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안녕!

특이한 경험이 가득했고 날 단단하게 만들었던 2024년이여, 안녕.

by 박다은

12월 31일.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2023년 여름에 한국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름의 계획은 아침에 카페알바를 가서 커피 향 가득한 하루를 시작하고, 화요일 목요일에는 학원알바를 하는 꽤 규칙적인 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카페알바는 3일인가? 일주일 만에 잘렸고 학원알바를 겨우겨우 했지만 작은 학원이라 그런지 시간표가 너무 불규칙하게 거의 매달 바뀌어 적응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작은 학원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케줄은 나만 바뀌는 거였고.. 그저 소일거리와 공부하는 삶을 원했던 나는 그냥 다른 학원으로 옮겨야 했다. 옮기는 과정에서 6월인가 7월까지는 난데없이 학원을 두 개나 다니게 되어 알바 주제에 토요일까지 일하는 삶을 살았지만, 이후 학원을 하나 정리하면서 내가 원하던 루틴한 일상을 살게 되었고, 그렇게 틈틈이 책을 보고 공부를 했다. 스승의 날에 교수님께 안부인사를 드리고 하다가 8월인가 10월 즈음 논문지도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돌아 돌아 다시 백수가 되었는데, 참 기분이 애매하다.

학부 입학을 한 것이 2005년이니까 2025년은 꼬박 20년째 내가 학생의 꼬리표를 달고 어중간한 경계에서 알바와 계약직과 학생사이에 백수로 또 취준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20년이면 정말 긴 시간이니까 이 어중간함에 이골이 난 것 같으면서도 또 아닌 것도 같다. 돈도 없고 소속도 없는 비경활인구에 대한 스스로의 불안함과 서러움이 가끔씩 불쑥불쑥 올라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너무 무서워 여러 가지 마음이 든다. 조그마한 일자리라도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있는 것이 나을까? 아침에 잠깐 출근하는 일자리를 알아볼까? 하는 마음말이다. 어딘가에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돈으로 교환하는 그런 노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다.


총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백수였지만 학생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나이가 된 것도 불안함을 더 높이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이 2020년이니까, 그전에는 일단 학생으로 퉁친다고 해도 2020년 수료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빼박 백수였다. 물론 그 사이에 계약직으로 일도 했고 취업준비생으로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이것저것 안간힘을 썼지만 코로나와 제주도 주소이전 문제 등 여러 가지 여건들이 방해를 했고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오숑이의 죽음이라는 인생의 큰 이벤트에 그 어떤 삶의 방향이나 목적도 잃은 채 우울증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그냥 캐나다로 도망치듯 떠나버린 것도 사실이다. 뭘 포기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한 도피 같은 것. 그렇게 포장하고 싶다. 그 많은 짐을 단프라 박스 10개 정도에 다 정리해 버린 것도 아득한 과거의 일 같다. 지금 생각하면 단출해진 나의 짐들을 보면서 뭔가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그 많던 짐들이 도대체 뭐였는지 또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당시에는 노트북 아이패드, 오숑이 유골. 그 외에는 소중할 것도 챙기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반년 정도를 캐나다에서 먹고, 자고, 걷고, 또 운동하고 이런 일상만 살다 보니 조금 나아진 것도 분명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살았던 추억도 분명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다들 걱정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생활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다소 시끄럽고 짜증 나는 일들이 많지만 부모님과 조카들이랑 이래저래 마주치는 생활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조카들이 자꾸 놀자고 이모를 부르는 목소리도 그 표정도 너무 좋았고, 학원 알바를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하던 웃음과 일상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그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구나,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고 돕는 일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런 마음들이 자꾸 확신이 되고 마음속에 단단한 무언가로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에 참 감사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25년은 아마도 본격적으로 전업 논문러의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조금 두렵기도 떨리기도 하지만 나이, 재입학금, 기타 등등의 사유로 정말 공부만 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즐거움도 고통도 함께하겠지만 돈을 벌지 않고 그저 공부와 연구만 해야 하는 시간은 아마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 즐거움도 고통도 오롯이 잘 느끼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직 새해 첫날이지만 나는 앞으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규칙적으로 살아야 하나? 뇌의 기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 웃기는 고민일 수도 있지만, 올 한 해를 정말 잘 보내고 싶은 나의 마음의 시작점에는 그저 공부하는 행위와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미약하지만 인류를 위해 받은 만큼의 보답을 하고 싶은 작은 마음이 있다는 것. 그 시작 점을 2024년에 찾게 되었고 그 마음을 잘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충만해서 그런 것 같다.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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