 것인데, 한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는 늘 원인이 있다. 안전에 대한 규제 완화. 경제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근거로 늘 갑자기 완화된다. 그런 규제 완화가 기업과 나라에 얼마나 대단한 돈을 벌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돈이 얼마나 대단한 액수라고 하더라도 등가교환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얼마의 돈이 사람의 목숨보다 대단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알 수 없다.


각자도생의 사회, 파편화된 개인들, 액체화된 위험 속에서도 우리는 그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연대'라는 대단한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사람이고 인간이라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할 때, 고인을 알든 모르든 그것과 상관없이 상실감을 느낀다. 단 한 명의 죽음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무기력함으로 혹은 식사를 차리는 손길로 또 필요한 물품을 보내고 지역 후원금을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다. 참담한 마음과 고인에 대한 애도 그리고 유가족에게 보내는 위로를 그렇게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무언가 하고자 한다. 이토록 아름답고 처절한 시민들은 예전에도 지금도 그렇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애도와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어쩌면 경찰을 포함한 행정부처 역시 또 똑같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직할 사람, 어쩌면 이번엔 새"를 찾아 나서지 않을까? 그들 역시 이 모든 행동을 반복하겠지? 우리도 늘 함께 마음을 전했던 것처럼 국가도 정부도, 경찰도 또 똑같은 상투적인 말들은 반복하겠지. 그리고 우린 또 허망한 마음에 촛불을 들고 서로의 존재를 보면서 위로도 진실도 셀프인 이 한국을 원망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 나라는 일개 시민에게 꽤 정직하고 순종적으로 침묵하기를 강요했다. 그리고 경제의 일원이 된 이후부터는 갑자기 상당한 프로페셔널을 요구했다. 기획서나 보고서의 형식을 갑자기 맞추라고 하거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라고 밀어붙이거나 예산서도 10원까지 철저하게 예측하고 산출근거를 강요하는 등 갖가지 요구에 정신없이 맞춰야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면서 모든 회사원을 마치 아이언맨처럼 부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나에게 가혹했던 것은 '그저 내가 윤석열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는 죄 없는 언론인과 정치인 등 그 누구도 끌어내고 감금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억울하다. 원통하다.



참고: 한국인의 험한 출근길, 부제: 한국은 당일 아침에 휴가를 쓸 수 없음이야.

https://www.wikitree.co.kr/articles/87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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